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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한지 두 달 차인 직장인 이서현(29)씨는 입주 당시 부엌이 생각보다 작아서 놀랐다. 이씨는 “원룸이었기 때문에 부엌이 협소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훨씬 작았다. 사람 한 명이 간신히 서 있을 만큼의 공간”이라면서도 “부엌이 작은 대신 생활하고 쉴 수 있는 다른 공간이 넓어서 오히려 다행인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자취 전 요리를 자주 해 먹을 줄 알았지만 지난달 가스요금은 0원이었다”며 “주로 밀키트(meal kit)를 주문해서 먹거나 밖에서 끼니를 해결해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1인 가구인 유정인(34)씨는 이젠 부엌이 필요 없다고 말한다. 유씨는 “최근 비건을 선언하면서 화기구를 쓰는 일이 줄었다”며 “도시가스를 쓴다면 간단하게 채소를 구워먹는 정도의 요리를 하고 그 외에는 간편식을 주문해 먹기 때문에 전자레인지만 사용 중”이라고 설명했다.

부엌은 ‘집의 얼굴’이라는 말은 옛말이 됐다. 미래에는 부엌이 없어질 지도 모른다. 소형 평형에 사는 1인가구가 늘고 밀키트 시장이 확대되면서 냉장고에 식재료를 쌓아둘 일이 줄었다. 저장 공간이 큰 냉장고와 주방용품이 필요 없어지면서 부엌 풍경도 바뀌고 있다.

국토교통부의 2020년 주거실태조사를 보면 오피스텔 거주가구는 1,190가구이고 이중 73.4%가 1인가구였다. 국내 오피스텔 거주가구의 70% 이상이 1인가구인 것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발간한 ‘오피스텔 100만호 시대, 성과와 과제’를 보면 오피스텔 수요는 크게 1~2인 가구용 소형 평형과 3인 이상 가족의 중·대형 평형에 대한 수요로 나뉜다. 국내에서는 2005년 이후 40㎡ 이하의 소형 오피스텔 공급이 증가해 7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한다.

소형 평수에 거주하는 1인 가구의 증가와 함께 밀키트 시장 규모도 점차 커지고 있다.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2019년 1,017억원 규모였던 국내 밀키트 시장은 2020년 1,882억원 규모로 급성장했다. 오는 2025년에는 밀키트 시장 규모만 7,25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부엌에서 요리할 일이 줄다보니 주방 도구도 작아지고 있다. 초소형 사이즈의 주방 도구가 출시되고 여러 음식을 조리할 수 있는 다용도 조리 제품도 나왔다. 텐마인즈의 스마트 멀티 쿠커 ‘한번애’는 하나의 제품으로 여러 가지의 음식을 만들 수 있다. 밥솥·가스레인지·전자레인지 등을 따로 둘 필요 없이 독립된 4개의 공간으로 각기 다른 음식을 동시 조리하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출시한 ‘비스포크 큐커’도 전자레인지·그릴·에어프라이어·오븐 등 4가지 기능이 하나에 들어간 조리기기다. ‘비스포크 큐커’는 기기 내부 공간마다 다른 설정을 통해 4가지 요리가 동시에 가능한 멀티쿡 기능을 갖추고 있다.

부엌이 작아지는 대신 거실이 넓어지고 있다. 현대건설의 ‘H-세컨리빙’은 요리를 준비하는 단순한 주방에서 가족들이 모이는 거실을 뜻하는 신개념 부엌이다. 가족들이 가장 많이 시간을 보내는 곳은 부엌이 아니라 거실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변화하는 라이프스타일에 따른 주거 형태의 변화라고 말한다. 인테리어 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큰 싱크대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작은 싱크대를 선호하는 추세”라며 “간편식의 등장으로 부엌에서 요리해서 밥을 먹지 않고, 재택근무를 하거나 거실에서 활동하는 등 라이프스타일의 변화가 있기 때문에 부엌의 기능이 줄고 거실의 기능이 늘어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윤희 ‘H’가구업체 디자인실 상무도 JTBC 미니다큐 부엌의 100년에서 “복잡하고 바쁜 현대사회를 살고 있고 맞벌이 부부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에 조리 공간은 점점 작아지고 넉넉한 수납공간을 가진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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