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이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 회의실에서 총사퇴 의사를 밝히는 입장문을 발표한 뒤 국회 본청 건물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이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 회의실에서 총사퇴 의사를 밝히는 입장문을 발표한 뒤 국회 본청 건물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더불어민주당의 참패로 끝나자, 민주당의 강성 지지층 사이에서는 ‘박지현 책임론’이 강하게 불었다. 전문가들은 사퇴한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의 상황이 현재의 여성 청년 정치인의 민낯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3개월, 작은 희망의 씨앗은 뿌렸다”

민주당은 지난 3월 13일 그를 공동비대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지선 이후 박 전 위원장은 임명 3개월 만에 사퇴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3개월, 혜성 같은 시간이 흘렀다. 차별과 격차와 불평등, 청년이 겪는 이 고통은 청년의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믿고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며 “성과도 있었지만 마무리를 못한 일이 더 많다. 아쉽다. 하지만 작은 희망의 씨앗은 뿌렸다고 생각한다”고 썼다.

2019년 디지털성범죄 ‘N번방 사건’을 세상에 처음 알린 ‘추적단 불꽃’의 활동가였던 박 전 위원장은 지난 대선 막바지 민주당의 ‘영입 인재’로 정치권에 입문했다. 당시 이재명 대선 후보로 20대 여성 유권자가 결집한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박 전 위원장은 지방선거 공천 과정에선 여성·청년 공천 의무화 방침을 관철해냈다. 또 3선인 박완주 의원의 성비위 의혹이 불거지자 곧바로 제명을 결정하고, 최강욱 의원의 성희롱 발언 논란도 징계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이 26일 오후 서울 강북구 수유역 앞에서 이순희 강북구청장 후보 지원유세를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뉴시스·여성신문

여성 청년 정치인을 향한 성희롱 문자 폭탄

하지만 박 전 위원장은 지선을 앞두고 ‘586 정치인 용퇴’, ‘성 비위 무관용 원칙 적용’ 등의 쇄신안을 발표한 것이 당의 내홍으로 이어지며 선거 패인을 제공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나는 꼼수다’(나꼼수) 출신 김용민 평화나무 이사장은 지난 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지현이라는 역대급 진상의 패악질은 분명히 복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도 출구조사 결과를 두고 ‘두 번째 심판’이라고 한 박 위원장의 발언을 언급하며 “민주당 비대위원장이 심판 당했다고, 마치 남의 정당인 듯이 말한다”고 했다.

성희롱 문자 폭탄 등 폭력도 있었다. 박 전 위원장은 지난 5월 26일 YTN라디오 인터뷰에서 “비대위원장 자리에 있으면서 정말 많은 문자를 받았다”며 “문자에 비판이 아닌 맹목적 비난, 성적인 희롱 등이 같이 담겨 있다 보니 이 부분에 정말 많은 문제의식을 느꼈다”고 밝혔다.

“당내 반발은 ‘쇄신 불가’로 읽힐 수밖에 없다”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은 지난 3일 논평을 내고 “최강욱 의원의 성희롱 발언과 박완주 의원 성추행 문제에 박지현 비대위원장이 단호한 대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발생한 당내 반발과 잡음은 민주당의 ‘반성 없음’과 ‘쇄신 불가’로 읽힐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선거 이후 강성 지지층 사이에서 ‘너(박지현 전 위원장) 때문이다’라는 식의 책임 전가의 말이 많이 나오는데 공격을 거둬야 한다”며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을 보며 여전히 여성청년정치인은 생존해야 하는 취약한 위치라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박지현은 물론 제2, 제3의 박지현 나와야”

황훈영 한국여성정치연구소 부소장은 박 전 위원장의 거취를 두고 박 전 위원장은 물론이고 제2의, 제3의 박지현과 같은 여성 청년 정치인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부소장은 “기득정치권은 여전히 가부장이며 표를 만들기 위해 청년 여성을 전면에 세우려 한다”며 “박 전 위원장을 공동비대위원장으로 임명한 것은 그들이 진정으로 성평등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표가 된다 싶어서였던 것 같다”고 비판했다. 청년 정치인을 보여주기식 또는 위기돌파용으로 여겨져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선거 이슈로만 이용된 여성폭력 근절의 영역에서 실질적으로 투쟁하며 성장한 정치인은 박 전 위원장이 처음”이라며 “하지만 청년 정치의 풍토가 없는 가운데 박 전 위원장이 살아남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팬덤 정치가 지배하는 풍토 속에서 청년이 스스로 정치 세력화를 할 수 있는 힘을 기르긴 어렵다”며 “정당은 매번 인재가 없다고 하는데 정당이 나서서 청년 정치인을 키우고 이들이 정치를 할 수 있도록 할당제 등 시스템적으로 제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전 위원장의 거취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박 전 위원장의 정치 무대 복귀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도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박 전 위원장은 3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강단을 보여줬다. 또 대중들에게 박지현이라는 이름을 각인했다”며 “본인이 이런 기회를 잘 활용하면 정계 복귀는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당 혁신을 이끌 적임자로 이재명 의원에 이어 박지현 전 위원장이 꼽히기도 했다. 8일 스트레이트뉴스가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지난 4~6일 전국 만18세 이상 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민주당의 혁신을 이끌 적임자를 묻는 질문에 이재명 의원을 꼽은 응답이 28.8%로 집계됐다. 이어 박지현 전 비상대책위원장 9.0%, 홍영표 의원 6.8%, 우상호 의원 4.0%, 이인영 의원 3.7%, 우원식 의원 1.2% 등의 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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