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말만 들어도 ‘눈물’…“이제 간호법 제정으로 보호해야”
이직과 사직 반복하다 경력단절된 간호사도 16만여 명에 달해

 

ⓒ대한간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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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들이 도저히 못 버티겠다며 계속 나가고 있다. 병상이 늘어 간호사를 더 뽑아야 하는데, 간호사는 오히려 줄었다. 내가 그만 두면 동료들이 져야 할 짐이 그만큼 무거워지기 때문에 그만두지도 못한다.”(수도권 A병원 간호사)

“선별진료소에서 4∼5시간씩 검체를 채취하다가 보건소에 들어오면 원래 담당하던 금연 사업 등 건강증진 업무를 병행해야 했다. 그러다 갑자기 역학조사를 다녀오라는 지시가 내려 오기도 한다.”(수도권 B보건소 간호사) 

코로나 발생 700일이 지났다. “살리고 싶다”는 마음 속 다짐을 외치며 하루하루 버터 왔던 간호사들이 의료현장을 떠나고 있다.

간호사들은 코로나와 맞서 싸운 영웅들이라 칭찬만 할 뿐 낮은 처우와 높은 업무강도는 바뀐 게 없다며 번아웃을 호소하고 있다. 이들은 또 보건소와 의료기관에서 아까운 목숨을 버린 간호사의 소식을 들으며 "이 답답한 현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 방법을 모르겠다"며 답답해 했다.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는 “코로나19 팬데믹을 통해 간호사가 보건 안보의 중요한 인력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면서 “코로나19 대유행은 부족한 간호인력을 보완하려면 자원봉사에 나선 ‘파견간호사’로 해결하는 땜질식 처방이 아니라 숙련된 간호사를 양성하고 확보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줬다. 간호사들은 지난 2년여동안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우느라 지칠 대로 지쳐 ‘살고 싶다’며 의료현장을 떠난다”고 토로했다. 

코로나에도 현장 간호사 수는 제자리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건강보험통계’에 따르면 전국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는 지난 6월 말 현재 23만4017명이다. 올해 배출된 신규간호사는 2만1741명이지만 지난 1년간 늘어난 간호인력은 이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만650명에 불과했다. 이러다 보니 의료현장은 만성적인 간호인력 부족과 업무과중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2020년 지역별 고용조사’ 자료를 보면 이직과 사직을 반복하다 경력이 단절된 간호사만 2019년 말 현재 전체 면허자의 38.1%(16만여 명)에 달한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 간호사의 노동강도는 외국과 비교하면 가히 살인적인 수준이다. 외국에선 보통 간호사 1명이 환자 5명을 보는데, 우리는 12명을 돌보도록 법에 규정돼 있지만 의료기관들이 이를 지키지 않아 간호사 1명이 보통 20∼30여명을 돌봐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간호사들은 밥 한끼 제때 먹지 못하고 화장실 갈 여유조차 없다고 한다. 간호사들이 방광염과 위장병을 달고 사는 이유다. 

간호사는 데이-이브닝-나이트 3교대 근무로 환자 곁을 24시간 지키는데 인력 부족으로 근무가 들쭉날쭉해 생체리듬이 깨지기 일쑤다. 여기에 낮은 처우와 살인적인 노동강도로 심신 모두 빠르게 소진된다. 

이처럼 열악한 근무환경 탓에 신규간호사의 45% 이상이 1년 안에 의료현장을 떠나고 있다. 특히 임신, 출산, 육아 여건이 여의치 않아 30세 안팎이면 상당수가 병원을 떠난다. 간호사 면허를 ‘7년짜리’로 부르는 이유다.

신경림 대한간호협회 회장은 “병원들이 간호인력의 법정 기준을 지켜야 그나마 간호사들의 숨통이 트이는데 제대로 지키는 병원이 많지 않다. 법을 지키지 않아도 과태료만 내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정부가 기준을 지키지 않는 병원에 대해 업무정지 등 행정처분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대한간호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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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땜질식 처방만 남발

간호사들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하루도 마음 편한 날 없이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텼다고 토로한다. 코로나 이전 일반 병동에선 8시간 근무하고 1시간의 휴식을 보장받아야 하는데 과중한 업무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코로나 상황에서는 방호복을 입고 2시간 근무하면 휴식하는 게 원칙이지만 대부분 3∼4시간씩 일하고 있다. 간호사가 지치면 환자 간호에 대한 집중력은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도 그렇다. 현재 위중증 환자가 넘쳐나는 코로나 중환자 병동의 경우엔 더하다. 1명의 환자를 치료하자면 의사 1명에 간호사 4명이 달라붙어야 한다. 하지만 간호사가 부족하다 보니 코로나 중환자는 물론 비코로나 중환자까지 놓치게 돼 의료 붕괴에 몰리게 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 몫으로 돌아간다.
 
보건소에 근무하는 간호사들의 상황도 심각하다. 보건소 간호사의 경우 월 100시간 이상의 초과근무는 다반사다. 선별진료소에서 검체 채취, 역학조사, 백신접종 등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상황을 감내하고 있다.

간호사들은 이런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가장 큰 이유로 현재 의료법을 꼽는다. 지금의 의료법은 의료시설이나 의사 관련 조항에 집중돼 있어 간호사와 관련된 정부의 대책은 대부분 법에 근거한 가이드라인에 따른 권고나 모니터링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간호사 부족만 해도 문제가 불거진 지 벌써 수십 년이 흘렀다. 하지만 간호인력을 늘리고 처우를 개선해 간호사들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도는 거의 없이 간호대학 신증설 등 땜질식 대책만 세우다 보니 문제가 해결되기보다는 오히려 악화됐다.

숙련 간호사 공백, 환자 안전 위협

대한간호협회는 간호사 부족문제는 전례 없이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밝히고 있다.  코로나 전담병원 등으로 지정된 공공의료기관의 경우 만성적인 간호사 부족에 중환자실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의료기관의 병상 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일본에 이어 2위일 정도로 많았지만, 중환자실은 적고, 중환자를 담당할 숙련 간호사도 적다. 

코로나 전담병원 등으로 지정받은 지방의료원들은 열악한 근무조건과 낮은 임금으로 병실은 있어도 숙련된 경력직 간호사가 없어 환자의 안전까지 위협하고 있다.

하루 7000여 명을 넘나드는 코로나19 감염자로 상황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에 따르면 17일 오후 5시 기준으로 전국의 코로나19 중증병상 가동률은 81.0%(1299개 중 1052개 사용)를 기록했다. 직전일(81.9%)보다는 소폭 하락했지만 수도권 중환자 전담 병상 가동률은 90% 안팎에 달한다.

중환자를 위한 병상은 입·퇴원 수속과 여유 병상 및 간호사 확보 등의 이유로 100% 가동되기 어려운 만큼 정부는 가동률이 75%를 넘으면 ‘위험신호’로 보고 있다.

인천은 92.9%로 90%를 넘었고, 서울은 85.7%, 경기는 84.0%를 기록했다. 수도권에 남은 중증병상은 총 120개다. 비수도권에서도 일부 지역은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는 등 병상 여력이 없는 상황이다.

대한간호협회는 12월 22일 간호법 제정을 12월 임시국회에서 통과해달라는 세 번째 수요 집회를 열었다 ⓒ대한간호협회
대한간호협회는 12월 22일 간호법 제정을 12월 임시국회에서 통과해달라는 세 번째 수요 집회를 열었다 ⓒ대한간호협회

간호법 없는 나라, 대한민국

코로나 최전선을 지키는 간호사들은 ‘코로나’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난다고 말한다. 위험하고 감당하기 힘든 환자 수도 처음이고, 이 고비만 넘기면 되겠지 하고 지난 2년여를 견뎌 왔지만 그 끝이 보이지 않는데다 이들을 보호할 간호법 역시 우리나라에는 없기 때문이다. 

간호계가 대한간호협회 중심으로 겨울 추위에도 국회 앞에서 한 달 넘게 ‘1인 및 릴레이 시위’, ‘수요 집회’ 등의 단체행동을 이어오고 있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신경림 대한간호협 회장은 "간호사를 말로만 ‘코로나 영웅’이라 부르지 말고 대한민국의 보건안보를 책임질 수 있게 해달라"며 “간호법 제정을 통해 번아웃 직전에 몰려있는 간호사들을 살리고, 간호사들의 사직 행렬을 막고, 국민의 안전을 지켜내고 싶다”고 강조했다.

지금의 의료법은 슬픈 역사를 갖고 있다.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의료인들을 강제징용하기 위해 당시의 의사규칙, 의생규칙, 치과의사규칙, 간호사규칙 등 모든 의료관련 법안을 통합해 1944년에 만든 조선의료령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인 1951년 국민의료법으로 이어져 현 의료법의 뿌리가 됐기 때문이다. 일제는 태평양 전쟁 패배 이후 1948년 의료법과 함께 의사법, 치과의사법, 보건사․조산사․간호사법을 별도로 복원시켰다. 우리나라는 올해 ‘선진국 대한민국’이라는 타이틀을 부여 받았지만 간호사들의 현실은 77년 전 일제 잔재 속에 멈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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