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2021 여성과학기술인상 학술부문 수상자
임미희 KAIST 교수
체내 금속 물질-뇌 상호작용 주목해
알츠하이머 연관성 세계 최초 규명
화학·생물학 등 융합 연구 지속

2021 ‘제20회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인상’ 학술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임미희 한국과학기술원(KAIST) 화학과 교수. ⓒ임미희 교수 제공
2021 ‘제20회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인상’ 학술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임미희 한국과학기술원(KAIST) 화학과 교수. ⓒ임미희 교수 제공

우리 몸속에 금속 물질이 있고, 이 금속이 치매 발병과 연관이 있다? 많은 이들에겐 생소한 이야기다. 임미희(45) 한국과학기술원(KAIST) 화학과 교수는 이 물음에서 출발해 치매 연구의 신기원을 열었다. 체내의 금속물질과 단백질 간 상호 작용이 치매와 관련이 있음을 세계 최초로 밝혔다. 알츠하이머 발병 원인으로 알려진 활성 산소종과 아밀로이드 베타, 금속 이온 등을 손쉽게 동시다발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치료제 개발 원리를 새롭게 증명했다. 

2015년 대한화학회(KCS) 젊은화학자상, 미국화학회(ACS) 신진과학자상을 수상했고, 2016년 영국왕립화학회 펠로로 선정되는 등 국내외에서 주목받았다. 올해 2월 한국과학기술한림원과 S-OIL 과학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제2회 에쓰-오일 차세대과학자상’을 받았다. 18일 ‘제20회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인상’ 학술 부문을 수상했다. 

그는 생무기화학 전문가다. 화학자가 치매를 연구하다니 신기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화학, 생물학, 약학 등 여러 분야 융합적인 관점으로 알츠하이머의 원인과 치료법을 연구하고 있다. 기존 생물학 중심 연구와는 다르다. 

처음부터 치매 연구에 천착한 건 아니다. 체내 금속 물질의 역할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뇌와의 상호작용에 주목했다. “우리 몸속 단백질에 구리, 아연, 철이 들어 있다고 하면 위험하게 느껴지죠.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 몸이 금속을 영리하게 다뤄요. 일정량을 유지하면서 신호전달 등에 활용하죠. 그렇다면 건강한 사람이 아플 때 금속 네트워크는 어떻게 작용할까?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런 질문을 던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츠하이머 연구를 하게 됐습니다.”

알츠하이머 발병 원인과 치료법은 아직 누구도 찾지 못했다. 임 교수는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 재직 시절 2016년 동화약품과 치매 치료제 연구개발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신약 개발로 이어지진 못했지만, “앞으로도 알츠하이머 발병 원인 연구 등에 힘쓰면서 기업과의 협력을 꾸준히 모색할 계획”이다. 지난 2년간 코로나19로 주춤했던 연구에도 다시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18일 오후 2시 서울 강남구 과학기술회관에서 ‘2021 여성과학기술인 연차대회’를 열고 여성 과학기술인 지위 향상에 힘쓴 기관과 유공자에 과기정통부 장관상과 표창을 수여했다. (왼쪽부터) 임혜숙 과기정통부 장관과 2021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인상을 받은 임미희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학술), 김민진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산업), 문애리 덕성여대 약학대 교수(진흥). ⓒ홍수형 기자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18일 오후 2시 서울 강남구 과학기술회관에서 ‘2021 여성과학기술인 연차대회’를 열고 여성 과학기술인 지위 향상에 힘쓴 기관과 유공자에 과기정통부 장관상과 표창을 수여했다. (왼쪽부터) 임혜숙 과기정통부 장관과 2021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인상을 받은 임미희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학술), 김민진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산업), 문애리 덕성여대 약학대 교수(진흥). ⓒ홍수형 기자

과학계에 ‘여풍’이 분다는 얘기가 수년째 나오지만, 여성의 성과는 아직도 저평가되고, 유리천장은 여전히 단단하다. 임 교수는 젊은 여성과학자들의 교육·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KAIX(KAIST Advanced Instiute of Science-X)라는 KAIST 내 여성 과학기술인들을 지원하는 센터의 운영위원을 맡아 여성과학자 육성, R&D 경력복귀 지원사업 활용책임자 과제 수행 등 노력을 쏟고 있다.

남성의 공감과 존중도 중요하다. 많은 남성이 여성의 현실을 잘 모른다. 여성 교수들이 아이 키우고 집안일 하면서 야간 대학원, 박사과정을 어렵게 마치고 교수가 된 이야기를 하면 남성 교수들은 깜짝 놀란다. 그래도 임 교수는 변화를 실감하는 중이다. “요즘은 남학생들이 찾아와서 ‘여자친구가 결혼·육아 때문에 일을 포기하지 않도록 돕고 싶다. 배우자로서 뭘 할 수 있을까’ 조언을 구해요. 한국도 많이 달라졌어요.”

눈부신 이력, 시원시원한 말투, 호탕한 웃음소리. “제가 겉보기엔 자신만만하고 잘난 사람 같지만 소심하고 부족함을 많이 느끼는 성격”이라고 임 교수는 말했다. 아들은 없고 딸만 셋이라며 속상해하는 집안 어른들을 보며 자랐다. 여대에 진학해 날고 기는 여성들과 공부하면서 여성도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지닌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스트레스를 받을 땐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답변이 대단하다. “전 울적하면 논문을 씁니다. 논문 쓰는 게 너무 좋아요. 생각하고, 가설을 세우고 논증하고, 학생들, 교수들과 토론하고 다시 정리하는 일이 가장 마음 편해요.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절더러 워커홀릭이라고 하시네요. 하하하.”

그는 후배 여성들에게 “‘과학자’로서 본인이 잘할 수 있고 재미를 느끼는 일을, 주변 영향을 받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여학생들이 더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아무래도 여학생들이 남학생보다 도전을 꺼리고, 안정적인 커리어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어요. 혼자 해결하려 하지 말고 네트워킹에 힘쓰고 꾸준히 길을 찾아봤으면 해요. 여성 과학기술인의 생애주기를 고려한 지원 프로그램도 더 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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