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9수 끝에 사법고시 합격
문재인 정부서 검찰총장에 임명
조국 전 장관 수사로 여권과 이별
검찰총장직 던지고 370일 만에 대권

국회사진기자단 =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7일 경기 시흥시 삼미시장 앞 유세에서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7일 경기 시흥시 삼미시장 앞 유세에서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26년간 검사였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검찰총장직을 내려놓고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370일이다.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지 고작 253일만이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민심을 발판 삼아 윤 당선인은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그는 국회를 거치지 않고 청와대에 입성하는 첫 ‘0선’ 대통령이자 첫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라는 역사를 썼다.

윤 당선인은 1960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와 최정자 전 이화여대 교수 사이에서 1남1녀 중 맏이로 태어났다. 1979년 충암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지만 사법시험 도전은 순탄치 않았다. 윤 당선인은 1982년부터 사법시험에 도전했지만 2차 시험에서 연거푸 고배를 들었고 9수 끝에 1991년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23기를 마치고 1994년 34살의 나이에 검사 생활을 시작한 그는 대검찰청 중수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등 요직을 거쳤다. 2002년 검찰을 떠나 1년간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변호사 생활을 한 것을 빼면 26년간 검사로 살았다. 2003년 불법 대선자금 수사, 2006년 론스타 외환은행 인수·매각 사건, 2007년 부산저축은행 사건, 2008년 BBK 주가조작 사건 등 굵직한 정·관계 비리 수사들을 주도했다.

“나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 

승승장구하던 그는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특별수사팀장으로 수사를 펼치다 고난을 맞았다. 조영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한 ‘항명 논란’으로 대구 고등검찰청으로 좌천됐다. 당시 국정감사에서 “수사 과정에 외압이 심하다”고 폭로한 그는 이 과정에서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겨 대중에게 각인된다. ‘강골’ ‘반골’이라는 이명을 얻은 것도 이 때다.

평검사로 좌천된 그는 박근혜 정부에서 불거진 ‘최순실 게이트’ 특검에 합류하며 부활한다. 수사팀장으로 박 전 대통령 구속에도 결정적 역할을 한다.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발탁된 그는 다시 검찰총장으로 다섯 기수를 건너 뛴 파격 승진을 거듭한다.

하지만 이른바 ‘조국 사태’를 겪으며 검찰총장 윤석열은 또다시 ‘살아있는 권력’과 충돌했다. ‘조국 사태는 ‘정치인 윤석열’을 만든 변곡점으로 꼽힌다. 윤 당선인이 이끌던 검찰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입시비리와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했다. 이어 검찰이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과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 무마 의혹 사건을 파헤치며 정부·여권과 대척점에 섰다. 조국 장관 후임으로 법무부 장관을 맡은 추미애 전 민주당 대표와 ‘추·윤 갈등’까지 이어졌다.

지난해 3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며 임기를 4개월 남기고 전격 사퇴했다. 윤 당선인은 당시 차기 대권주자 여론조사에서 여야를 통틀어 지지율 1위에 오르기도 했다. 3개월 후인 6월 29일 대통령 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7월 국민의힘에 전격 입당해 본격적인 정치인 행보를 시작했다. 선거 과정에서 윤 당선이 내건 슬로건은 ‘국민이 키운 윤석열’이었다. 반페미니즘 공야과 정치보복 발언 등 각종 설화로 곤욕을 치르며 ‘정치 초보’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혹평도 있었으나, 정권 교체라는 강력한 민심은 결국 그를 대통령으로 올려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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