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7일까지 학고재 화랑 & 아트센터
이봉상· 류경채· 강용운· 이상욱· 천병근· 하인두· 이남규 등
세계에서 주목 받는 한국적 추상화 양식 이룩한 작가들

류경채(1920-1995) 작 '향교마을 75-5', 캔버스에 유채, 53x45.5cm, 1975. ⓒ류경채
류경채(1920-1995) 작 '향교마을 75-5', 캔버스에 유채, 53x45.5cm, 1975. ⓒ류경채

추상화 전성시대다. 이우환의 그림값은 천정부지로 뛰고, 박서보· 하종현· 윤형근· 정상화의 단색화는 없어서 못판다는 마당이다. K아트에 대한 기대와 함께 세계적으로 한국 추상화가 주목 받는 지금, 국내 추상화의 맥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회가 마련돼 주목을 끈다. 2월 6일까지 서울 종로구 학고재 본관 및 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에이도스를 찾아서: 한국 추상화가 7인’ 전이다.

이봉상(1916~1970),류경채(1920~1995),강용운(1921~2006),이상욱(1923~1988),천병근(1928~1987), 하인두(1930~1989), 이남규(1931~1993) 등 20세기 한국 추상화의 싹을 틔우고 키워낸 일곱 작가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귀한 전시다. 전시작은 회화 56점과 유리화 2점 등 58점. 아트센터 지하 1층 아카이브 섹션에선 작가들의 각종 기록. 상호 교류, 전시 활동의 자취를 둘러볼 수 있다.

7명의 작가는 1920~30년대에 태어나 광복 후 서구에서 유입된 추상회화의 물결 속에서 한국적 양식을 이룩해낸 이들이다. 에이도스(eidos)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나오는 사물의 본질을 이른다.

추상화라는 지향점은 같지만 각기 뚜렷한 개성을 지닌 일곱 작가의 작품은 1940~1990년대 한국 추상화의 다양한 면모를 드러낸다. 각각의 작품들은 추상화라는 개념조차 낯설던 시절, 자신만의 방식으로 추상의 본질에 다가가고자 심혈을 기울였던 개척자 7인의 노력과 인고의 세월을 보여준다. 형태는 다르지만 하나같이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지역 특수성과 세계 보편성 등 상반되는 것들의 조화를 모색하고자 했던 작가들의 고민과 치열함을 느끼게 한다.

동시대 미술의 거대한 물결을 공유하면서 서구 조형어법에 주체적으로 대응했던 작가들의 정신은 작품 제목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태고 때 이야기’/‘미분화시대’(이봉상), ‘향교마을’ /‘염원’(유경채), ‘생명‘/’대화‘(강용운), ‘독백’/‘회화’(이상욱), ‘운명’/‘우화’(천병근) ‘만다라’/ ‘률(律)’(하인두), ‘작품’(이남규) 등이 그것이다.

이봉상 작 '나무 1', 캔버스에 유채, 115*168cm, 1963
 

이봉상은 14세 때 제8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고, 1937년 경성사범학교 연수과를 졸업했다. 홍익대 교수, 현 교육부인 문교부의 국정교과서 편집위원을 지냈다. 1950년대에 강렬한 색채와 거친 필치, 대담한 생략 등 야수파적 작품 발표했고, 반추상을 거쳐 1965년 이후 추상으로 전환했다.

류경채는 1949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폐림지 근방’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국전 심사위원과 운영위원장, 서울대 교수. 예술원 회장을 지냈다. 서정적 추상에서 1980년대 이후기하학적 추상세계로 옮겨갔다.

강용운은 1942년 제8회 일본대조회전에서 특선을 차지했다. 광주교대 교수를 지냈고, 1981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호남 추상미술의 개척자로 야수파적 표현주의의 반추상을 발표하다 전통수묵처럼 묽은 물감으로 담백하게 구성한 화면에 향토의 정감을 녹여냈다.

이상욱은 일본 도쿄 가와바타화숙에서 수학했다. 1960년대부터 기하학적 구성과 일정한 길이의 굵은 붓자국이라는 두 가지 형태의 추상 양식을 발표했다. 1980년대 들어서는 일필휘지같은 서체에 속도와 리듬 호흡을 불어넣었다. 동아미술제 운영위원장을 역임했다.

천병근은 일본 도쿄 소재 미술학교에서 수학하고 1947년 귀국했다. 목포공립중 교사로 부임한 뒤 목포고 경복고 배재고 교사로 재직했다. 일본 유학 초기에 배운 초현실주의 조형 양식을 실천했다. 대담한 붓 터치만으로 조형성을 획득하는 서체적 초현실주의를 이룩했다.

하인두는 1953년 서울대 미술부를 졸업했다. 1971년 칸국제회화제에서 프랑스국가상을 수상했다. 한성대 교수를 지냈다. 한국 전통미술과 불교적 세계관을 추상회화외 구현했다. 1970년대부터 우리 것의 뿌리 찾기에 매달렸다. ‘만다라’ ‘윤(輪)’등 불교의 법어를 제목으로 삼았다.

이남규는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했다/ 1960년대말 오스트리아에서 유리화를 공부, 대전 대흥동성당의 성모상과 유리화를 제작했다. 구도의 길을 걸었던 종교화가다. 창작활동의 목표를 자기 본연의 모습을 찾는 수도라 여겼다. 생명, 자연, 우주의 질서를 화폭에 담고자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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