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언니들]
그랜드하얏트 서울 첫 여성 부총지배인
호텔업계 20년 베테랑 김지영 상무

“적절한 이직, ‘우물 안 개구리’ 방지
사람이 전부...동료·후배의 성장도 중요
동기부여 비결은 소통·돌봄
‘밥 먹었니, 별일 없니’ 한마디라도
호텔업계, 점점 여성친화적 변화...
결혼·육아로 퇴사 고민하는 여성들
멀리 내다보길, 쉽게 포기 않길”

2월 23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 서울 프레지덴셜 스위트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 중인 김지영 그랜드하얏트 서울 매니저(상무). ⓒ그랜드하얏트 서울 제공
2월 23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 서울 프레지덴셜 스위트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 중인 김지영 그랜드하얏트 서울 매니저(상무). ⓒ그랜드하얏트 서울 제공

1978년 남산에 문을 연 그랜드하얏트 서울은 한국에서 가장 유서 깊은 호텔 중 하나다. 해외 귀빈들이 즐겨 찾는다. 도널드 트럼프·버락 오바마 등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이곳에서 묵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배우 톰 크루즈,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등도 다녀갔다.

김지영 상무는 이 호텔 최초의 여성 매니저(부총지배인)다. 호텔 대표, 총지배인에 이어 ‘3인자’로 통하는 고위직이다. 과거 한솥밥을 먹었던 송영주 JW 메리어트 제주 리조트 앤 스파 부총지배인은 “열정적이고 쾌활한 성격에 똑 부러지는 일처리까지 대단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여초’ 호텔업계에서도 특급호텔 고위 임원에 여성이 오르는 일은 아직 드물다. 그랜드하얏트 서울을 포함해 서울시내 주요 특급호텔 총지배인은 대개 외국인 남성이다.

김 상무는 2000년 JW 메리어트 호텔 서울 오프닝 팀으로 시작해 신라호텔, 그랜드하얏트 인천 등을 거쳐 2021년 그랜드하얏트 서울 매니저에 올랐다. 호텔의 얼굴인 프런트 데스크 3교대 근무로 시작해 고객을 관리하는 프런트 오피스, 객실 이사 등 주요 부서를 모두 거쳤다. 말단 사원으로 시작해 산전수전을 치르고 임원에 오른 셈이다.

호텔 일이 천직이라고 했다. 차장에 승진한 후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 유리천장을 실감하나 호텔업계의 앞날을 낙관한다. “‘가정이 있는 여자는 상무까지 못 올라간다’는 말도 들었죠. 그랬던 호텔업계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여성이 많고, 여성의 손길이 필요한 산업이고, 여성들이 일하기 좋은 곳입니다. 포기하지만 않는다면요.”

원래 미국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IMF 사태가 터졌다. 현지에서 1년짜리 비자로 취업할 곳을 부랴부랴 찾다가 미 유타주의 한 호텔 프런트 데스크 일자리를 얻었다. 객실 250개 정도 규모의 작은 호텔이었는데, 다양한 사람을 대하는 일이 무척이나 즐거웠다. “이거다!”

20년 넘게 호텔업계에 몸담으면서 네 번이나 이직했다. 짧게는 2년, 길게는 6년 간격으로 일터를 옮겼다. 그때마다 연봉이나 직급을 높였다. 

“처음엔 객실팀장을 꿈꿨어요. 그 명함을 꼭 가져보고 싶었어요. 인천 하얏트에서 일할 때 JW 메리어트 서울에서 ‘객실팀장이 공석인데 와달라’는 연락을 받고 반갑게 수락했죠. 그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다 보니 욕심이 생기더군요. 새로운 사람과 환경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편이기도 하고요.”

그는 “다른 직장에서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새로운 기업문화를 알아가는 것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적절한 이직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는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호텔산업도 흔들렸다. 김 상무는 “한국은 선제적 방역 대응으로 잘 대처해왔다. 이제 코로나19 확산세가 정점을 찍었다는 예측도 있고, 비즈니스 등 목적으로 방한하는 외국인들도 늘고 있다. 3/4분기에는 저희 호텔도 예년의 70~80% 수준을 회복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실 호텔리어는 화려한 외양에 비해 임금이 낮고 노동 강도가 높은 직종으로 꼽힌다. 김 상무는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공부하고 투자한 것에 비해 연봉이 높지 않다. 그래도 어떤 직업보다도 이 일이 좋고, 꼭 해보고 싶어서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저도 호텔 일을 하면서 이런저런 유혹들이 있었다. 2배의 연봉을 제안하는 타 직종 스카우트 제의도 받아봤지만 ‘내가 진정으로 누군가를 감동하게 하고 웃을 수 있게 하는 일, 정말 힘들었던 고객이 나를 찾아주는, 아주 멋진 매력을 지녔으며 다양한 문화의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호텔리어라는 직업’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직도 호텔리어다”라고 했다.

김지영 그랜드하얏트 서울 호텔 매니저. ⓒ그랜드하얏트 서울 제공
김지영 그랜드하얏트 서울 호텔 매니저. ⓒ그랜드하얏트 서울 제공

“적절한 이직, ‘우물 안 개구리’ 방지
사람이 전부...동료·후배의 성장도 중요
동기부여 비결은 소통·돌봄
‘밥 먹었니, 별일 없니’ 한마디라도
호텔업계, 점점 여성친화적 변화...
결혼·육아로 퇴사 고민하는 여성들
멀리 내다보길, 쉽게 포기 않길”

김 상무가 보기에 일을 잘하는 사람은 “매니저가 없어도 직원들이 빈자리를 채울 수 있도록 성장시키는 사람”이다. “내 일,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도 강조했다.

“사람이 전부예요. 나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성장시키느냐가 중요해요. 내가 떠나도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후임을 키우는 것도 윗사람의 책무라고 봅니다. 잠재력이 있다고 판단한 직원들에게 제가 하는 일을 거의 다 알려줬어요. 그들이 제 것을 뺏는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들이 잘 해내면 제 면이 서는 거죠. 제 일을 잘하려고 노력하는 건 기본이고요. 그러다 보니 절 믿고 일을 맡겨주시는 분들이 계셨어요. 저를 믿고 같이 일하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면 손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여러 번 기회가 왔고, 놓치지 않았다. 신라호텔 근무 시절, 오픈을 앞둔 인천 하얏트 측에서 견학을 왔다. 김 상무가 가이드를 맡았다. 일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을까. 다음날 ‘인천 하얏트 오프닝 멤버로 와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인천 하얏트에서 처음 인연을 쌓은 외국인 식음부 이사는 10여 년 뒤 그랜드하얏트 서울에 부임했고, 당시 JW 메리어트 서울에 있던 김 상무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가 아드리안 슬레이터 현 그랜드하얏트 서울 총지배인이다.

남들보다 최소 1시간 30분 일찍 일과를 시작하는 게 김 상무의 오랜 습관이다. 사무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계획하거나, 당면한 문제 해결 방안을 생각하거나 마무리된 문제를 돌아본다. 폭넓은 네트워킹도 강조했다. 바쁜 일과 중에도 시간을 내어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과 만나 어울린다. 다른 업계의 생생한 동향을 들으면서 식견도 넓히고, 호텔에 접목하면 좋을 아이디어도 얻는다.

리더는 외롭다. “관리자가 되면 급격히 외로워져요. 진급할 때마다 더 외로워집니다. 하하. 제가 사람을 참 좋아하는데, 말을 많이 하다 보니 하면 안 될 이야기도 흘러나와서 절제하는 법을 배우느라 힘들었어요.” 

그래도 사람에 대한 애정과 표현을 아끼지 않으려 노력한다. 누구든지 만나면 인사를 건네며 밥은 먹었는지, 별일 없는지 물어본다. “사람들은 돈이 애사심의 원천이라고들 하죠. 맞아요. 그런데 사실은 소통, 돌봄(care)만한 인센티브가 없습니다. 이름을 기억해 불러주고, 안부를 묻고, 달라진 헤어스타일 같은 소소한 변화를 알아봐 주는 것. 그런 말 한마디가 힘이 세요. 고객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일하던 여성들이 결혼·육아로 퇴사하는 일이 호텔업계에도 허다하다. 김 상무는 안타까워했다. “많은 여성이 가부장제 문화를 싫어하고 ‘여성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경제적 주체가 되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꺼리기도 해요. ‘이 돈을 벌려고 내가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하고,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엄마 책임이라며 힘들어하는 후배들을 많이 봤어요. 저는 직장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후 결혼해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그들의 입장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해요. 그런 저도 직급의 무게 때문에 육아휴직은 생각지도 못했고, 출산휴가 3개월만 겨우 다녀왔죠. (워킹맘으로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잘 알아요.

그래도 퇴사를 고민하는 여성들에게 ‘200만원 벌어서 10원이라도 남으면 그냥 다녀라’라고 만류해요. 직장을 현재 버는 돈과 연결해서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힘들지만 멀리 내다보세요. 본인이 왜 이 직업과 직장을 택했는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는지, 일하면서 행복했던 순간들을 회상해 보고 내가 꿈꿔왔던 멋진 호텔리어의 초심을 생각해 보라고 합니다. 결혼하고 육아를 한다고 해서 내가 그토록 하고 싶었던 일, 가고자 하는 길을 접는 것이 맞는 것인지를요.”

김지영 상무는

2021~ 그랜드하얏트 서울 부총지배인 (Hotel Manager)
2020~2021 그랜드하얏트 서울 호텔객실 이사 (Executive Assistant Manager – Rooms)
2016~2019 JW 메리어트 서울 객실 이사 (Director of Rooms)
2011~2016 JW 메리어트 서울 객실 팀장 (Front Office Manager)
2003~2011 그랜드하얏트 인천 오프닝 팀·호텔 객실 차장 
2003 신라호텔 프런트 오피스 대리 (Assistant Manager) 
2000~2002 JW 메리어트 서울 오프닝 팀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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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일하는 언니들

나이 들어서도, 아이 낳고도 ‘일하는 여성’은 이제 자연스러운 삶의 경로가 됐습니다. 자신만의 커리어를 만들어가는 여성들의 일과 삶 이야기, 현실적인 조언을 들어봅니다. 여성들이 서로의 ‘멘토’가 돼 성장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오은영 박사 - 아프다며 찾아온 당신들이 날 살렸다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0667

김지영 그랜드하얏트 서울 매니저 - 이직 두려워 말라...빈 자리 믿고 맡길 후배 키워라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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