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올림 활동가가 직업병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모습. ⓒ뉴시스
반올림 활동가가 직업병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모습. ⓒ뉴시스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전자산업체에서 일하던 청소노동자의 암 발병을 산업재해로 인정한 첫 사례가 나왔다.

노동인권단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는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캠퍼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라인에서 10년간 근무한 뒤 유방암에 걸린 청소노동자 황모씨의 산재 신청을 근로복지공단이 승인했다고 5일 밝혔다.

황씨는 미싱사로 20년, 택시운전사 1년, 요양보호사 1년 반을 일한 뒤, 디스플레이 청소노동자로 10년간 일했다. 2020년 11월 정년퇴직 후 지난해 4월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지난해 6월 공단에 산재를 신청했다.

지난달 20일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황씨의 유방암을 업무상 질병으로 판단했다.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되려면 질병이 업무로 인해 발생했다는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위원회는 황씨가 미싱사로 근무하던 기간에 불규칙적이고 간헐적인 야간·철야작업을 수행했을 가능성이 높고, 그 외 사업장에서도 격일제나 변형 또는 3교대로 근무해 야간 근무 이력이 약 20년 이상으로 볼 수 있다고 봤다.

디스플레이 생산공정에서 스막룸(smock room·생산라인 출입 전 방진복으로 갈아입는 공간) 청소할 때 다양한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되었을 가능성도 존재하는 고려해 유방암 발병과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를 판정위가 인정한 것이다.

반올림은 이번 산재 승인을 환영하며 “야간근무 이력을 넓게 인정한 점, 라인 출입 준비공간(스막룸)에서의 유해물질 노출을 인정한 점, 반도체‧디스플레이 청소노동자 첫 산재 인정사례인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유방암은 야간근무가 주요한 유해요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야간근무가 너무 일반화돼 있다보니 산재 심사 과정에서 야간근무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기도 했다. 이번 산재 심사에서도 공단의 업무관련성 전문조사 필요성 여부 자문 결과에서는 미싱사 시기 주 1~2회 철야·야간 작업은 야간근무로 인정하지 않았다. 디스플레이 청소노동자 시기의 교대근무는 야간근무 횟수가 일반 3교대 근무보다 적다는 이유로 위험성을 낮게 봤다. 하지만 위원회는 황씨의 근무이력 전반을 야간근무로 인정했다.

스막룸에서 청소를 했던 사례가 산재로 인정된 의미도 크다. 그동안 직업병과 관련해 주목을 받은 곳은 클린룸이었다. 스막룸은 클린룸으로 이뤄진 디스플레이 공장 라인을 들어가기 위한 준비 공간으로, 디스플레이 공장의 작업자들은 스막룸에서 옷(일상복↔방진복)을 갈아입고 라인에 들어가거나 라인에서 나와서 옷을 다시 갈아입는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반도체 제조 사업장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작업환경 및 유해요인 노출특성 연구’에서는 스막룸에서 라인 내 화학물질이 검출된다고 밝힌 바 있다. 그간 스막룸의 위험성이 공식적으로 인정된 적은 없었는데 이번에 처음 공단이 인정한 것이다.

반올림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공장의 노동자로는 오퍼레이터와 엔지니어가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 외에도 다양한 노동자들이 근무하고 있다”며 “이들의 경우 존재도 사회적으로 아직 잘 드러나 있지 않은 상황이라, 노출 가능한 위험이 무엇인지, 피해가 얼마나 존재하는지는 베일에 가려져있다”고 지적했다. 반올림은 그간 14명의 청소노동자 피해제보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판정을 계기로 전자산업 청소노동자의 피해사례가 많이 알려져야 하고, 청소노동자의 진술에 대해 우리 사회가 더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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