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 마음 생각할 수 있어야 소통 가능...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라”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다'(브래디 미카코 지음, 정수윤 옮김, 은행나무)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다'(브래디 미카코 지음, 정수윤 옮김, 은행나무)

“뭐가 이렇게 비싸?” “이런 걸 도대체 왜 입는 거야.” “이게 진짜야. 옷 한 벌에 천만원이 넘다니.” 한 여성이 인터넷에 올라온 샤넬 투피스 가격을 남자친구나 가족에게 보여 줬을 때의 반응은 각양각색일 수 있다. 놀라거나 부정적인 얘기가 많은 한편에서 누군가 “힘 내 볼게” 했다면.

자신의 생각을 툭 내뱉지 않고 상대방의 입장이나 감정을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마음.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다’(은행나무 간)의 저자 브래디 미카코는 이같은 자세나 능력 곧 ‘엠퍼시(Empathy, 감정이입)’야말로 소통과 민주주의의 근간이라고 주장한다.

미카코는 엠퍼시에 대해 ‘타인의 입장에서 상상해 보는 일, 다시 말해 감정적 리터러시(독해력)’라고도 설명한다. 흔히 쓰이는 역지사지(易地思之, 다른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다)와 비슷하다. 그는 엠퍼시가 잘 드러난 예로 독립운동가 박열(1902~1974)의 아내였던 가네코 후미코가 감옥에서 쓴 단가를 들었다.

"짭쪼름하게 정어리 굽는 냄새. 여자 간수도 그리 부유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네." 박열과 함께 무정부주의 활동을 벌였던 후미코는 관동대지진 이후 경찰에 체포된 뒤 대역죄로 기소돼 사형 판결을 받았다. 글은 23세에 옥사한 그가 감옥에서 남긴 것이다. 미카코는 이 짧은 글에 대해 이렇게 썼다.

"식사도 형편 없고 심지어 공복이었을지도 모르는 후미코의 코에 정어리를 굽는 고소한 냄새가 감돈다. 화를 낼 만도 하다, 사람을 이 꼴로 만들어 놓고 태평하게 정어리나 굽고 있네 하고. 하지만 후미코는 정어리 굽는 냄새를 맡으며 여자 간수의 식생활과 소박한 삶을 떠올린다."  자기 처지에 아랑곳없이 상대의 입장이나 형편을 생각하는 마음. 이런 게 바로 갈등과 혐오를 치유할 수 있는 엠퍼시라는 얘기다.

그러면서 사이코패스는 하품도 따라하지 않는다고 적었다. 그에 따르면 사이코패스는 타고 나고, 소시오패스는 유년기의 학대 등 성장환경의 영향으로 생겨난다. 불안과 분노를 폭발시키는 소시오패스와 달리 사이코패스는 단지 스릴을 찾아 비도덕적인 일을 저지르기 때문에 소시오패스보다 훨씬 잔혹해진다는 것이다. 사이코패스는 또 화를 내거나 난폭하게 굴지 않아 사람을 잘 사귄 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조정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치가를 비롯한 남성 리더들이 타인의 감정에 무심하게 구는 건 엠퍼시가 없어서라기보다는 ‘남자는 이래야 한다’라는 젠더이미지에 갇혀 있어서인 듯하다고 분석했다. 남성이 나약함이나 친절함, 슬픔, 조심스러운 태도 등을 보이면 커리어를 쌓기 어렵다는 연구결과도 인용했다.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일본의 독특한 관념도 꼬집었다. "남을 귀찮게 하지 않겠다는 건 나도 남 때문에 귀찮아지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폐를 끼친다는 말로 타인과의 연결을 끊어버리는 문화는 행복과도 등을 돌리고 있다. 산다는 건 불평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공헌에 집중하는 일이다."

그는 상대의 입장에 서보는 것, 곧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는 일이야말로 소통과 민주주의의 바탕이라며 가정과 학교 모두에서 엠퍼시 교육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영국의 경우 공립중학교에서 엠퍼시의 중요성을 가르치는데 관련 교육을 실시하면 집단괴롭힘이나 폭력이 현저히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가정에서의 엠퍼시 교육은 아이들과의 대화로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이렇게 하자고 할 게 아니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라고 묻는다. 계속 물으면 아이들도 뭔가 제안하게 된다. 답이 엉뚱해도 절대 웃지 말고 그렇게 했을 때의 문제점을 말해준 뒤 다시 생각하게 한다. 아이들은 자기 의견을 말하고 타협점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관계 맺기와 엠퍼시를 배우게 된다."

브래디 미카코는 일본 태생으로 영국에서 보육사 겸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영국에서의 삶을 다룬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로 2019년 제73회 마이니치출판문화상 특별상 및 제2회 서점대상 논픽션 부문 대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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