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원영희 한국YWCA연합회장
축첩·조혼금지과 호주제 폐지,
소비자운동과 탈핵운동까지
Y의 역사는 한국 여성운동사
법인 이사에 청년 6명 임명
새로운 100년은 ‘청년’과 함께

원영희 한국YWCA연합회 회장 ⓒ홍수형 기자
원영희 한국YWCA연합회 회장 ⓒ홍수형 기자

여성운동사에 또렷한 발자취를 남긴 한국YWCA연합회(이하 YWCA)가 4월 20일 창립 100주년을 맞았다. 원영희 YWCA 회장은 “YWCA가 100년 동안 존재한 힘의 근원은 ‘용기’였다”고 말했다. 1922년 일제 식민지 시대, 봉건사회 관습이라는 이중 억압 속에서 김필례, 김활란, 유각경 등 20대 여성 지식인들은 “여성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조선여자기독교청년회연합회’를 창설했다. YWCA의 시작이다. 원 회장은 “변화를 향한 여성들의 개혁정신이 있었기에 YWCA는 결코 현재에 안주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처럼 YWCA의 공간도 변화했다. 과거 한국YWCA연합회관은 최근 리모델링돼 ‘페이지 명동’이 됐다. 소셜벤처가 건물에 들어왔고 수많은 청년이 오가는 명동의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1967년 준공된 이후 53년 만의 변화다.

YWCA의 100년은 곧 한국 여성운동의 역사다. 축첩과 조혼을 심각한 사회문제로 보고 반대운동을 했고 여성의 법적 지위향상을 위한 혼인신고운동을 통해 여성인권 운동을 펼쳤다. 여성들에게 민족의식과 독립의식을 심어주기 위한 농촌계몽운동도 활발했다. YWCA가 파견했던 농촌계몽운동가 최용신(1909∼1935)이 소설 ‘상록수’의 실제 주인공으로 다뤄지기도 했다. 1960년대 여성인권보호를 위한 근로여성교육과 프로그램 운영, 1970년대 가족법개정운동과 파출부 직업개발로 시작한 돌봄노동의 전문화, 1980년대 이후 소비자운동, 아나바다운동, 북한 분유보내기 운동, 호주제 폐지 운동에 나섰다. 특히 53년부터 이어져온 YWCA의 가족법 개정운동은 2005년 호주제 폐지라는 쾌거로 이어졌다. 2010년대부터는 탈핵생명, 성평등, 평화통일, 청년·청소년 운동에 집중해왔다. ‘여성단체 맏언니’는 지금도 또 다른 여성단체와 연대하며 맨 앞에서 성평등을 외치고 있다. 최근 ‘여성가족부 폐지’를 외치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요구해 여성단체 간담회 자리를 만들고 성평등 추진체계 강화를 위한 ‘성평등부’ 신설을 제안했다. 

원 회장은 YWCA 100년 역사 중 50여년을 함께 했다. 그는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영문학·번역학 박사 학위를 받고 성균관대 교수를 지낸 전문번역사로 고등학교 2학년 때 ‘Y-틴(청소년 조직)’ 활동을 시작으로 YWCA에서 부회장을 비롯해 세계YWCA 이사·공천위원 등 크고 작은 역할을 맡았다. 탈핵·탈원전 운동에 앞장서며 고리1호기 영구정지를 위해 힘썼고 GMO 완전표시제 시행을 촉구했다. 지난해에는 조직의 재구조화를 시작했다. 원 회장은 지난해 여성 장로로 선출, 장로로 임직했으며 남편 김주현 전 현대경제연구원장과 함께 새문안교회 첫 부부 시무장로로 섬기고 있다.

원 회장이 주도한 ‘지역’, ‘청년’, ‘회원’ 중심의 재구조화는 YWCA의 새로운 시작을 위한 발판이다. 지역YWCA를 독립된 법인으로 세우며 구조를 투명하게 바꾸고, 의사결정구조도 연합회 이사 21명 중 35세 이하 청년 6명, 지역 6명 등으로 개편했다. 국내 NGO단체 최초로 청년부회장 제도도 신설했다.

100년의 역사를 살아내고 새로운 100년의 출발선에 선 지금, ‘청년성 회복’이야말로 지속가능한 YWCA 운동의 핵심이라고 했다. 원 회장은 “청년의 문제는 청년이 해결해야 한다, 청년이 말하게 하자, 청년이 제안하고 청년이 결정하게 하자고 결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권이 변화해도 흔들리지 않고 뚝심 있게 가치를 알리는 시민단체, 이것이 100년 YWCA의 저력이다. 

2017년 신고리 5, 6호기 백지화를 위한 YWCA 전국행동의 날 모습. ⓒ한국YWCA
2017년 신고리 5, 6호기 백지화를 위한 YWCA 전국행동의 날 모습. ⓒ한국YWCA

-YWCA 100년 운동의 성과를 꼽는다면.

“YWCA는 1922년 창립 이후, 시대가 요청하는 시대적 소명을 다해왔다. 초창기부터 반세기 동안에는 여성교육사업, 야학운동, 공창폐지운동 등을 벌이고 한국전쟁 중에는 고아와 소녀들을 위한 구호사업과 교육을 펼쳐왔다. 1960년대 이후에는 여성직업교육, 근로여성을 위한 프로그램, 가족법개정운동, 여성직종 개발, 소비자운동, 청소년운동, 호주제폐지운동, 평화통일운동, 생명사랑공동체운동, 탈핵(생명)운동, 성평등운동 등 시대가 요구하는 다양한 활동을 했다.

저희 스스로 단체를 평가를 하기가 힘든 일이지만, 여성과 함께 시대마다 여성차별의 해소와 여성인권의 향상을 위해 일해 왔고 정의, 평화, 생명의 가치가 온 세상을 확산돼 이 땅에 하나님나라를 구현하려고 노력했다.” 

1960년 7월19일 YWCA를 비롯한 여성단체 회원들이 서울 종로 거리에서 축첩 반대 시위를 하는 모습. ⓒ한국YWCA
1960년 7월19일 YWCA를 비롯한 여성단체 회원들이 서울 종로 거리에서 축첩 반대 시위를 하는 모습. ⓒ한국YWCA

-100년을 이어 활동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창립 정신이 분명했다는 점이다. 여성인권 향상과 교육, 리더십 개발에 창설 목표를 뒀고, 더구나 우리 단체의 Y.W.C.A의 키워드 중에서 기독성이라는 것이 상당한 소명의식을 줬다고 본다. YWCA의 목적대로 정의, 평화, 창조질서의 보전이 이어지는 세상을 위해 다양한 시민운동을 전개해오고 있고 많은 여성지도자들을 배출했다. 시대마다 사회가 필요로 하고 변화가 필요한 영역에서 여성이 주체가 되어 환경운동, 평화운동, 생명운동, 정의운동 등을 해왔고, 전국 52개의 회원YWCA가 지역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8만 회원들과 함께 활발히 활동해오고 있다. 정의, 평화, 창조질서의 보전을 기준으로 충분히 공부하고 52개 회원단체 8만회원이 공감해야 본격적인 운동을 시작한다. 일각에서 ‘왜 이렇게 느리냐’거나 ‘너무 급하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분명한 것은 시작하면 끝까지 한다는 것이다.”

-100주년을 앞두고 기독교 청년운동이라는 조직의 정체성을 회복하는데 집중했다.

“창립 100주년을 앞두고 당면한 여러 과제 중 하나가 실제 다음 세대에 활동할 ‘청년 청소년’에 관한 고민이었다. 엄혹한 일제식민지 1922년의 YWCA 창설로부터 100년이 지난 2022년, YWCA가 새롭게 정의해야 할 창립정신과 정체성은 어떠해야 하느냐인 것이다. 결국 창립 초기의 ‘청년성’을 회복하자고 뜻을 모았다. 즉 ‘깨어있자, 변화하자, 극복하자’는 논의를 지속하고 있다. ‘YWCA100년, 여성과 함께 변화를 행해’라는 100주년 슬로건도 정했다.

먼저 지난 2월 정기총회에서 총회구성원과 의결권 부여 방식을 크게 바꿨다. 한국YWCA연합회라는 조직구조에서 실제 조직의 의사결정 구조에서 책무성을 갖고 활동하는 (법인)이사 21명 중에서 6명의 35세 이하의 이사를 선출했다. 올해 새롭게 청년부회장 제도를 도입해 청년부회장(조은지 부회장)도 선출했다. 100주년 기념 프로젝트로 ‘청년을 위한 100개 프로젝트’를 위한 모금도 시작했다. 청년 여성들이 편견과 차별을 깨고 생명살림을 실천하는 주체적 기독여성운동을 펼칠 수 있도록 프로젝트의 기회를 주려고 한다.” 

1973년 열린 가족법 개정 촉구 강연회 모습. ⓒ한국YWCA
1973년 열린 가족법 개정 촉구 강연회 모습. ⓒ한국YWCA

-100년을 맞은 이때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순간을 마주했다.

“지난 3월 30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여가부 폐지에 대한 범여성계의 의견을 전달했다. 범여성계 단체들은 면담을 통해 성평등 정책을 총괄하는 독립부처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정부 조직개편에 성평등정책 전담부처를 포함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여성이 겪고 있는 구조적 차별에 대해 대통령 당선인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달하며, 성평등 추진체계에 대한 구체적인 작동방안도 요구했다. 4월 1일에는 YWCA 별도로 ‘성평등정책 전담부처(여성가족부) 기능 확대 및 강화를 위한 한국YWCA연합회 요구서’를 인수위에 전달했다. YWCA는 모두가 구조적 차별의 벽을 넘어 기회의 평등을 갖는 세상을 만들어나가기 위한 운동을 온·오프라인에서 전개할 것이다.”

-새 정부는 원전 육성을 강조하고 있다. 고리 2호기의 수명 연장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는데.

“지난 4월 4일 한국수력원자력이 고리2호기 수명연장 신청서를 원안위에 제출했다. 문재인 정권이 채 끝나기도 전, 윤석열 당선자가 취임하기도 전에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 고리2호기 수명연장을 신청했다. 핵산업 부흥에 매진할 것이라는 차기 정부의 주장은 우리에게 심각한 공포감을 불러일으킨다. 40년 이상 된 노후핵발전소를 가동하는 것은 시민의 안전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윤 당선자가 주장하듯 기후위기 시대의 대안도 아니다. 기후위기는 핵발전소의 안전을 더욱 위협한다. 차기 정부는 기후위기 대안으로 핵발전을 이야기하고 있으나 사실이 아니다. 핵발전은 더 위험하고 가난한 지역에 위험을 부담하는 불공정한 에너지다. 우리는 고리1호기 폐쇄를 성사시킨 힘으로 고리2호기 폐쇄 투쟁과 함께 탈핵사회 쟁취를 위해 전국의 탈핵시민 운동을 전개해 갈 것이다. 정권은 최소 5년 마다 바뀐다. 이익이 먼저인 정치에 따라가는 운동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정권에 따라 우리도 변했다면 지금 YWCA 100년은 없었을 것이다.” 

2017년 신고리 5, 6호기 백지화를 위한 YWCA 전국행동의 날 모습. ⓒ한국YWCA
2017년 신고리 5, 6호기 백지화를 위한 YWCA 전국행동의 날 모습. ⓒ한국YW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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