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출산·가사·돌봄이
연구하는 여성의 커리어에 미치는 영향
10년에 걸쳐 방대한 데이터 교차분석한
책 『아이는 얼마나 중요한가』 국내 출간

“대학원부터 전임교수까지
결혼·육아는 언제나 여성 커리어에 치명적”
여성교수 임금, 자녀 1명당 1%씩 줄어
남성보다 결혼하거나 자녀 가질 가능성 ↓
가정 포기하고 일 전념 요구하는 대학 환경 지적

『아이는 얼마나 중요한가』(시공사) 홍보 이미지 ⓒ시공사
『아이는 얼마나 중요한가』(시공사) 홍보 이미지 ⓒ시공사

“20세엔 무일푼, 29세에 박사 취득, 31세에 CEO, 지금 여섯 아이의 아빠입니다. 비결은...”
“그 비결은 ‘아내’겠지요. 늘 그렇죠.”

남성이 커리어 비결을 설명하자 ‘가사·육아를 당신 아내가 도맡았으니 가능한 일 아니냐’는 지적이 빗발쳤다. 이 남성은 사과했다. 최근 트위터에서 2만 번 이상 공유된 화제의 글이다. 

우리는 사회적 성공을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공고한 젠더 차별을 놓치거나 무시하는 모습을 본다. 출발점이 같아도 여성 앞엔 임신·출산·육아 같은 장애물이 많다. 박사, 교수도 똑같이 겪는 문제다. 그러나 이러한 고학력 여성이 겪는 성차별은 ‘배부른 소리’로 여겨지거나, 다른 계층에 비해 충분히 조명받지 못했다.

『아이는 얼마나 중요한가』(시공사) ⓒ시공사
『아이는 얼마나 중요한가』(시공사) ⓒ시공사

학계의 구조적 성차별이 얼마나 심각한지 대규모 양적·질적 데이터 분석으로 입증하고, 대책을 제안하는 책이 국내 출간됐다. 미 캘리포니아대 버클리(UC 버클리)의 첫 여성 대학원 학장을 지낸 메리 앤 메이슨 교수 등 3인이 쓴 『아이는 얼마나 중요한가』(시공사)다. 아이를 키우며 해외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는 안희경 식물학자가 번역했다. 교육정책·젠더이슈 전문가인 신하영 세명대 교양대학 교수가 감수를 맡아 최신 국내 학계 현황을 각주로 촘촘히 채웠다.

책의 메시지를 한 줄로 요약하면 “(여성 연구자에게) 아이 낳기 좋은 시기는 없다.” 대학원생부터 전임교수까지, 결혼·육아는 언제나 여성의 커리어에 치명적이다. 10여 년 전 미국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는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우기는 사람들에게 건네기 딱 좋은 책이다.

연구진은 미국 전국 단위에서 격년마다 시행되는 박사학위 소지자 조사(SDR), 캘리포니아대 9개 캠퍼스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10여 년에 걸쳐 교차분석했다. 결혼, 출산, 가사·돌봄노동이 여성의 교수 임용, 승진, 임금 등 커리어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이렇게 치밀하게 살핀 연구는 드물다. 2013년 나온 책이지만 지금 한국에 소개할 만한 이유다. 저자 중 메이슨 교수는 대학원 내 성평등 확산에 힘쓴 여성 교수다. 대학 의사결정자가 된 후 이 연구를 추진했고, 연구 결과를 학내 정책에 어떻게 반영했는지도 들려준다. 

여성 교수 임금, 자녀 1명당 1%씩 줄어
남성보다 결혼하거나 자녀 가질 가능성 ↓
가족 포기하고 일에 전념 요구하는 대학 환경

연구에 따르면 여성은 남성보다 정년트랙 조교수직을 얻을 가능성이 7% 낮았다. 6세 미만 자녀를 뒀다면? 비슷한 상황의 남성보다 16%나 낮았다. 6세 미만 자녀를 둔 여성 박사학위자는 무자녀 여성 박사학위자보다 노동인구 이탈 가능성이 4배 높았다. 여성 교수 임금은 자녀 1명당 1%씩 줄었다. 여성 교수는 남성보다 저임금으로 교수직을 시작하고, 승진 가능성도 낮고, 가족 상황에 따라 이직도 더 제약받았다.

이러한 미래를 예감하고 대학원 시절부터 가족계획을 늦추거나, 커리어 목표를 낮추거나 학계를 떠나는 여성도 많았다. 여성은 교수가 돼도 남성 동료들처럼 결혼하거나 자녀를 가질 가능성이 낮았다. 정년트랙 여성 교수가 커리어 초기에 결혼할 가능성은 남성 동료보다 50% 낮고, 이혼할 가능성은 144% 높았다. 박사학위 취득 12년 후, 정년트랙 남자 교수의 70%, 여자 교수는 44%만이 결혼해 자녀가 있었다.

연구진은 가족 친화적이지 않은 대학의 근무 환경도 지적했다. 성별을 떠나 교수는 의사·변호사 등 타 전문직보다 자녀 수가 적고, 실제 희망하는 수보다 적게 낳았다. “대학의 남성 커리어 모델은 여성을 근본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았다. 남성도 아내와 파트너, 자녀와 함께할 시간을 빼앗기는 고통을 경험한다.”

2020년 5월 20일 과학저널 ‘네이처’지에는 “코로나19로 여성의 돌봄노동이 늘면서 여성들은 남성 동료들보다 커리어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분석이 실렸다. ⓒNature 웹사이트 캡처
2020년 5월 20일 과학저널 ‘네이처’지에는 “코로나19로 여성의 돌봄노동이 늘면서 여성들은 남성 동료들보다 커리어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분석이 실렸다. ⓒNature 웹사이트 캡처

한국 대학원생 절반 이상 여성인데...‘여성 교수 25%’ 달성 학교 0곳
“임신·육아 등 ‘여성성’ 드러내면 전문성 낮은 사람으로 여겨져”

오늘날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대학 진학률은 70% 이상, 대학원생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다. 그런데 국·공립대의 여성 전임 교원 비율은 18.3%, 4년제 사립대는 27.2%에 그친다(교육부, 2020). 교육부가 2020년 교육공무원법을 개정해 특정 성별이 국공립대 교원의 4분의 3을 초과하지 못하게 하고, 2030년까지 여성 교수 비율을 25%로 올리기로 했으나, 목표에 도달한 학교는 아직 없다.

채용 성차별도 여전하다. 대학교수 임용 지원 서류·면접에서 결혼 여부, 배우자 직업, 자녀의 나이를 묻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미국에선 2013년 이미 불법이었다. 타지로 파견되거나, 아예 직장이 타지로 이전하는 경우는? 많은 유자녀 여성 연구자가 일을 포기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대학에서는 임신, 육아 등 ‘여성성’을 드러내면 전문성 낮은 사람처럼 받아들여진다”고 감수를 맡은 신하영 교수는 설명했다. “여성 교원은 학기 중에 임신해도 못 쉽니다. 육아휴직 제도가 있어도 실효성이 낮죠. 교수 개인 사정으로 인한 휴강도 어렵고요. 요즘은 학사일정이 빡빡해서 한 주라도 쉬면 반드시 보강해야 해요. 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느냐고요? 교수 사회는 좁아요. ‘블랙리스트’에 오를까 우려하는 이들이 많죠. 성차별을 만드는 구조를 보기보다 개인 차원에서 극복하려 하는 여성도 많고요.”

대학·사회가 일·가정 양립 지원해야...우리에겐 ‘보통의 교수 엄마’가 필요하다

일과 삶의 균형은 소중하다. 혼자선 못 지킨다. 대학과 사회가 도와야 한다. 특히 커리어 초반에 임신·출산·육아를 경험하는 대학원생과 박사후연구원이 일찌감치 일을 포기하지 않도록 지원이 필요하다. 저자들은 출산 후 박사학위 심사기한 연장, 유급 육아휴직, 대학 내 어린이집, 육아 보조서비스 제공 등을 제안했다.

또 맞벌이 연구자 중 여성이 가정을 위해 커리어를 희생하는 ‘투바디’ 문제를 막기 위해 한 대학이 부부를 모두 고용하는 방안, 연구자가 경력단절되지 않도록 ‘시간제 정년트랙 교수직’을 제공하고 언제든 전일제 교수직으로 복귀를 보장하는 방안 등도 제안했다. 한국도 고려할만하다. 신하영 교수는 “성별균형제(할당제)도 의미가 있지만, 현장에서는 이런 미시적인 제도들이 더 의미 있고 도움이 된다”고 했다. 

“학계에서도 일·가정 양립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롤 모델이 더 필요하다”고도 했다. “방학 때 애 낳고 학기가 시작되면 아무렇지 않은 듯 복귀하는 교수를 보며 ‘여자는 저렇게 독해야 교수가 될 수 있구나’ 생각했어요. 그러나 우리에겐 ‘보통의 교수 엄마’가 필요합니다. 독하고 예외적인 여성만 기회를 얻는 게 아니라요. 오후 5시가 되면 아이를 데리러 나가고, 육아휴직도 하는 여성들, 아이 보느라 몇 년간 파트타임으로만 일하는 여성들도 기회를 얻을 수 있어야 해요. 그럴 때 후배 여성들도 ‘나도 할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연구자의 꿈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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