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 페미니즘의 고전
뤼스 이리가레 『반사경』 첫 번역 출간

반사경 (뤼스 이리가레/심하은·황주영 옮김/꿈꾼문고) ⓒ꿈꾼문고
반사경 (뤼스 이리가레/심하은·황주영 옮김/꿈꾼문고) ⓒ꿈꾼문고

‘성차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철학자, 뤼스 이리가레의 『반사경: 타자인 여성에 대하여』가 국내에 처음 번역 출간됐다. 680쪽 두께의 철학박사 학위논문이자, 정신분석 페미니즘의 고전이다. 프로이트와 라캉을 포함해 수많은 남성 주도의 서양철학 이론을 ‘남근중심주의 담론’이라고 날카롭게 비판한다. 이리가레는 이 논문 때문에 파리 프로이트학회에서 축출되고 재직 중이던 파리8대학에서도 파면당했다. “서양철학사를 새롭게 다시 쓴 문제적 저작”으로 불리는 이유다.

이리가레는 기존 ‘서양철학의 아버지들’이 ‘남성 문화’를 보편 문화로 여기고 향유하면서 “여성적-모성적”인 것들을 배제해왔다고 지적한다. ‘여성’과 ‘남성’의 차이가 철학사에서 어떻게 무시당하고 제거됐으며, 남성을 위해 전유됐는지를 살펴본다. 기존 논의의 틀 안에서 남성 주도의 이론을 반사(反射)하는 주체가 되자고 말한다.

이를 위해 이리가레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프로이트, 마르크스, 엥겔스까지 서양 철학자들의 주저 속 개념과 문장을 끌어와 논의를 전개한다. 1부부터 프로이트의 저서를 상당 부분 인용하면서 원저의 문장을 재배치하고, 미묘하게 수정하거나 언어유희를 구사한다. 기존의 (남성적) 개념과 언어를 해체하고 낯설게 재구성하는 이리가레의 글쓰기가 당혹스러울 수도 있다. 개념이나 단어의 근본적인 의미를 파헤치고 하나의 단어가 가진 여러 의미를 드러내면서 여성적인 것과 모성적인 것을 새롭게 조명한다. 서양철학의 논의나 정신분석학에 익숙한 독자, 프랑스어를 구사할 줄 아는 독자라면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벨기에 출신 철학자 뤼스 이리가레 ⓒ길 제공
벨기에 출신 철학자 뤼스 이리가레 ⓒ길 제공

황주영 번역가는 “순서대로 읽을 필요 없이 독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부분에서 시작하는 게 도움이 된다”면서 “인용된 글을 추적해 읽으면서 문장이 갖는 의미와 뉘앙스를 조금씩 이해하게 될 때, 때로 감탄하고 때로 속 시원한 웃음을 터뜨리는 순간을 만나는 것도 이 책이 주는 즐거움 중 하나”라고 말했다.

뤼스 이리가레/심하은·황주영 옮김/꿈꾼문고/2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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