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성추행 교사에 배상 받아낸
충북여중 스쿨미투 생존자 A씨
2016년 사건 발생 후 6년째 법정 투쟁
2차 가해에 고교 자퇴...학업 미룬 채 싸워
‘꽃뱀 낙인’ 우려에도 손배소 결심
“가해자 책임 끝까지 물을 것...
생존자들 당당할 수 있게 선례로 남고파”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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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자들이 손해배상을 요구하면 부정적 시선을 많이 받잖아요. 그렇지만 가해교사를 상대로 학생이 이렇게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널 가르친 선생님에게 어떻게 그래, 좋게좋게 넘어가’라던 사람들에게도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다른 생존자들이 용기를 낼 수 있는 선례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충북여중 스쿨미투 생존자 A(20)씨)

중학생 제자를 성추행한 교사가 피해자에게 손해배상금을 내게 됐다. 스쿨미투 생존자가 가해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해 승소한 첫 사례다. 중학생 때부터 스무 살이 된 지금까지 기나긴 싸움을 이어온 생존자에겐 값진 승리다.

청주지법 민사22단독(김룡 부장판사)는 지난달 21일 A씨가 전직 충북여중 교사 60대 김모 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13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김씨가 교사였고, 제자를 성추행했으며 당시 피해자 A씨가 13세에 불과했고,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2차 피해가 발생했고, A씨가 정신과 진료를 받는 등 상당한 피해를 호소하고 있는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A씨는 본래 요구한 2000만원보다 법원이 정한 손배액이 적다며 항소했다. A씨 법정대리인인 조영신 변호사는 “법원의 위자료 산정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법원이 A씨에게 ‘소송비용의 1/3을 부담하라’고 한 데 대해서도 “애초에 가해자 때문에 시작된 소송인데 왜 피해자가 비용을 지급해야 하는지 따질 계획”이라고 말했다. 

A씨는 “가해교사는 2심까지도 자신은 무고하다고 주장하면서 피해자들을 깎아내렸다. 끝까지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피해 고발과 소송을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제가 좋은 선례로 남았으면, 그래서 다른 생존자들이 당당하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충북여중 스쿨미투 피해생존자가 가해교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1심 선고일인 2021년 12월 21일, 충북여중스쿨미투지지모임이 청주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충북여중스쿨미투지지모임
충북여중 스쿨미투 피해생존자가 가해교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1심 선고일인 2021년 12월 21일, 충북여중스쿨미투지지모임이 청주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충북여중스쿨미투지지모임

A씨를 성추행한 가해자 김씨는 충북여중 교사로 근무 중이던 2016년부터 제자들의 엉덩이나 가슴을 만지고, 이마에 입 맞추는 등 원치 않은 신체접촉을 10여 차례 저지른 혐의로 기소됐다. 수업 중 “생리주기를 적어오면 가산점을 주겠다”는 등 성희롱한 혐의도 받는다.

스쿨미투 열기가 거세던 2018년 9월, 충북여중 학생들이 직접 학내 성폭력 피해 제보를 받아 SNS로 폭로한 사실이다. 당시 A씨도 SNS 계정을 공동 관리하며 공론화에 힘썼다.

형사재판 결과 가해교사 김씨는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2020년 2월 1심은 김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그해 9월 항소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으로 감형됐다. 김씨가 “범행을 인정하며 반성하고 있고, 1명을 제외한 나머지 피해자들과 합의했고, 일부 피해자들이 처벌 불원서를 제출한 점” 등이 이유였다. 취업제한 5년 명령은 유지됐다.

재판과정에서 A씨는 심각한 2차 가해를 겪었다. 검사와 재판부의 잘못으로 1심 도중 신상이 노출됐다. 가해자 측은 지속적으로 그를 협박·회유했다. A씨를 허위 비방하는 편지가 가족과 주변인에게 날아들기도 했다. 좁은 지역사회에서 청소년이 견디기엔 어려운 공격이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지 1년 만에 자퇴했다. (관련기사 ▶ 검찰·법원이 스쿨미투 피해자 신상 노출...2차 가해에 학교 떠나 www.womennews.co.kr/news/213018)

A씨도 반격했다. 지역 시민사회여성단체 연대체인 ‘충북여중 스쿨미투 지지모임’의 도움으로 검사와 재판부 징계를 요청했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했다. 2021년 12월 국민권익위원회가 이를 받아들여 피해자 신상을 노출한 검사 징계를 권고했다. 충북지방검찰청은 해당 검사에 대해 감찰 절차를 진행 중이다. 하지만 정황 증거가 부족해 재판부의 책임은 묻지 못했다. 2차 가해를 저지른 가해자를 형사 고소했으나 ‘증거불충분’으로 기소중지됐다.

고등학교를 그만둔 A씨는 한동안 청소년인권단체 활동가가 돼 스쿨미투 아카이빙, 충북 지역 학교들의 인권침해적 교칙 조사와 고발 등에 참여했다. 지난해 수능시험을 치를 계획이었으나 길어진 법정 공방으로 한 해 미뤘다. 그 긴 싸움에 든든한 지원자가 돼 준 것은 이름 모를 시민들이었다. 지난해 12월 충북여중스쿨미투지지모임이 민사소송 비용을 마련하려 모금을 시작하자 이틀도 안 돼 목표액 500만원이 모였다. 민사소송 1심 과정에서도 여러 시민이 탄원서를 보내왔다.

“저는 학업을 중단했으니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그렇지 않았다면 합의하고 끝냈을 지도 몰라요. 하지만 피해를 제대로 인정받지도 배상도 못 받고 그치면 안타깝잖아요. 민사소송을 하고 싶어도 부담스러워하는 분들이 많은데 제가 좋은 선례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피해자가 당당하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는 다른 생존자들에게도 연대와 응원의 말을 전했다. 최근 청주지법이 ‘충주여고 스쿨미투’ 가해자로 지목돼 아동복지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교사 2명에게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잇따라 무죄를 선고한 일을 언급하며 “수많은 이들이 진술했음에도 단순히 증거 부족으로 치부해 씁쓸하다. 스쿨미투 사건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안타까운 판결”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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