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내부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은 한 손에는 법전을, 나머지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다. 이 여신상은 모든 이들이 법 앞에 평등함을 상징하고 있지만, 남성중심적 법체계는 여성들에게 공평하지만은 않다. 가정폭력 피해자에 의한 가해자 사망 사건에서 사법부가 피해 여성의 관점에서 정당방위를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대법원 내부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은 한 손에는 법전을, 나머지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다. 이 여신상은 모든 이들이 법 앞에 평등함을 상징한다. ⓒ여성신문 

국민참여재판에서 성범죄 피해자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2022년 6월 7일 서울대 서문과 A 전 교수의 강제추행 혐의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이 있었다. A 전 교수는 3차에 걸쳐 제자 B씨의 머릿속과 허벅지 흉터를 만지고 강제로 팔짱을 끼웠다는 혐의를 받았다.

재판에서 피해자 B씨는 피해 사실을 진술하기 위해 검사와 함께 추행 당시 상황을 재현했다. 재판장에는 재판부와 검사, 변호사 외에 7명의 배심원과 20명쯤 되는 방청객들이 앉아 있었다. A 전 교수도 함께였다. 가림막이 B씨와 A 전 교수 사이에 있었지만 피해자에게 부담스러운 상황일 수밖에 없었다. 피해자는 다소 힘겨워 보였지만 피해 당시 입었던 원피스를 직접 입은 채 1, 2, 3차 추행을 모두 재현해야 했다. 피해자는 피고인이 되고, 검사가 피해자가 되어 그 당시에 어떤 말을 했는지, 어떤 동작을 취했는지 등을 전부 상세하게 묘사했다. 그 과정에서 검사는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하기 위해 ‘팔이 가슴에 닿았냐’와 같은 질문을 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피해자가 진술을 거부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배심원을 설득하는 게 필요하고, 현재 피고인에 유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국민참여재판에서, 피해자는 억울한 판결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진술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애초에 이번 국민참여재판에 대해서도 B씨는 반대 입장을 밝혔다. “무차별적인 사람들 앞에서 다시 피해 사실을 재현·증언하고 설득하려 노력하는 시간을 겪고 싶지 않다”며 국민참여재판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피고인 A 전 교수가 신청한 국민참여재판은 수용됐다.

게다가 A 전 교수와 B씨의 분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재판이 잠시 쉬어가는 동안 A 전 교수와 B씨는 로비에서 마주쳤다. A 전 교수가 메일을 여러 차례 보내고 주변 지인들로부터 B씨의 전화번호를 알아내려 했고, 이를 B씨가 스토킹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A 전 교수와 B씨의 분리는 피해자를 위해 꼭 필요한 조치였다.

국민참여재판은 피고인의 권리다. 그렇다면 피해자의 보호받을 권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

한편, 제자 성추행 혐의로 기소된 A 전 교수는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 재판에서 성추행 혐의에 대한 무죄를 선고받았다. 7명의 배심원은 무죄로 결론내렸다. 재판부(형사합의29부 재판장 김승정)도 배심원 평결을 수용해 A 전 교수에 무죄를 선고했다.

피해자는 “판결을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며 검찰에 항소의견서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참여재판 제도가 도입된 뒤 성범죄 사건은 줄곧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대법원 자료를 보면, 무죄 선고 비율은 2010년 13%에서, 2020년 47%로 10년 사이 급격히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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