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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희 한국여성의전화연합 공동대표◀

한국에서 여성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80년대라고 하는 데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같은 인간으로 태어났으면서도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과 억압을 받아 왔기 때문에 인간으로서의 여성의 권리를 찾아야 한다는 페미니즘은 이 시기에 급속히 대중성을 획득해 갔으며, 여성과 남성이 평등하게 다같이 인간답게 사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여성운동 혹은 페미니즘 운동은 그때까지 모든 사회운동을 지배해왔던 민주화 운동 속에서 그 독자성을 획득하게 되었다.

1983년 여성의전화, 여성민우회 등의 여성운동단체들이 생겨났으며, 대학 내에 여성학과가 설치되었고 한국여성학회도 창립되었다. 또한 대외적으로 1984년 한국은 UN여성차별철폐협약 가입국이 되었고, 이 협약의 가입은 한국의 법과 제도가 가진 남녀차별성을 선명하게 드러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와 같은 대내외적 흐름 속에서, 가정과 사회에서의 여성차별철폐를 위한 운동이 조직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1985년 '25세 여성 조기정년철폐를 위한 여성단체연합'을 발족하면서 여성들의 연대하에 조기정년제 철폐를 요구하는 소송이 최초로 제기되었고 다음해 86년 결혼퇴직제철폐 싸움이 진행되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인간의 권리 가운데 가장 중요한 노동권이 여성에게는 평생토록 보장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주요과제로 제시되었다.

이와 함께 한국의 여성운동은 여성에 대한 폭력문제에 대해 대중들에게 말하게 되었다. 개별적 사건으로 파편화되고 일상 속에서 숨겨져 왔던 여성에 대한 폭력이 사실상은 여성에 대한 가장 나쁜 형태의 차별이며, 이것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 범죄인 것을 드러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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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년 여성계는 권인숙 성고문 사건 공대위를 꾸려 일반 운동 속에서 여성이 당하는 성폭력의 실상을 드러냈고 이후 성폭력법 제정운동을 이끌어냈다. 사진은 권인숙씨와 변호를 담당했던 고 조영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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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년 권인숙 성고문사건 공대위의 중요한 역할은 민주화운동이나 노동운동이라는 일반적 운동 속에서 여성으로서 당하는 성폭력(gender violence)의 실상을 드러내면서 여성운동의 독자성이 담보되어야 할 필요를 더 절실하게 느끼게 한 계기가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 여성들은 여성에 대한 폭력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와 사회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것은 성폭력법 제정운동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운동의 결과, 한국의 정치, 사회, 경제 제영역에서 여성차별을 완화하고 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일련의 법과 제도의 개선이 있었다.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 제정을 필두로 1989년 가족법, 1991년 영유아보육법, 1997년 가정폭력방지법, 그리고 1999년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 등을 연이어 제·개정하였다.

위에서 본 것처럼 한국의 법과 제도의 정비는 빠른 시간 내에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으나, 이것이 단순히 형식적 개선에 불과하며 실질적 평등을 보장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오늘도 잘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도 여성에 대한 실질적 평등보장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여성의 권리는 인권이다(Women's rights are human rights)'라는 말로 대변되는, 여성인권의 사상이 우리 국민들 모두의 가슴 속에 와 닿은 때에 진정한 양성평등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여성인권 20년의 큰 성과가 여성인권이라는 말이 생소하지 않게 들리게 한 것이라면, 이제 우리는 이 말을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에 쓸 필요가 없는 과거의 말로 바꾸는 운동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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