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의전화, 언론보도 분석
죽을 뻔한 여성은 최소 177명
13년간 여성살해 피해자 1155명
국가 공식 범죄통계조차 없어

스토킹 피해를 수차례 신고해 신변보호를 받던 30대 여성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병찬이 29일 서울 남대문경찰서에서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서울 중부경찰서는 이날 오전 남대문경찰서 유치장에 감호돼 있던 김병찬을 검찰에 구속 송치한다. ⓒ뉴시스·여성신문
스토킹으로 신변보호를 받던 전 여자친구를 살해한 피의자 김병찬이 지난해 12월 29일 검찰 송치를 위해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지난해 최소 220명의 여성이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게 살해되거나 죽을 뻔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지난해 1월부터 12월까지 언론에 보도된 사건들을 분석한 ‘2021년 분노의 게이지: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한 여성살해 분석’을 보면,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살해된 여성은 최소 83명, 살인미수 등으로 살아남은 여성은 최소 177명이었다.

피해 여성의 자녀나 부모, 친구 등 주변인이 중상을 입거나 생명을 잃은 경우도 최소 59명에 달하여, 주변인의 피해까지 포함한 피해자 수는 최소 319명으로 나타났다. 

2021년 언론에 보도된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한 여성살해 피해자 수 ⓒ한국여성의전화
2021년 언론에 보도된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한 여성살해 피해자 수 ⓒ한국여성의전화

최소 1.4일에 1명의 여성이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살해되거나 살해될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이고, 주변인의 피해까지 포함하면 최소 1.1일에 1명이 이러한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이는 언론에 보도된 최소한의 수치로, 실제로 보도되지 않은 사건을 포함하면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살해된 여성의 수는 훨씬 많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사 결과, 연령대가 파악 가능한 사건에서 혼인이나 데이트 관계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한 여성 살해 피해자 연령은 30대와 40대가 각각 23.8%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뒤 이어 20대가 22.2%, 50대가 19%, 60대가 7.2%, 10대가 2.4%, 70대 이상이 1.6% 순이었다. 피해 여성이 맺는 관계의 양상에 따라 집계되는 항목이 달라졌을 뿐, 여성살해는 모든 연령대의 여성들이 겪는 현실이었다.

“이혼, 결별을 요구해서“ 여성살해하는 가해자들

가해자들이 말하는 범행 동기를 살펴보면, ‘이혼·결별을 요구하거나 재결합·만남을 거부해서’가 85명(26.7%)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다른 남성과의 관계에 대한 의심’이 56명(17.6%), ‘홧김에, 싸우다가 우발적’이 40명(12.5%), ‘자신을 무시해서’, ‘성관계를 거부해서(성폭력)’가 각각 14명(4.3%), 4명(1.3%)으로 나타났다.

“현관문 비밀번호를 바꿔서”, “헤어진 후 다른 남자를 만나서”, “이혼을 요구해서”
“외도를 의심해서”, “자신을 무시해서”, “폭행 합의를 안 해줘서”,
“잠을 깨워서”, “말대꾸를 해서”, “자녀 면접을 거부당해서”
“아이가 우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양육비를 요구해서”
“전 파트너와 연락해서”, “술에 취해서”

이는 친밀한 관계 내에 있는 여성을 살해 위험에 처하게 하거나 살해한 가해자들이 범행의 이유로 밝힌 말들이다. 여성의전화는 “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고 위협하는 친밀한 관계 내 폭력은 우발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닌, 지속·반복된 폭력의 연장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피해 여성의 행동과 태도에 기인한 것이 아닌 가해자들이 선택하고 계획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여성의전화는 “그러나 우리 사회는 친밀한 관계 내 폭력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우발적'이었다는 가해자의 구차한 변명을 들어주며 여성살해 현실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1.4일마다 1명의 여성이 친밀한 남성에 의해 죽거나 죽을 뻔

여성의전화는 2008년부터 2021년까지 지난 13년간 언론에 보도된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한 여성살해 피해자는 최소 1155명이라고 밝혔다. 살인미수까지 포함하면 2298명, 피해자의 주변인까지 포함하면 2833명이다. 1.4일마다 1명의 여성이 친밀한 관계 내 남성 파트너에 의해 살해되거나 살해될 위험에 놓여있지만, 국가는 여전히 여성에 대한 폭력과 살해 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어떠한 범죄통계조차 마련하지 않고 있다.

여성의전화는 차기 정부를 향해 △친밀한 관계 여성폭력 원인을 파악할 수 있는 국가 통계 시스템 구축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여성폭력에 대한 마땅한 처벌원칙과 지원체계 마련△여성폭력 근절 및 성평등 실현을 위한 강력한 추진체계 마련 등을 촉구했다. 

<한국여성의전화, 차기 정부의 요구 사항>

1.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의 원인과 현실을 제대로 진단하고 실체를 파악하기 위한 국가 통계 시스템을 구축하라.

정책을 수립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자료는 통계이다. 범죄 피해자와 가해자의 성별 및 관계에 따른 범죄 발생 후 검거, 수사, 사건처리 결과 등을 유기적으로 파악하고 범행 및 범죄자·피해자 특성 등을 파악할 수 있는 통계를 마련해야 한다.

2.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여성폭력에 대한 마땅한 처벌원칙과 지원체계를 마련하라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은 배우자 관계, 데이트 관계 내에서 혹은 결별 과정에서 여성을 통제하고 이에 저항하는 피해 여성을 보복하려는 목적으로 발생한다. 더욱이 명백한 범죄이자 성별화된 폭력임에도 데이트폭력을 규율할 법과 제도가 없고 스토킹처벌법 또한 협소한 정의 등 많은 한계가 있다. 구조적 성차별에 따른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을 확실히 처벌하여 국가가 묵인하지 않는 사회적 범죄라는 사실을 명백히 하고 피해자의 권리에 기초하여 사각지대 없이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체계를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3. 여성폭력 근절 및 성평등 실현을 위한 강력한 추진체계를 마련하라.

여성살해 및 여성폭력 근절은 성평등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러나 여성 정책을 담당하는 여성가족부는 보육, 청소년, 가족 정책에 주력하고 있어, 국가의 성평등을 책임지는 주무 부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여성폭력과 관련한 정책이 유기적으로 운영되고 성평등 정책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도록 이를 실질적으로 총괄·조정하는 기구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