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엔 달라져야 할 것들]
성인 10명 중 9명 찬성하고
소수자 혐오·인권침해 심각한데
OECD 회원국 중 한국만 방치
시대의 소명 미루지 않아야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2021년 9월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차별금지 평등법 제정 촉구 30km 오체투지' 마무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홍수형 기자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2021년 9월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차별금지 평등법 제정 촉구 30km 오체투지' 마무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홍수형 기자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유일하게 포괄적 차별금지법 논의를 방치하고 있다. 2022년이 됐건만 헌법이 보장하는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국민이 실질적으로 누리도록 할 가이드라인이 없다.

차별금지법은 15년째 표류하고만 있다. 2007년 노무현 정부 때 처음 정부 입법으로 발의됐다. 2012년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의 공약이었다. 시민사회는 물론 국제인권기구도 13번 넘게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했다. 다수 국제인권조약 당사국이자 유엔인권이사회 이사국으로서 한국은 국제사회의 요청에 응답할 책무가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와 20대 국회는 ‘사회적 합의’가 먼저라면서 외면했다. 21대 국회에서 7년 만에 차별금지법/평등법이 발의됐지만 ‘사회적 합의’를 이유로 또 늦춰졌다. 국회 국민동의청원 요건을 충족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간 차별금지법 심사기한은 회기 종료일인 2024년 5월로 미뤄졌다. 거대양당 대선후보들도 논의를 이어가기는커녕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부정적이다. 그새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인권침해는 더 빈번히,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인권시민단체는 우려한다.

‘차별’과 ‘혐오’가 나쁘다는 데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여성이라 채용 면접에서 탈락하고, 장애인이라서 보험 가입을 거부당하고, 지방대 출신이라 취업 현장에서 불이익을 받고, 피부색이 달라서 목욕탕 출입을 거부당하는 게 부당하다는 데 동의하지 않을 이는 없다.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2020년 6월 국가인권위원회 국민인식조사 결과, 성인 10명 중 9명은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했다. 10명 중 7명은 ‘성소수자를 차별해선 안 된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무엇이 차별행위이고 혐오발언인지, 이를 없애려면 어떤 조치가 필요할지, 구체적인 기준이 마련된 적도, 공적인 논의가 시작된 적도 없다. 오히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한국 사회가 성적으로 문란해진다’,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 등 근거 없는 주장이 판친다.

부당한 차별을 바로잡은 순간도 있었다. 고(故) 변희수 전 육군 하사 전역 취소 판결이다. 2021년 10월 대전지법 행정2부(오영표 부장판사)는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육군으로부터 ‘심신장애’ 판정을 받고 강제 전역당한 고인의 손을 들어줬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선정 2021년 최고의 ‘디딤돌 판결’이었다. 그러나 가장 기뻐했을 당사자는 이 세상에 없다. 사회적 소수자를 노린 차별과 혐오 대응을 미룰 때 조용히 스러져가는 사람들이 있다. 정치권과 국회가 차별금지법 제정이라는 시대의 소명을 미뤄선 안 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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