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아 놀이문화로 자리 잡은 화장
기념일엔 어린이화장품 선물 인기
미디어·또래문화 영향...외모지상주의 우려도
어른들이 충분한 정보 제공·감독해야
어린이화장품 시장 안전관리도 강화
성분표시 의무화·5년마다 실태조사

화장하는 여아들이 늘고 있다. 어린이 화장품 시장도 성장세다. 미디어의 영향이 크다. 외모지상주의 우려가 높지만, 안 된다고만 하지 말고 아이에게 충분한 정보를 주고 선택할 수 있게 하라는 조언도 있다.  ⓒ여성신문
화장하는 여아들이 늘고 있다. 어린이 화장품 시장도 성장세다. 미디어의 영향이 크다. 외모지상주의 우려가 높지만, 안 된다고만 하지 말고 아이에게 충분한 정보를 주고 선택할 수 있게 하라는 조언도 있다. ⓒ여성신문

#1. 김수진(34)씨는 올해 초등학생이 된 조카를 위해 어린이날 선물로 ‘어린이 화장품 세트’를 주문했다. 쿠션 팩트, 립크레용, 매니큐어, 마스크팩, 파우치 등이 들었다. “아이가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더니 자기도 ‘공주 메이크업’ 하고 싶대요. 친구네는 엄마가 아예 화장대를 사줬다고 부러워하더라고요.”

#2. 메이크업 아티스트 J(35·경기 성남)씨의 5월 예약 리스트가 꽉 찼다. 40개월부터 10세까지 어린 여아가 많다. “‘키즈 프로필’ 촬영 고객들이에요. 간단한 색조화장을 해요. 애들은 연예인 된 것 같다고 좋아해요. 엄마들이 더 좋아하죠.”

#3. 아이들이 네일케어, 마스크팩, 화장 체험 등을 할 수 있는 ‘키즈 스파’도 인기다. 어린이 화장품 전문기업 슈슈코스메틱이 운영하는 ‘슈슈앤쎄씨’, 영실업 인기 캐릭터를 활용한 ‘시크릿쥬쥬 프리미엄 키즈카페’ 등이다.

요샌 ‘화장품도 육아템’이라고 한다. 그만큼 화장하는 여아들이 늘었다. 유튜브·인스타그램 등에 ‘어린이 뷰티·메이크업’ 콘텐츠가 뜨고, 아이가 어른처럼 꾸미는 ‘어덜키즈(성인·adult과 아이·kids의 합성어)’ 문화가 퍼지면서 어린이 화장품 시장도 성장세다. 최근 1020 여성들 간 ‘탈코르셋 열풍’과 사뭇 다른 분위기다.

뷰티스파 서비스를 받는 어린이 ⓒ여성신문 ⓒ여성신문
뷰티스파 서비스를 받는 어린이 ⓒ여성신문 ⓒ여성신문
2020년 2월 롯데백화점 대전점에 새롭게 문을 연 어린이 화장품 전문브랜드 ‘뿌띠슈’ 매장에서 직원들이 아이들에게 제품을 설명하고 있다.  ⓒ롯데쇼핑 제공
2020년 2월 롯데백화점 대전점에 새롭게 문을 연 어린이 화장품 전문브랜드 ‘뿌띠슈’ 매장에서 직원들이 아이들에게 제품을 설명하고 있다. ⓒ롯데쇼핑 제공
네이버 데이터랩으로 2019년 4월~2022년 5월 3일까지의 ‘어린이 화장’ 관련 키워드 검색량 지수를 분석했다. 최근 1년간 최저 0, 최고 100 사이 검색량을 기준으로 집계된다. 매년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때마다 관련 검색량이 폭증한다.  ⓒ네이버 데이터랩 분석화면 캡처
네이버 데이터랩으로 2019년 4월~2022년 5월 3일까지의 ‘어린이 화장’ 관련 키워드 검색량 지수를 분석했다. 최근 1년간 최저 0, 최고 100 사이 검색량을 기준으로 집계된다. 매년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때마다 관련 검색량이 폭증한다. ⓒ네이버 데이터랩 분석화면 캡처

대한화장품협회에 따르면 국내 어린이 화장품 시장 규모는 2014년 1200억원에서 2017년 200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2019년부터 코로나19로 화장품 업계가 타격을 입으며 영유아용 제품 생산도 감소했으나 최근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네이버 데이터랩으로 지난 3년간 ‘어린이 화장’ 관련 키워드 검색량 지수를 분석하니, 1일 기준 60으로 연초(14)보다 약 4배 늘었다. 매년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때마다 관련 검색량이 폭증한다. 아이 기념일 선물로 어린이 화장품을 찾는 이들이 많다는 얘기다.

온라인 쇼핑몰에선 다양한 어린이 화장품을 찾을 수 있다. 주요 온라인쇼핑몰에는 ‘완구-화장놀이’(네이버쇼핑), ‘뷰티-어린이화장품’(쿠팡) 등 아예 카테고리가 따로 있다. 4일 기준 네이버쇼핑에서 검색하니 해외직구를 제외하고 7만9740개 제품이 나온다. 가격도 1만원~9만원대까지 다양하다. ‘리틀블링 시크릿쥬쥬’, ‘디즈니’, ‘레시피박스’, ‘비엔씨’ 등 브랜드가 뜨고 있다. 자외선차단제 성분이 든 팩트, 립밤이나 립크레용, 매니큐어, 마스크팩 등으로 구성된 화장품 선물세트가 인기다. “6살 딸이 너무너무 좋아해요”, “우리 딸은 매일 요걸로 단장해요”, “딸래미 선물로 강추합니다” 등 만족했다는 후기가 많다.

네이버쇼핑몰 인기 어린이화장품 제품 구매 후기 일부. ⓒ네이버쇼핑몰 화면 캡처
네이버쇼핑몰 인기 어린이화장품 제품 구매 후기 일부. ⓒ네이버쇼핑몰 화면 캡처

김주덕 성신여대 뷰티산업학과 교수 연구팀이 2017년 초등학교 4~6학년 3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42.4%가 화장품을 쓴다고 답했다. 초등학교 5학년(43.3%) 때 처음 화장을 시작했다는 응답률이 높았다.

8세 조카 선물로 어린이 화장품을 산 김씨는 아이들의 화장을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본다. “안 된다고만 하기보다는 안전한 제품 하나쯤 사줘도 되지 않을까요. 어린데 외모에 너무 신경 쓸까 봐 걱정도 되지만, 시대가 그렇다면 아이가 경험해보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돕고 싶어요.”

외모지상주의, 편협한 미의 기준을 아이들이 고스란히 답습할까 우려하는 보호자도 많다. 8세, 10세 딸을 키우는 최혜리(35) 씨는 “애들이 어른처럼 화장하는 문화라니 이상하다. 우리 딸들도 화장품을 사달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화장은 당연한 게 아니고 남들의 시선에 너희를 지나치게 맞출 필요 없다고 여러 번 말했더니 납득하더라”고 말했다. 9세 딸을 키우는 아빠 박호재(39)씨도 “아이들 외모는 자라면서 변하는데 일찍 화장을 시작했다가 어릴 때부터 자기 외모를 비하하거나 집착하게 될까 봐 걱정이다. 주변에 그런 집이 있다. 초등 고학년인데 벌써 성형수술 이야기를 해서 집이 뒤집어졌다더라”고 했다.

“아동에게 영향을 주는 콘텐츠를 무분별하게 유통·노출하는 플랫폼”의 책임을 묻는 지적도 있다. 인권 전문가 이주영 서울대 인권센터 연구부교수는 “아동의 자기결정권, 자아 표현을 억압해온 우리 사회문화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렇다고 어른들의 소비문화나 가치관에 아동이 고스란히 노출돼 영향을 받는 현상을 장려할 만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플랫폼의 책임이 중요하다”고 했다.

보호자를 위한 현실적인 충고도 있다. “아이가 자신의 욕구를 정확히 파악하고 건강과 관련된 정보를 충분히 얻고 판단할 수 있도록 보호자로서 충분한 정보 제공과 감독이 필요합니다. 유해할 수 있는 화장 성분에 대해 함께 찾아보고 적정한 화장시간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주세요.” (2017년 세이브더칠드런 아동보호 ‘한 아이’ 캠페인 중)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16년 발간한 ‘소중한 내 피부를 위한 똑똑한 화장품 사용법’ 중.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16년 발간한 ‘소중한 내 피부를 위한 똑똑한 화장품 사용법’ 중. ⓒ식품의약품안전처

어린이 화장품에 대한 국가의 관리감독도 촘촘해졌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7년부터 전자상거래상 어린이 화장품 판매 시 전 성분 표시를 의무화하고 있다. 관리감독 기준이 엄격하지 않은 마트, 문구점 등에서 형광물질 같은 유해성분을 넣고도 제대로 표시하지 않은 사례가 꾸준히 적발됐기 때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그해 ‘어린이용 제품류’를 화장품 유형에 추가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아동 화장 문화·외모지상주의를 조장할 수 있다는 지적에 철회했다. 식약처는 2020년 ‘화장품법’과 그 시행규칙을 개정해 영유아 또는 어린이 화장품은 제품별 안전성 자료를 작성·보관하도록 했다. 또 식약처가 5년마다 영유아 또는 어린이 화장품 사용 실태, 사용 후 이상 사례, 제품 안전성 자료 작성·보관 현황 등 실태조사를 하고 이를 반영한 위해요소 저감화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했다.

사용자도 신중하게 제품을 살펴야 한다. 완구 형태의 어린이용 색조화장품, 디즈니 프린세스 화장품 시리즈 등 유명 캐릭터를 앞세운 해외직구 제품은 성분 표시, 사용기한 등을 제대로 표시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제품 명칭, 제조·판매업자 상호, 제조번호, 사용기한이나 개봉 후 사용기간이 표시돼 있어야 한다. 어린이 화장품에 사용상 제한이 필요한 원료도 식약처나 생활법령정보 ‘어린이 생활건강(https://bit.ly/3Fb1osU)’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용 불가 원료를 사용한 화장품을 판매·제조한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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