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생리대 안전성 공론화’ 여성환경연대 활동가
깨끗한나라 ‘10억 손배소’서 승소 확정
‘여성 건강권’ 역사 새로 쓴 사건

 

여성환경연대 활동가들 ⓒ홍수형 기자
생리대 안전성 문제를 공론화한 여성환경연대 활동가들 ⓒ홍수형 기자

“기쁘면서도 후련해요. 이 작은 승리를 거두기까지 무려 4년이 걸렸네요.” (사무처장 김양희)

일회용 생리대의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한 여성환경연대 활동가들은 4년여를 끈 소송 끝에 지난 10일 1심에서 승소했다. 25일 깨끗한나라가 항소하지 않아 여성환경연대의 승소가 확정됐다. 지난 2018년 1월 생리대 ‘릴리안’을 생산한 깨끗한나라는 여성환경연대와 김만구 강원대 환경융합학부 교수를 상대로 “3억원을 배상하라”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이후 배상액은 10억원으로 뛰었다. 만약 소송에서 패소한다면 시민단체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었다. 여성 건강을 위해 시작한 정당한 활동을 악의적인 의도를 가진 행의로 모는 음모론에도 시달려야 했다. 20년간의 단체활동이 와르르 무너질 수도 있는 위기였다. 그러나 그들은 혼자가 아니었다. 공익인권법재판 공감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공익 변론에 나섰고,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하며 힘을 보탰다. 무엇보다 “내 몸이 증거다”라고 외친 1만명 넘는 시민들이 탄원서를 내줬다. 그래서 활동가들은 “힘들었지만 힘을 낼 수 있었다”(대표 이안소영)고 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5부(부장 이관용)는 10일 원고(깨끗한나라)의 청구를 기각하며 “생리대 검출 시험 결과 공표과정이나 문제제기를 하는 과정이 과학적이고 공정했다”고 “여성환경연대가 문제를 제기한 이후 생리대 회사와 정부가 제조 공정 개선을 논의하고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시행하는 과정을 보면 여성환경연대가 요구한 공익성을 수용한 것이라 보게 된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여성환경연대 활동의 정당성과 공익성을 인정한 판결에 활동가들은 잔뜩 움츠렸던 어깨를 활짝 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해오던 일을 묵묵히 해나간다. “‘피를 더 잘 흘릴 수 있는 사회’는 더 인간다운 사회이며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사회”(사무처장 김양희)라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월경은 선택할 수 없는 문제이며, 안전한 생리대는 여성건강과 인권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4년여에 걸친 재판 끝에 1심에서 승소했다.

김양희 사무처장 “기업이 시민단체를 상대로 10억원이라는 거액의 소송을 낸 사례가 거의 없고, 저희도 법적인 이해나 지식이 없다 보니 준비 과정이 쉽지 않았다. 승소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활동가들의 얼굴도 떠올랐다. 그동안 알 수 없는 것이 어깨를 짓눌렀는데, 지금은 후련해졌다. 단체 활동의 공익성을 인정해 준 재판부에 고맙고, 의미 있는 작은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는 점이 기뻤다. 탄원서를 써 준 1만명 넘는 시민들이 우리 뒤에 있다는 생각에 든든하기도 했다.”

조화하다 활동가 “승소에 대한 기대보다 대법원까지 더 멀리보자고 마음먹었었다. ‘잘 될거야’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 켠엔 두려움도 있었다. 전화로 ‘승소했다’는 소식을 전달 받고 믿기지 않았다. 정의는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아나 활동가 “우리의 활동에 대해 법적 판단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그동안의 행동이나 발언이 재판에 안 좋은 영향을 줄까봐 걱정이 됐다. 한쪽에선 기업의 소송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라’고 주문하고, 다른 쪽에선 ‘아직 때가 아니다’라고 말렸다. 갈피를 잡기 힘들었다. 소송을 한 이유가 시민단체를 입막음하려는 작전인 것 같았다.”

코코 활동가 “여성들이 안전하게 생리할 권리를 법원이 인정했다는 점에서 여성환경연대가 기업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을 넘어 여성들의 승리라는 생각에 울컥했다.”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자면.

조화하다 “2017년 한동안 단체로 전화상담이 쏟아져 다른 프로젝트는 진행할 수 조차 없었다. ‘어떤 생리대가 안전한 생리대냐’, ‘아내가 난임인데, 그 생리대를 사용했다. 어떻게 해야하느냐’는 호소들이 대부분이었다. 10년 넘게 해온 단체 활동이 잘못된 것처럼 소문이 퍼지고, 언론은 여성들의 청원과 검출실험 자체의 의도와 배후를 부적절한 것처럼 보도했다. 반박문을 쓰고 기사수정을 요청하는 것도 일이었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적대적인 상황이던 2017년 9월 어느 날 밤, 사무국에 남아있는데, 전 사무처장인 강희영 선생님이 찾아왔다. 밖에서 ‘이안!(이안소영)’하고 부르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불안했던 마음이 풀어졌다. 우리 주위에는 이렇게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송을 당한 뒤 회원 탈퇴도 거의 없었고, 연대를 해준 단체와 시민들이 많았다. 시민단체 활동을 하며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않지만 남는 건 사람밖에 없다’는 말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안소영 대표 “맞다. 지난 4년은 우리 단체만의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녹색법률센터, 공감, 민변 등이 공익변론을 하겠다고 나서줬고, 환경단체와 여성단체가 나서서 자문을 해줬다. 4일 만에 탄원서 1만장이 넘게 모였다. 힘이 들기도 했지만 힘이 나는 시간이었다.”

-최근 환경부가 건강영향조사에서 생리대 유해물질의 위험성을 간접적으로 확인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조사를 마쳤는데도 아직 공개를 하지 않고 있는데.

이안소영 “지난 4월 연구가 끝났지만 환경부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2018년 예비조사에서 생리대 사용과 생리통 등 이상반응이 연관 가능성을 확인한 뒤, 15~45세 여성 1만60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 대상을 확대해 생리용품 사용 현황 및 관련 증상을 조사했다. 1·2차 최종 연구결과는 관계부처 협의 뒤 민관협의회 회의에서 처음 발표될 예정이었으나 아직까지 공개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1, 2차 건강영향조사에서도 생리통 증가, 가려움증 등의 이상반응이 일회용 생리대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고 한다. 2017년 수천 명의 여성이 ‘내 몸이 증거다’라며 부작용을 호소했다. 아직까지 여성들이 겪은 고통의 원인을 모른다. 신속히 조사 보고서를 공개해야 한다.” 

여성환경연대가 9월 5일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생리대 모든 유해성분 규명 및 역학조사 촉구 기자회견 “내 몸이 증거다, 나를 조사하라”를 열고 생리대를 몸에 붙이고 바닥에 드러눕는 다이-인(die-in)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성환경연대가 2017년 9월 5일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생리대 모든 유해성분 규명 및 역학조사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여성신문 

-건강영향조사는 “내 몸이 증거다”라고 외친 수많은 여성들의 요구로 이뤄졌고, 백신접종 뒤 월경 이상 현상도 국민청원이 올라온 뒤에야 개별 신고 항목으로 바뀌었다. 여성들의 문제제기는 사소한 것으로 치부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안소영 “건강뿐 아니라 사회의 여러 제도의 평가 기준은 여전히 남성이다. 월경하는 여성의 몸에 대한 고려는 기준이나 제도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소송을 진행하며 절감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17년 9월과 12월, 생리대에서 유해화학물질이 나왔으나 검출기준 이하이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발표했다. 검출된 유해화학물질의 양이 미량이라서 안전하다는 증거는 없다. 생리대가 닿는 질 등 여성 몸의 특수성과 여러 환경과 물건을 통해 장기간 중복노출되는 상황도 고려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생리대 사태의 본질은 기업이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생리대를 50년 가까이 생산해왔고, 정부는 책임 있는 관리를 하지 않고 방관했으며, 여성은 고통받아왔다는 사실이다. 비록 검출된 양이 미량이지만 그 어디에도 유해화학물질이 미량이라서 안전하다는 증거는 없고, 일상생활 속에서 여러 환경과 물건을 통해 장기간 중복노출 되는 상황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월경권, 여성건강권에 대한 관심이 높다. 그러나 대선정국에서 관련 공약은 보이지 않는다.

사라 “월경권 문제뿐 아니라 사회구조적으로 여성이 처한 위치에 따라 다양한 이슈가 여성과 연결돼 있으나 대선주자들은 ‘2030 남성’에만 집중한다,”

숨비 “지금 대선정국에서 여성들이 페미니즘을 언급하는 것조차 터부시할 정도로 입막음을 강요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일부에서 반응을 얻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더 많은 표를 잃는 행위다.”

김양희 “생리대 안전성 문제는 건강의 문제만은 아니다. 비싼 유기농 생리대는 소득이 낮으면 사기 힘들고, 햇빛이 들지 않는 고시원에서 살면 면생리대를 사용하기 어렵다. 결국 ‘더 피를 잘 흘릴 수 있 사회’는 노동권과 쉴 수 있는 권리, 주거권과도 관련이 있다.”

코코 “서울시 보궐선거 때 20대 여성의 15%가 거대 양당이 아니라 제3의 정당에 투표했다. 양강 후보는 이 여성들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언론사도 남성 커뮤니티 의견을 다수의 의견으로 과도하게 보도하고 있다. 대통령 후보라면 젠더 이슈를 여성과 남성만의 싸움으로 다루는 게 아니라 근본 원인을 들여다보며 깊이 있게 다루길 바란다.”

이안소영 “여성의 몸에 대한 통합위해성평가방법을 개발하고, 국가여성센터를 통해 생리대 등에 대한 유해물질에 대한 통합 관리가 필요하다. 현재 기후위기 등 생활이나 노동환경에서 생기는 안전 문제에 대한 성별분리통계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책 마련을 위한 기초인 통계부터 생산해야 한다. 제품에 대한 안전 확보와 더불어 차별금지법 제정, 비정규직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하고 쉴 수 있는 권리 확보, 더 나아가 우리가 멸종하지 않게 기후위기를 잘 넘길 수 있도록 이를 중요한 아젠다로 삼는 관점을 가진 리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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