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투자, 무작정 하면 망해” 41년차 갤러리스트의 일침
“미술투자, 무작정 하면 망해” 41년차 갤러리스트의 일침
  • 이세아 기자
  • 승인 2022.04.02 09:14
  • 수정 2022-04-03 14: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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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언니들]
표미선 표갤러리 대표
15·16대 화랑협회장
비영리 서울예술재단 창립
“미술시장 호황 반갑지만
경기 나빠지면 금세 폭락 우려
미술투자는 공부부터...부실 화랑 피해야”

70대에도 새벽 3시면 일어나
자기계발 후 일과 시작
“일은 삶의 동력이자 희망
사람이 미울 땐 퇴근하고 와인 한잔”
30일 서울 종로구 표갤러리에서 만난 표미선 표갤러리 대표·서울예술재단 이사장. ⓒ홍수형 기자
30일 서울 종로구 표갤러리에서 만난 표미선 표갤러리 대표·서울예술재단 이사장. ⓒ홍수형 기자

‘미술 시장 1조원 시대’가 코앞이다. 화랑시장, 경매시장, 아트페어 모두 기록적 매출을 올렸다. 해외 유명 갤러리들도 한국을 찾고, ‘세계 3대 아트페어’ 영국 프리즈가 올해 서울에서 열린다. 미술 NFT(대체불가능토큰), MZ세대 콜렉터 증가 등으로 시장은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표미선(73) 표갤러리 대표·전 화랑협회장의 심경은 다소 복잡하다. ‘미술이 돈 된다’는 말에 무작정 뛰어드는 이들에게 그는 경고했다.

“100만원이 있으면 100만원의 가치가 있는 그림을 사야 합니다. 그만한 가치가 없다? 안 사야죠. 그런데 삽니다. 남들 사니까 따라서 사요. 어떤 작가의 신작이 나오는 족족 사들이는 분들도 있어요. 공부하지도, 안목을 기르려 하지도, 전문가 자문도 안 받고 그냥 삽니다. 이번 화랑미술제에선 말도 안 되는 그림도 다 팔렸다고 하더군요.”

미술품 매수 열기가 언제 급격히 식을지 몰라 불안하다고 했다. “2007년 우리 미술시장이 큰 호황을 맞았다가 10여 년간 쭉 침체기였어요. 다들 어렵게 버텼죠. 시장 확대가 필요하고 반갑지만, 이러다 경기가 나빠지면 갑자기 매물이 쏟아지고 시장이 폭락할 수 있습니다.”

그의 조언은 단순하다. “공부하세요. 작가에 대한 모든 정보를 찾아보세요. 학교를 졸업할 때부터 어떤 그림을 그려왔고, 어떤 변화를 거쳐서 여기까지 왔는지 보세요. 그래야 좋은 그림을, 미술 시장을 보는 눈이 생깁니다. 안목에 자신이 없다면 전문가의 자문을 받으세요. 내가 사는 그림을 책임져 줄 수 있는 갤러리를 찾으세요. 5년을 버티지 못하고 사라지는 갤러리들이 적지 않아요. 그런 곳은 피하세요.”

30일 서울 종로구 표갤러리에서 만난 표미선 표갤러리 대표·서울예술재단 이사장. ⓒ홍수형 기자
30일 서울 종로구 표갤러리에서 만난 표미선 표갤러리 대표·서울예술재단 이사장. ⓒ홍수형 기자

표 대표는 미술계에서 ‘에너자이저’, ‘아이디어 뱅크’, ‘통 크고 시야 넓은 여장부’로 통한다. 국내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5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여성 갤러리스트로서 단독으로 41년간 화랑을 운영해왔다.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례다. 그를 잘 아는 한 언론인은 “70대가 된 지금도 열정과 추진력이 대단한 인물”이라고 했다.

표갤러리는 1981년 여의도미술관으로 시작해 이태원, 신문로를 거쳐 2019년부터 종로구 체부동에 둥지를 틀었다. 원로부터 신진 작가까지 다양한 작가들과의 네트워킹을 기반으로 두터운 컬렉터와 지지층을 보유하고 있다. 해외 미술 시장 공략에도 나섰다. 2006년부터 중국 베이징에 2개 지점을 개설하고 약 12년간 활동했다. 2008년 미국 LA 지점을 열었다. 2005년 국민은행 ‘골드앤와이즈’와 함께 갤러리뱅크를 열고, 2006년 국내 최초 아트펀드인 ‘서울명품아트사모1호펀드’를 출시하는 등 독창적인 행보를 이어왔다.

뜨거운 미술 NFT 시장에도 일찍 뛰어들었다. 카카오의 블록체인 기술 계열사 그라운드X와 손잡고 소속 작가들의 작품을 NFT화해왔다. 지난해 하정우, 우국원 등 소속 작가들의 작품 NFT를 5000만~7000만원에 판매했다.

국내 화랑을 대표하는 한국화랑협회장(2009∼2014)을 두 차례 역임하며 화랑미술제,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미술품 감정, 국제미술전 참가 지원사업 등을 이끌었다. 퇴임하자마자 사재 10억원을 출연해 2015년 비영리법인 서울예술재단을 설립해 이사를 맡고 있다. 잠재력 있는 작가를 발굴, 소개하고 후원자와 연결하는 플랫폼이다. “내가 잘하는 일로써 사회에 공헌하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늘 일만 하냐’는 말도 들었어요. 그러나 일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제 일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자타공인 ‘워커홀릭’이다. 자기관리에도 철저하다. 코로나19 대유행 이래로는 밤 10시에 잠들어 늦어도 새벽 3시엔 눈을 뜬다. 7시 30분까지는 자기계발과 운동을 한다. 영어 공부, NFT·블록체인 등 이슈 공부, 유튜브 강의 수강, 줌바 댄스로 이어지는 루틴이다. 씻고 출근하거나 재택근무를 시작한다. 약속은 오전에 하나, 오후에 둘만 잡는다. 저녁 8시 전에는 귀가해 하루를 정리한다. “젊은이들처럼 한 번에 깨치지 못한다면 세 번씩 해보자”고 마음먹기로 했단다. “남들하고 똑같이 해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고도 했다.

“젊은 사람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요. 그러나 어른에게도 일과표는 필요하다고 봐요. 같은 시간을 일해도 능률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일 잘하는 사람이죠. 내게 주어진 일을 체계적으로 해나가면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지요. 그래서 이 나이에도 저를 채찍질하는 거예요. 나이 들기 전에 이런 습관을 들였다면 얼마나 발전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요.”

그래도 요즘엔 체력 관리에 더 신경 쓴다. 지난해 몸의 신호를 무시한 채 일에 몰두하다 큰일이 날 뻔했다.

“제가 건강한 편이에요. 출산할 때가 아니면 병원 갈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자꾸 배가 아프고 가스가 차는 거예요. 카카오 그라운드X와 미술품 NFT 런칭을 앞둔 중요한 시점이었죠. 병원 가도 일을 끝내고 가겠다고 버텼습니다. 그러다 너무 아파서 응급실에 갔더니, 맹장이 터진 지 나흘이 지났대요. 병원에서 기절하려 하더군요. 일주일 넘게 입원 치료를 받았어요. 입원해서도 일했어요. 너무 지루하니까. 하하.”

“어떻게 그렇게까지 하시냐”라고 묻자, “살아있는 동안 제 일을 해나간다, 일의 템포를 놓쳐 버리면 저는 죽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게 제 삶의 동력이자 희망”이라고 했다.

가장 행복한 순간은 “화랑에 혼자 앉아 그림을 볼 때”다. “화랑 해서 가장 좋은 게 그거예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고 작품이 잘 팔리는 것도 좋지만, 내 전시장에서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보고 또 보는 게 좋아요. 두세 시간도 금방 지나가죠. 볼 때마다 새롭고요. (기자의 뒤에 붙은 노정란 작가의 작품 ‘Color Play Sweeping #121’(2011)을 가리키며) 이 작품도 매일같이 보는데, 지금 보면서 블루 아래 핑크가 배어 나오는 게 참 아름답네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일을 하다 보면 스트레스도 쌓인다. “‘원래 사람은 다 다른 거야, 그럴 수도 있지’ 해야 합니다. 한 템포만 늦추면 됩니다. 사람이 참 미울 때도 있죠. 그런 날은 퇴근하고 와인을 한잔 해요. 달지 않고 드라이하고 바디감 있는 레드와인을 좋아합니다. 제가 혼자서도 안주상을 참 잘 차리거든요. 알콜에 너무 의존하면 안 되니까 딱 한 잔만. 그러면 (머리를 가리키며) 삐죽삐죽 튀어나왔던 것들이 싹 들어가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관계가 좋아지기도 하고요.”

일 욕심 많고 추진력까지 화끈한 대표의 영향인지 직원들 중에도 야심 찬 인재들이 많다. 그간 표갤러리를 거쳐 미술계 요직에 오른 인사들이 적지 않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광주 아시아문화전당 등 내로라하는 미술 기관에 진출해 있다. 임근혜 현 아르코미술관장도 표갤러리 출신이다. 평균 직원 근속연수는 10년 이상이다. 사내에서 만나 결혼해 아이를 낳은 커플도 있다.

“최대한 많은 기회를 잡고 경험을 쌓되, 내게 주어진 시간만큼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원하는 일을 찾을 능력이 됐다면 퇴사하세요. 그런 분들에게 퇴사는 다음 단계로 뛰어 오를 시간입니다. 아예 작정하고 휴식을 취해야겠다 싶다면 또 모를까, 특별한 목적도 계획도 없이 여기저기 전전하면 시간 낭비일 뿐입니다.”

표미선 대표는

1981 표갤러리(여의도 미술관) 개관
2003 한국화랑협회 부회장
2005 국민은행과 함께 ‘갤러리뱅크’ 1~2차 오픈, 표갤러리 베이징 개관
2006 국내 최초 아트펀드 ‘서울명품아트사모1호펀드’ 출시
2008 표갤러리 LA 개관
2009~2014 한국화랑협회장(15~16대)
2015 비영리법인 서울예술재단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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