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남성들이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이라는 이름의 단체를 구성하고 "우리는 정치권과 미디어에서 그려내는 다 똑같은 청년 남성이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이들은 정치권에서 표심잡기에 몰두하는 이른바 '이대남'(20대 남성)이 누구인지 되물으며 "우리는 서로 헐뜯고 경쟁하기보다 여전히 남아있는 성차별을 개선하여 공존하고 싶다"고 말했다.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 회원들의 기고를 세 차례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주>

행동하는보통남자들이 9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우리는 이대남이 아니란 말입니까' 기자회견을 열었다. ⓒ홍수형 기자
행동하는보통남자들이 9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우리는 이대남이 아니란 말입니까' 기자회견을 열었다. ⓒ홍수형 기자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은 인류가 태양계 밖에서 지구를 바라보기까지의 과정을 일반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그리고 재미있게 잘 적어낸 교양과학서다. 태양계 밖에서 바라본 지구는 이 책의 제목 그대로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했다. 이 글은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을 중심으로 최근 종종 호명되는 ‘이대남’에 대한 단상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데에 목적을 둔다.

먼 옛날, 인류는 지구를 중심으로 뜨고 지는 태양과 달, 그리고 별자리를 중심으로 시간 개념을 만들고 방향감각을 유지했다. 위대한 철학자라 불리는 아리스토텔레스조차 자신의 제자들에게 우주는 지구를 중심으로 형성됐다고 가르쳤다. 관측이야 한들 맨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게 전부였던 시대인 만큼, 인류의 우주관은 ‘지구 중심설’이 지배하고 있었고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사색하고 깨달음을 얻었던 성인들 역시 우주는 ‘지구를 중심으로’ 형성됐다고 믿었다.

태양계 속의 지구는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했다

시간이 흘러 문명이 발전하고 천체를 관측하기 위한 망원경이 개발되자 당시의 천문학을 지배하고 있던 ‘지구 중심설’에는 균열이 발생한다. 유명한 천문학자인 갈릴레이 갈릴레오가 최초로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등의 천체는 지구가 아닌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한다는 ‘태양 중심설’을 발표한 것이다.

그의 발표는 많은 파장을 일으켰다. 망원경을 통한 관측의 역사가 길지 않았던 당대 대중에게 ‘태양 중심설’은 인류가 오랜 시간 믿고 있었던 ‘지구 중심설’을 위협하는 불손한 사상처럼 받아들여진 것이다. 결국 갈릴레오는 태양 중심설을 철회하는 서명을 하고 만다. 그러나 오래 지나지 않아 아이작 뉴턴은 태양계 중심에 지구가 아닌 ‘태양’을 위치하니 모든 천체의 움직임이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는 발견을 해낸다. 이와 같은 뉴턴의 발견은 갈릴레오의 발표에 이어 ‘지구 중심설’을 믿던 인류에게 변화의 단초를 준다.

뉴턴의 발견 이후에도 인류는 끝없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몇 세대가 더 흘러 발전된 관측장비가 발명되자 갈릴레오와 뉴턴의 발견은 정확한 사실임이 확인된다. 과학자들이 ‘지구 중심설’을 내려놓고 ‘태양 중심설’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자 대중의 인식도 변하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지구 중심설’을 고수하는 사람들은 변하지 않았고, 지금까지 그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오랜 시간이 흘러 1977년 8월, 같은 해 9월 각각 보이저 1, 2호가 발사됐다. 이들은 태양계의 바깥쪽 영역을 공전하는 가스형 행성으로 향한다. 보이저 1호가 토성까지, 그리고 보이저 2호가 토성을 넘어 천왕성과 해왕성까지 관측하고 더 먼 심우주로 나아가기 시작하자, NASA는 1990년 2월, 보이저 1호에게 마지막 임무를 부여한다. 보이저 1호의 카메라는 지구를 향했고, 한 장의 사진을 남긴다. 먼 우주까지 나아간 우주선이 보내온 태양계 속의 지구는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했다. 우주는 지구를 중심으로 형성됐다고 믿던 인류가 드디어 태양을 공전하는 지구를 바라보게 된 것이다.

남성을 ‘인간의 표준’으로 설계된 세계

인류는 오랜 시간, 인간의 표준으로 남성을 떠올렸다. 이와 같은 인식은 사회 속에서 ‘남성’과 ‘여성’이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을 이분법적으로 나눈다. 그렇기에 위대한 지도자를 떠올려보라 요구하면 많은 사람들이 ‘남성’의 모습을 떠올리고, 설령 여성 지도자를 떠올린다 해도 인류는 여성 지도자의 ‘남성적 면모’를 강조한다. 남성인 위인은 ‘남성적 면모’가 더 강조되고, 얼마 안되는 여성 위인은 그의 강점이 ‘남성’의 관점에서 평가 당한다. 의학의 표준은 남성 신체였으며 그 결과로 자동차나 항공기 등의 운송수단 역시 ‘남성’의 신체를 중심으로 운전석과 조종석이 설계됐다.

남성을 중심으로 발전한 문명 아래에서 자란 인류는 자신의 사고방식에서 ‘여성’을 지워나간다. 인류는 자신의 사전에 존재하지 않는 ‘여성’이 같은 일터에서 더 잘 나가는 모습을 두고볼 수 없었다. 인류에게 자신과 같은 일을 하는 ‘직장 동료’로서의 여성은 존재할 수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성공한 여성, 더 나아가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여성은 존재함에도 존재하지 않는,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위태로운 위치에 서게 된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남성의 시각이 아닌 ‘여성’의 시각에서 바라보니 사회의 일면에 가려 보이지 않던 사회구조를 명징하게 보여줄 수 있다는 발견을 해낸다. 몇몇 사람들이 ‘남성 중심’의 사고관을 내려놓고 ‘여성의 시각’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자 다른 사람들의 인식도 변화하기 시작한다. 이는 ‘남성 중심’의 사고관을 고수하는 사람들에게도 균열을 일으킨다.

이들의 인식에 균열을 일으킨 ‘페미니즘’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남성 중심’의 사고관 아래의 사람들에게 ‘페미니즘’은 세상의 주인은 남자라고 생각했던 인류의 오랜 믿음을 위협하는 불손한 사상처럼 받아들여진다. 결국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자신의 가치관을 이유로 공격당하거나 직장을 잃었다.

‘이대남’의 표준 값에서 벗어난 ‘이대남’이 여기있다

그 연장선상일까. 최근 정치권에서 종종 호명되는 ‘이대남’에게서 디지털 성범죄를 근절하라며 거리에 나와 시위하는 여성들에게 공연히 분노하며 “모든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만들지 말라”고 외치는 모습이 보인다. 채용 과정에서의 성차별과 직장 내 임금차별, 남성에 비해 적게 부여되는 인센티브를 지적하는 여성들에게도 분노하며 ‘생리휴가’를 이유로 여러 차별이 공평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정치권은 이들의 주장을 비판없이 수용하여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거나 반여성주의적 인식을 넓게 공유하는 모 커뮤니티의 글을 “일독을 권한다”며 공유하기도 한다. 정치권에서 호명되는 ‘이대남’은 공통적으로 반여성주의 가치관을 가졌으며, 남성이 여성보다 더 고통받고, 남성도 ‘생리휴가’를 가고 싶다는 인식을 가졌다.

태양계 속의 ‘창백한 푸른 점’인 지구는 인류에게 인간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한다. 마찬가지로, 사회 속에서 존재하나 보이지 않는, ‘여성’을 포함한 다양한 정체성의 존재는 우리에게 ‘남성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존중해야 함을 주문한다. 마지막으로 이 글은 ‘이대남’에 의해 작성된 것임을 강조하려 한다. 정치권이 즐겨 찾는 ‘이대남’의 표준값에서 벗어난 ‘이대남’의 존재가 정치권에 미약하게나마 변화의 단초가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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