[만남]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과학기술 분야 부처 첫 여성 수장
디지털 시대 맞춤형 청년정책 중요
역량강화‧일자리지원 등 11월 발표
일하는 여성 발목 잡는 경력단절
일‧육아 병행하는 지원제도 늘어나야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홍수형 기자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미국 나사(NASA)처럼 전문성과 연속성을 갖고 우주 산업을 이끌어나갈 조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수형 기자

“한 걸음 남았다.”
한국형 우주발사체 누리호(KSLV-II)가 10월 21일 우주를 향해 날아올랐다. 누리호의 모든 발사 시퀀스가 끝난 뒤 결과 발표만을 기다리던 오후 7시.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누리호가 일군 ‘미완의 성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위성모사체가 궤도에 진입하지 못했지만, 순수 국내기술로 700km 고도 목표에 도달하는 등 대한민국 우주개척사를 새로 쓴 만큼 성공에 무게를 둔 평가다. 첫 개발 발사체의 시험발사 성공 확률은 30% 미만이지만, 누리호는 90%를 해냈다는 평가도 나온다.

임 장관은 “물론 성공하면 더 좋았지만 여기까지 온 것도 대단한 성과였다”며 “우주개발에 대한 동기부여가 커졌고, 국민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학생과 청년들에게 우주에 대한 꿈을 심어줄 수 있었다는 점도 큰 성과”라고 했다. 이어 “미국 나사(NASA)처럼 전문성과 연속성을 갖고 우주 산업을 이끌어나갈 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은 많은 분들이 공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5월 취임한 임 장관은 1967년 과학기술처가 처음 생긴 이래 첫 과학기술 분야 부처 여성장관이다. 남성이 절대다수인 공대에 진학할 때부터 그의 이름 뒤에는 늘 최초‧최연소 타이틀 따라 붙었다. 네 명의 오빠 사이에서 자라 남자들과 어울리고 경쟁하는 것은 어색하지 않았다. 다만 ‘최초’라는 수식어의 무게가 버거울 때도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임 장관은 “새 업무를 맡게 되면 새로운 업무에 대한 부담도 있지만, 제가 여성을 대표할 지도 모른다는 책무가 무거웠다”고 했지만, 그 무게감은 학자로서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고 했다. ‘단 한사람에게라도 영감을 줄 수 있다면’이라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다고. 취임 이후 5개월을 눈코 뜰 새 없이 보낸 임 장관에게 과기정통부의 주요 정책 방향과 리더십에 대해 물었다.

-누리호를 쏘아 올린 뒤 그 결과를 직접 발표했다.

“우리나라 우주개발 역사를 쓰는 현장에서 언론 브리핑을 한 것은 개인적으로도 큰 영광이었다. 누리호의 전 비행과정은 정상적으로 수행됐으나, 3단 엔진이 예상보다 빨리 연소가 종료되면서 지구저궤도에 안착하지 못했다. 이번 비행이 완벽하게 성공하진 못했지만, 순수 독자 기술로 우주에 발사체를 쏘아올린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다. 특히 누리호 개발에 300여개 우리기업이 참여했는데, 누리호가 비행과정을 정상적으로 수행함으로써 태동기인 우리 우주산업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관련 기술이 다양한 방식으로 파급되면서 국내 산업 전반이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내년 5월 2차 발사에서 부족한 점을 보완하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번 비행으로 우주개발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커지고, 어린이와 청년들에게 우주에 대한 꿈을 심어줄 수 있었던 것도 좋은 성과라고 생각한다.”

-미국 나사(NASA)처럼 우주 산업을 이끌 컨트롤타워의 필요성도 커진다.

“지금은 관 주도로 해오던 ‘올드스페이스’에서 민간 주도로 넘어가는 ‘뉴스페이스’로 넘어가는 전환의 시점이다. 우주 산업이 영향력이 큰 산업이라는 점에서 우주정책의 전문성·연속성을 위한 전담조직의 필요성에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있다. 전담조직을 어느 부처에 둘 것인지에 대해서는 종합적인 고려가 필요하다는 점은 동의한다. 다만 기획, 조정, 집행 기능을 모두 갖추고 있고, R&D 총괄 조직도 두고 있는 과기정통부에 우주개발 전담조직을 설치하는 방안이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국방부, 외교부 등 유관부처에서 협조를 받는다면, 연구개발 뿐만 아니라 우주안보, 우주외교, 우주산업 등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10월 21일 전라남도 고흥군 나로우주센터 프레스룸에서 '누리호 발사 결과'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10월 21일 전라남도 고흥군 나로우주센터 프레스룸에서 '누리호 발사 결과'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디지털 뉴딜의 주무부처로서, 정책을 추진한 지 1년이 넘은 시점에서 디지털 뉴딜이 우리 삶과 경제·산업 전반에 어떤 변화가 있었다고 보는지.

“정부는 지난해 7월부터 데이터·네트워크·인공지능(D.N.A) 기반의 혁신 프로젝트들을 담은 디지털 뉴딜을 통해 코로나19 경제위기 극복과 경제·사회 전반의 디지털 대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우선, 금융·의료 등 4300여종, 약 10억 이상의 데이터가 구축·활용되면서 2020년 데이터 시장이 전년 대비 14% 이상 성장했다. 12만개가 넘는 중소·벤처기업에 바우처(데이터·인공지능·비대면 등)를 제공하고 스마트 공장, 소상공인 점포 등 디지털 기반 신기술 도입을 지원했다. 특히 ‘인공지능 국민비서’ 같은 공공서비스 400여개를 개발해 국민이 필요로 하는 행정정보를 적시에 제공해왔다.지난 7월 발표한 디지털 뉴딜 2.0을 통해 4년 내 49조원을 투자해 디지털 전환의 속도를 높일 계획이다. 2.0에 새로 추가된 메타버스, 클라우드, 블록체인 등 초연결 신산업을 집중 육성해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고, 다양한 분야의 디지털 융·복합을 촉진해 나가겠다.”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각 분야에서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단순‧반복 일자리는 줄어들고 신기술 역량이나 창의성이 필요한 일자리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미래 세대가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고, 더 많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먼저 산업계 수요가 늘어나는 중·고급 수준의 디지털 인재를 키우기 위해 이노베이션아카데미, SW중심대학에서 역량 강화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2025년까지 41만3000명의 인재를 양성할 계획이다. 유통‧제조 분야 재직자들이 디지털 전환에 필요한 직무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AI·SW 교육훈련도 올해 2400명에서 내년 5600명으로 두 배 넘게 늘렸다. 11월에는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 더 많은 청년들이 도약할 수 있도록 청년 지원 정책을 마련해 발표할 계획이다.”

-식당 등에 설치된 키오스크가 3배 이상 늘었다. 장애인, 고령층 등 디지털 소외 계층을 위한 포용 정책은 무엇인지.

“코로나19로 인해 키오스크 보급이 늘어나는 등 일상생활에서 디지털화가 가속화되고 있어 국민들 간 디지털 격차도 커지고 있다. 디지털 격차는 경제·사회적 불평등·차별까지 심화될 수 있기 때문에 국민 모두가 차별이나 배제 없이 디지털 사회·경제에 참여하고 그 혜택을 고르게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주민센터, 도서관 등에 1000곳의 ‘디지털배움터’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여기서 키오스크나 스마트폰을 사용해 기차표를 예매하는 법부터 기초코딩 교육까지 배울 수 있다. 약 43만명이 디지털배움터에서 교육을 받았고, 교육생을 가르치고 곁에서 도움을 주는 디지털 강사·서포터즈 4712명도 채용했다. 현재 어르신과 장애인도 쉽고 편하게 키오스크를 사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 가이드라인(국가표준)을 제공하고 접근성을 보장한 제품의 시범제작을 지원하고 있다. 앞으로 공공조달에서 접근성 보장 제품을 우선구매하는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고시를 마련할 계획이다.”

-2014년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자상을 수상하며 “여성 과학자의 경력단절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과기정통부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과학기술 분야 우수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출산‧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해소’는 중요한 정책이다. 현재 경력단절 여성과학기술인 규모는 21만여명이 넘는다(2019년 기준). 여기에 석·박사도 약 1만4000명에 달한다. 먼저 여성 과학자가 재직하고 있는 연구기관에 담당관을 지정해 현장의 의견을 모아 집행부에 제안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했다. 올해 구축한 여성과학자 전 생애주기 성장 플랫폼에서는 과학기술 직업 정보와 역량 진단, 컨설팅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니, 활용해 보길 추천드린다. 앞으로도 과학기술 분야의 남성과 여성 모두가 연구하고 일하기 좋은 환경 조성을 위해 제도와 정책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노력하겠다.”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남편을 꼽았다.

“남편에게 아이 하나 더 낳자고 하면 적극 반대할 정도로 남편이 두 딸의 육아를 도맡았다. 남편 덕분에 육아에 큰 신경을 쓰지 않고 일에 몰두할 수 있어서 연구를 지속할 수 있었다. 후배들에게 늘 강조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구조를 만들라는 것이다. 일을 계속하고 싶다면 육아와 학업, 일이 병행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놔야 한다. 아이돌보미처럼 남의 손을 빌릴 수 있다면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정책적으로는 경력단절을 겪지 않도록 하는 더 많은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최근 청년간담회에서 만난 한 여성연구자는 육아휴직도 일종의 경력 단절에 해당한다면서, 육아 기간에도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방안 모색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대학의 경우 임신·육아 시기 수업 시수를 줄여주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제안이다. 저 역시 여성 연구자로서 공감이 갔다. 우리부 산하 연구기관부터 시간제·요일제 근무 등 합리적인 유연근무제 정착 및 활용을 위한 방법을 찾아보는 한편, 교육부 등 관계부처와도 협의 중이다.”

-리더십에 대해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당부하는 말이 있나.

“관리자, 리더가 되기 위해 갖춰야 할 여러 덕목도 있다. 저는 그것을 한 마디로 ‘좋은 팀플레이어가 되라’는 말로 표현한다. 동료들이 함께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되라는 이야기다. 저 자신도 과기정통부에서 좋은 팀플레이어가 되려고 노력한다.”

-좋은 팀플레이어가 되기 위한 역량은 무엇인가. 

“우선 자신의 이익에 일희일비 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팀이 어떤 성과를 이뤘을 때 ‘이것은 내가 한 것’ ‘내 성과’라고 일부러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동료들에게 공을 돌리면 결국 우리의 성과가 될 수 있다. 또 먼저 ‘내가 하겠다’고 자발적으로 책임을 맡는 것이다. 과중한 책임을 맡는 일은 쉽지 않지만, 리더로서 한 발 먼저 나서는 자세가 필요하다. 유쾌한 분위기를 이끄는 것도 필요하다. 힘들지만 저 사람과는 함께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팀 플레이어가 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개인과 조직을 위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선 후보들이 관심을 기울였으면 하는 정책이 있다면.

“여성 과학기술인 뿐 아니라 모든 여성들이 육아로 인해 경력단절을 겪지 않도록 지원해주는 새로운 정책이 필요하다. 여성이 일하지 않고는 사회가 지속가능하지 않다.”

-여성신문이 창간 33주년을 맞았다.

“우리나라 첫 ‘여성주의’ 미디어로 세상에 나와 한결같이 여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온 여성신문의 행보에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다. 앞으로도 우리 사회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여성의 든든한 벗이 되어주길 기대한다. 40여년을 여성 과학기술인으로 살아오면서 여성 과학기술인들이 가진 탁월한 균형감이야말로 기술간 융합을 이끌어 내고 불확실한 미래에 선도적으로 대응하는 데 필요한 과학기술의 중요한 자산이라고 느꼈다. 앞으로 여성 과학기술인들의 육성과 지원은 물론, 과학기술분야의 여성과 남성이 차별받지 않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제도와 정책 마련에 힘쓰겠다. 과기정통부 장관으로서 과학기술 발전이 우리 사회가 조화를 이루며 포용적인 사회로 나아가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항상 고민하고 노력하겠다.”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초고속 통신망 분야에서 실적을 쌓아온 공학자다. 서울 송곡여고를 거쳐 서울대 제어계측공학과에서 학·석사 학위를 받고, 미국 텍사스주립대(오스틴 캠퍼스)에서 전기컴퓨터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 휴렛팩커드와 미국 벨연구소 연구소, 미국 시스코시스템즈 엔지니어로 활동하다 이화여대 공과대학 학장, 여성 최초 대한전자공학회 회장을 지냈다.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이다. 2014년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자상, 2020년 과학기술포장을 수상했다. 올해 1월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역대 최연소·최초 여성 이사장으로 선임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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