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경기 수원시 한 병원 신생아실의 모습. ⓒ여성신문·뉴시스
경기 수원시 한 병원 신생아실의 모습. ⓒ여성신문·뉴시스

우리나라의 저출생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며 합계출산율이 1.5명 이하로 내려온 2000년 이후로 이미 우리 사회의 최대 이슈로 자리잡았다. 최근 통계자료에 의하면, 여성 1명이 일평생 낳은 자녀 총수를 의미하는 ‘합계출산율’은 2018년 0.97명을 기록하며 1명 이하로 떨어진 이후 2020년 0.84명, 2021명 0.81명으로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61명의 절반에 불과한 수치로 가히 ‘초저출생 국가’에 진입했다고 볼 수 있다. 

정부는 2005년부터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을 수립하여 현재 제4차 기본계획을 시행 중이다. 또한,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도 제정해 중앙정부 및 지자체가 출생율을 높이기 위해 결혼·임신 및 출산지원, 자녀양육지원, 일·가정양립지원, 청년지원, 주거지원 등 다양한 정책을 시행해 왔다. 이를 위해 누적 380조 원에 달하는 예산을 쏟아 부었으나 정책효과는 고사하고 출생율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이는 기존의 정책이 결혼·출산 장려를 통한 ‘경제성장‧국가발전’이라는 논리를 중심으로 여성을 재생산의 도구화 또는 수단화 하는 데 그치고, 그 안에 자리 잡은 ‘젠더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결과이다. 제1~2차 기본계획과 달리 제3∼4차 기본계획에서는 ‘젠더관계’를 고려한 정책 패러다임을 지향했다고는 하나, 세부사업으로 들어가면 실제 정책 내용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태다.

저출생 현상은 가족구조, 노동시장, 돌봄문제, 주거문제, 가치관의 변화 등이 복합적으로 얽히며 작동하는 사회변동 속에 내재해 있는 ‘젠더관계’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이다. 즉 여성들의 경제활동과 사회참여가 확대되고 이중소득자모델이 보편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은 오늘날의 상황에서 양육과 돌봄의 책임이 여성에게만 전가되는 환경요인 하에서는, 여성들이 결혼·출산 등을 꺼리게 되며 남성들 또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전통적인 가족구조 안으로의 진입을 거부하는 경향이 높게 나타나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아이를 가져야 하는 세대는 주로 20~30대로서 소위 ‘MZ세대’라 명명된다. 이들은 자기중심적인 삶을 추구하며 여가 및 일·생활균형을 원하는 한편, 개개인의 다양성 존중을 중요시하는 등 기성세대와는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이들 세대의 여성과 남성 모두는 노동시장에서의 생존이 무엇보다 중요한 경쟁 환경에 직면하다 보니, 이들에게는 결혼과 출산이 필수가 아닌 선택의 문제일 수밖엔 없다. 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30∼50대보다 20대가 결혼과 출산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삶에서 결혼과 출산이 중요하다 않다”고 답한 20대 여성은 30%, 남성은 25%이며, 이 수치는 30대 이상에 비하면 1.7배에 달할 정도이다. 최근 또 다른 연구결과에서는 사회에 대한 신뢰도와 행복수준이 높을수록 결혼·출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사회가 불평등하다고 생각하는 정도가 클수록 출생율은 낮아지므로, 경제적 조건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지는가도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하지만 우리의 성별격차지수는 여전히 매우 낮은 수준이고, 표준인구 10만 명 기준 OECD 평균 자살율(10.9명)보다 2배 이상 높은 우리나라(23.5명)는 특히 30대 이하의 자살율이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며 그 행복수준 또한 낮다.

이와 같이 저출생 문제는 우리 사회의 정치·경제·사회 등 제반 영역의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 복합적으로 나타난 사회변동의 결과이다. 따라서 이러한 현상을 인정하고 인구변동으로 인한 충격을 완화하면서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특히 사회의 다층적·복합적인 여러 요소들을 고려한 총합적인 방안의 모색이 요구되는데, 그 안에서 나타나는 ‘젠더관계 변화’를 놓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미래 세대와의 가교가 될 MZ세대 가치관의 변화나 정책 요구도를 적극 반영해야 한다. 즉 노동시장과 돌봄시장에서 성평등한 참여가 이루어지고, 성별·가족관계 등과 상관없이 누구나 동등하게 경제적·사회적 자원에 접근할 기회와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만 한다. 또한 인구변화에 대한 대응책이 국가경쟁력 제고의 관점을 넘어 개인 삶의 질을 고려하는 차원에서 진지한 논의를 통해 마련되어야 한다. 이는 곧 “인구정책의 목표는 국가발전이 아닌 개인의 인권, 성평등, 삶의 질 향상이라는 관점에서 논의돼야 한다”라는 1994년 카이로 국제인구개발회의 행동강령과도 맥을 같이 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즈(FT)도 우리나라의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출생장려보조금 등의 현금성 지원보다는 성평등을 확립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실제로 유럽에서도 성평등 수준이 높은 노르웨이, 스웨덴, 아이슬란드, 프랑스 등이 상대적으로 높은 출생율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 한다. 그러므로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여성과 남성이 ‘노동’과 ‘돌봄’ 영역에서의 성평등한 주체임을 고려하는 인식의 틀 안에서 인구정책을 기반으로 미래 변화를 예측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를 통해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을 고려한 세심한 정책이 마련되는 한편, 경제·교육·고용·주택·사회보장 등에 이르는 모든 구조를 새로운 인구구조에 맞춰 지속성장이 가능한 사회로 변화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우리에게 우선 필요한 것은, MZ세대의 특성과 정책 요구도를 반영하며 젠더 간-세대 간 갈등해소 및 지역격차 등을 완화할 수 있는 포용적인 거버넌스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장명선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
장명선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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