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대표 증원 무산된 국회 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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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3월 2일 임시국회 마지막 날 이른 아침, 여성단체 대표들은 민주당 박금자 의원실에 모였다. 지난 2월 27일 국회에서 지역구 의석수 227석에 15석을 확대해 242석으로 결정된 후 비례직 숫자는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당의 입장이 제각기 다른 상황이라 비례직을 46석에서 11석을 더 늘리는 안을 포함해 의원정수를 299석으로 하는 수정동의안에 의원 서명을 받기 위해서였다. 간신히 30명의 서명을 받기는 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제출되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국회 본회의에 가서 민주당이 전북지역 일부 선거구 획정을 변경하자는 수정동의안을 내는 것을 보고 알게 되었다. 아마도 민주당에서 박금자 의원이 수정동의안을 내지 못하도록 종용하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박금자 의원이 제출할 수정동의안은 정개특위에서 의원정수에 대해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것을 대비해서 준비한 안이고 국회 본회의에서 정개특위가 299석으로 확대하는 안을 내놓았기 때문에 의사 진행에서 큰 문제는 없었다.

오전 10시에 열릴 예정이었던 국회 정치개혁특위는 11시 넘어 각당 간사회의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여성단체 대표들은 정개특위 의원들에게 3월 1일 발표한 '비례직 확대를 촉구하는 214인 여성선언'을 전달하면서 밀착 설득(협박?) 작전을 펼쳤다. 마침 열린우리당은 오전에 의총을 열어 의원정수를 299석으로 확정하고 비례직 11석 확대는 여성을 위해서 배정하기로 하고 비례직 중 60%를 여성에게 할당한다는 당론을 정했다. 4당 간사회의에서는 299석으로 확대하기로 합의하고 열린우리당이 제안한 60% 여성할당은 채택되지 않았다. 정개특위 전체회의가 오후 5시경 열렸다. 간사회의 합의사항이 보고되고, 위원들이 기존에 합의된 것을 수정하자는 제안이 나오고 열 가지 정도 새롭게 논의를 시작했다. 국회 본회의는 모든 안건을 다 처리하고 정개특위 결정사항을 기다리고 있는데, 벼랑 끝까지 밀고 가면서 의원들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사항을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제주도의 의석수가 2석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는데 3석으로 유지하는 예외조항을 넣어 결국 지역구를 15석에서 16석으로 확대하고, 선거공보물에 선거법 위반사항을 기재하도록 하는데 벌금형을 받은 경우까지 하기로 했는데 금고형으로 높여 의원에게 불리한 조항은 완화하고, 예비후보자들이 불특정한 사람에게 명함을 돌리는 행위도 허용했다가 제한하자고 하는 등 개혁안으로 합의했던 사항을 후퇴시키기 시작했다. 더 기막힌 것은 비례직 확대를 위해 의원정수를 299석으로 정하자고 간사회의에서 합의했지만 한나라당 의원들 대다수가 지역구 증석은 동의하지만 비례직은 줄이자고 주장을 하고 민주당 일부 의원도 비례직 확대가 당론이면서도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논란 끝에 비례직을 현행대로 46석으로 하고 지역구만 늘리는 안에 대해 먼저 표결을 했는데 9대9 동수가 되어 부결되었다. 다음으로 299석으로 늘리자는 안은 번안이므로 2/3 동의가 필요한데 표결하면 부결될 상황이고 결과적으로 의원정수는 273석으로 확정되어 비례직은 30석으로 결정날 순간이었다. 그때 열린우리당 천정배 의원이 의원정수는 표결하지 말고 합의하자고 강력하게 주장해 다시 정회가 되었다.

이때부터 여성단체 대표들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각당 여성의원과 여성국에 연락해 자기 당의 의원들을 설득하라고 요청했다. 각당의 원내대표들이 정개특위 의원들과 논의를 하더니 다시 정개특위가 속개되었다. 밤 10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한나라당의 오세훈 의원과 손희정 의원을 빼고 299석으로 확대하는 것을 모두 반대하던 한나라당 의원들과 당론을 어기면서 299석을 반대하던 민주당의 김성순 의원과 전갑길 의원들이 갑자기 태도를 바꿔 299석 확대에 모두 동의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심규철 의원과 박종희 의원은 지역구 증석만 찬성하고 비례직 11석 늘리는 것은 끝까지 반대했다.

우여곡절 끝에 국회 본회의가 11시 20분 속개되었다. 정개특위 위원장이 정당법, 선거법,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설명했다. 그런데 민주당 양승부 의원외 60여 명이 선거구획정위원회가 결정한 전북 일부 지역구 획정안에 대해 수정제의안을 냈다. 그 내용은 열린우리당 정세균 의원 지역구를 없애고 민주당 김태식 의원 지역구를 유지하자는 안이다. 이 안에 대해 이미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공조하기로 하고 홍사덕 총무 명의로 각 의원에게 양승부 의원 수정안을 동의해 달라는 쪽지가 돌았다. 선거구 획정은 국회가 선거구획정위원회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는데, 이미 제주도 3석 결정으로 획정위의 의견을 무시했고, 전북 지역까지 흔들려고 하는 것이다. 방청석에서 기다리던 총선여성연대 단체 대표들은 국회의원들의 염치 없는 행태에 분통를 터뜨렸지만 별도리가 없었다. 우리당 의원들의 거센 항의로 자정을 넘기고 임시국회는 회기를 넘기고 말았다. 한나라와 민주당이 정개특위에서 299석 안을 동의해 준 것은 다 이런 속셈이 있었던 것이고 결과적으로 회기를 연장해 자기 당 의원들이 체포되는 것을 막는 성과까지 거둔 셈이다. 정말 권력과 기득권을 가진자들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 벌이는 온갖 술수와 야합에 신물이 난다. 국민들의 눈이 무서워서 최소한의 질서는 지킬 줄 알았는데….

철밥통을 지키려는 염치없는 국회의원들, 여성을 우롱하고 기만하는 반여성적인 국회의원들을 보면서 정치의 새판짜기를 위해 여성의 정치적인 힘을 4.15 총선에서 보여줘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며 육중한 여의도 의사당을 빠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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