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4일까지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최초 공개 신작 2점 포함 40점 공개

안드레아스 거스키, ‘무제 XIX (Ohne Titel XIX)’, 2015 ⓒ안드레아스 거스키, 스푸르스 마거스 제공
안드레아스 거스키, ‘무제 XIX (Ohne Titel XIX)’, 2015 ⓒ안드레아스 거스키, 스푸르스 마거스 제공

분홍빛과 주홍빛의 선들이 화면을 수평으로 가로지른다. 가느다란 색띠가 켜켜이 쌓인 모습이 한국의 단색화 작품 같기도 하다. 가까이서 보니 드넓은 꽃밭이다. 독일 출신 현대 사진 거장 안드레아스 거스키(67)의 2015년작 ‘무제ⅩⅨ’다. 작가가 헬리콥터를 타고 ‘유럽의 정원’이라 불리는 네덜란드 쾨켄호프(Keukenhof) 꽃밭을 촬영했다.

안드레아스 거스키, ‘파리 몽파르나스 (Paris, Montparnasse)’, 1993 ⓒ안드레아스 거스키
안드레아스 거스키, ‘파리 몽파르나스 (Paris, Montparnasse)’, 1993 ⓒ안드레아스 거스키
안드레아스 거스키, ‘바레인 Ⅰ (Bahrain Ⅰ)’, 2005 ⓒ안드레아스 거스키
안드레아스 거스키, ‘바레인 Ⅰ (Bahrain Ⅰ)’, 2005 ⓒ안드레아스 거스키

대표작 ‘파리 몽파르나스’(1993)는 어떤가. 완벽한 격자무늬가 인상적이다. 750가구가 사는 프랑스 파리 최대 규모의 아파트를 촬영했다. 수직과 수평의 구도, 단순하고 연속적인 형태의 반복이 추상미술 작품 같다. 2005년작 ‘바레인 Ⅰ’도 멀리서 보면 한 폭의 추상화다. 자세히 들여다봐야 국제 자동차 경주대회인 포뮬러원(F1) 아스팔트 도로, 달리는 차들과 사람들이 보인다. 거스키가 “회화의 감성과 가능성을 탐구해 사진의 영역을 넓혀온 작가”로 불리는 이유다. 그의 작품에서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대표작가 마크 로스코를 떠올리는 이들도 있다.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국내 최초 거스키 개인전 ‘Andreas Gursky’를 개최했다. 세계 최초로 공개하는 신작 2점과 기존 대표작을 포함해 40점을 선보인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먼저 작품의 크기에 놀란다. 약 200호 크기의 대작들뿐이다. 가까이 가면 디테일에 놀란다. 거스키는 촬영한 이미지를 조합해 새로운 현실을 창조한다. 필름 카메라로 촬영된 사진을 컴퓨터로 스캔해 편집하는데, 이 과정에서 소실점을 제거해 모두 또렷하고 일정한 크기로 보이도록 연출하는 식이다. 아마존 물류창고를 촬영한 ‘아마존’(2016)은 각각의 선반을 따로 찍고 디지털로 합성했다.

거스키의 작품에는 현대 문명과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장소들이 주로 등장한다. 물류창고, 대형 아파트, 증권거래소, 크루즈선 등이다. 거대한 구조, 그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존재를 모두 숙고하게 한다. 갖가지 물건들로 빈틈없는 가게의 매대를 강조, 소비사회의 단면을 포착한 대표작 ‘99센트’(1999), 이케아에 납품할 라탄 가구를 만드는 베트남 여성 노동자들을 촬영한 ‘나트랑’(2004) 등이다.

안드레아스 거스키, ‘아마존(Amazon)’, 2016 ⓒ안드레아스 거스키, 스푸르스 마거스 제공
안드레아스 거스키, ‘아마존(Amazon)’, 2016 ⓒ안드레아스 거스키, 스푸르스 마거스 제공
안드레아스 거스키, ‘평양 VI’ (Pyongyang VI), 2017(2007)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제공
안드레아스 거스키, ‘평양 VI’ (Pyongyang VI), 2017(2007)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제공

2007년 평양에서 열린 ‘북한 최대의 행사’ 아리랑 축제 매스게임을 촬영한 ‘평양’ 연작도 시선을 붙든다. 거스키 식대로 체제 선전 상징은 배제하고, 수많은 무용수들이 모여 이룬 반복적이고 기하학적인 형태를 담는 데 집중했다.

미술관 측은 “인류는 자연과 신을 두려워했다. 이제는 기술 발전으로 인한 급격한 변화, 자본주의, 권력, 세계화 등을 두려워한다”며 “작품 속 작지만 뚜렷하게 보이는 인간의 모습에서 숭고함과 경외심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사진도 있다. 칙칙한 강의 풍경을 담은 ‘라인강 Ⅲ’(2018)다. 2011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49억원(430만달러)에 팔려 화제에 오른 ‘라인강 Ⅱ’(1999)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둘 다 여름철 같은 장소에서 촬영한 사진인데, 1999년의 생기 있는 풍경은 사라졌다. 그해 가뭄으로 강 수위가 최저치를 기록하고 동식물이 살기에 가혹한 환경으로 변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코로나 시대의 일상을 담은 ‘얼음 위를 걷는 사람’ (2021),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스키 코스로 불리는 오스트리아 키츠뷜 스키장을 촬영한 ‘스트레이프’(2022)는 이번 전시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작품이다. 원래 전시는 2020년 열릴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대유행으로 2년 미뤄졌다.

미술관 측은 “이번 회고전은 현대 사진 예술에 큰 족적을 남긴 거스키의 작품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라며, “영감이 가득한 창의적인 소통 공간을 추구하는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이번 전시가 현대미술에서 사진 장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인식하며 한국 예술계에 다양한 영감을 주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8월 14일까지.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안드레아스 거스키 개인전 ‘Andreas Gursky’ 포스터.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안드레아스 거스키 개인전 ‘Andreas Gursky’ 포스터. ⓒ아모레퍼시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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