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민선 8기 박희영 용산구청장
취임식 없이 조용히 업무 시작
허례허식 걷어내고 실용 선택
대통령실 이전은 위기 아닌 기회
“구민 속으로 들어간 구청장” 약속
여성 정치인 자생력 키울 수 있는
토양 위해 정당별 육성 제도 필요

박희영 용산구청장 ⓒ홍수형 기자
박희영 용산구청장 ⓒ홍수형 기자

대통령실 이전으로 ‘용산 시대’가 개막했다. 새로운 ‘정치 1번지’로 떠오른 용산구의 구정 운영은 박희영(61) 용산구청장이 책임진다. 1995년 민선 1기 이래 최초의 여성 용산구청장이다. 용산구청장직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만난 박 구청장은 신중히 답변하면서도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핑크색 셔츠에 흰색 운동화 차림의 그는 4년 뒤 구민들에게 “구민 속으로 들어간 구청장”이라는 말을 듣고 싶다고 했다. 허례허식은 걷어내고 실용을 추구하겠다는 각오다. 형식적인 취임식도 없앴다. 7월 1일 취임식에 직원들을 부르는 대신 부서를 찾아가 인사하고 16개동에 찾아가 중간보고를 받는 것으로 본격적인 구정 업무를 시작한다.

박 구청장은 용문시장 인근에서 산부인과를 운영하던 부친을 따라 초등학교 때 처음 용산에 발을 디뎠다.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그는 정치에 뜻을 두고 있었지만 졸업과 동시에 심재철 전 고려대 교수와 결혼 해 미국으로 건너가 다른 삶을 산다. 두 아이를 기르며 캔사스시티 한국학교 교사로 지냈고, 한국으로 돌아와 용산에서 영어학원 강사로 일했다. 용산이 지역구인 권영세 의원(현 통일부장관) 정책특보를 거쳐 2014년 용산구의원을 지내며 정책실무를 경험했다.

박 구청장은 ‘첫 여성 용산구청장’이란 수식어에 기쁨보다 책임감이 앞선다고 했다. 그는 “최초라는 타이틀을 얻은 만큼 잘해야겠다는 부담감도 느낀다”며 “누가 봐도 잘 뽑았고, 일하는 구청장이란 평가를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구청장은 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위기가 아닌 기회라고 봤다. 그는 “용산구민들의 변화에 대한 열망으로 선택 받았다”며 “용산공원 조성, 개발 방향 등에 구민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힘 있는 여당 구청장’이라는 점에 구민들이 힘을 실어준 만큼 구민들의 목소리가 용산개발의 방향에 실릴 수 있도록 대통령 집무실-서울시청-용산구청의 협조체계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여성 정치인이 자생력을 갖기 어려운 정치 풍토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냈다. 그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보완하기 위한” 여성의 정치 참여를 제고할 수 있는 교육과 정당별 유인책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최초의 여성 용산구청장이자 대통령 집무실과 이웃한 기초단체장이다.

“기쁘고 두려운 마음이다. 당선 확정 순간에는 기쁜 마음이 컸지만 갈수록 책임감을 더 느끼고 있다. 예상치 못한 큰 득표 차에 담긴 의미, 변화에 대한 용산구민의 바람이 얼마나 큰지를 누구보다 잘 안다. 대통령 집무실까지 이전해오면서 용산구의 위상도 크게 달라지게 됐다는 점도 중요한 변화요인이다. 용산구민을 위한 구정뿐 아니라 용산의 가치를 높이고 도시기능을 재정비하는 등 큰 틀의 변화가 뒷받침돼야 한다.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격전지에서 큰 격차로 승리했다. 구민의 선택을 받은 이유는.

“용산구민들의 변화에 대한 열망이다. 지난 12년간의 구정이 안정적이었을지 모르지만 그로 인해 용산은 정체됐다. 수십 년간 각종 규제와 제한으로 개발이 미뤄져 구민들의 절박함도 더 컸던 것 같다. 여기에 오세훈 서울시장이 보여준 정책이 뒷받침되면서 변화에 대한 믿음이 생겼고, 대통령 집무실까지 이전해 용산의 발전이 보다 구체화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지역 개발 등 구민이 변화 의지와 오세훈 시장의 정책, 대통령 집무실 효과 등이 유권자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친 게 아닌가 싶다.”

-용산 개발에 대한 청사진은.

“용산은 서울의 브랜드 가치, 국가경쟁력을 좌우할 핵심도시가 될 것이다. 용산공원 조성, 국제업무단지 조성, 철도지하화를 포함한 교통체계 개편 등이 준비 중이다. 특히 정비창 부지에 조성될 국제업무단지는 비즈니스 업무기능에 녹지와 복합상업시설이 어우러진 신경제의 중심축이 될 전망이다. 미래 용산은 글로벌 비즈니스 도시로서 대전환하게 되는 것이다.

중장기적 발전계획 외에 용산구민들의 주거환경 개선과 개발 역시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 현재 용산 16개동 거의 대부분이 개발예정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개발이 시급한 상황이다. 각 지역별로 주민들 간 협의가 진행되고 있는데, 주민들의 뜻만 모아진다면 행정적 차원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다. 구청이 개발의 방향이나 방식에 개입할 수는 없지만 어떤 방식이든 주민들의 결정이 이뤄진다면 적극 지원하겠다.” 

박희영 용산구청장 ⓒ홍수형 기자
박희영 용산구청장 ⓒ홍수형 기자

-집무실 이전 이후 집회, 교통체증 등으로 불편을 호소하는 시민들도 있는데.

“대통령 집무실 이전 초기에는 다소 혼란이 빚어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당히 안정됐다. 삼각지 고가를 중심으로 한 상습정체가 여전하고 출퇴근 시간대 교통체증이 일부 나타나고는 있지만 당초 우려했던 수준까지는 아니다.

다만 집회·시위로 인한 소음 문제는 인근 주민의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은 걱정스럽다. 용산은 대부분이 주거지역이다. 휴식을 취해야 할 주민들이 집회, 시위 소음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실제 주민들의 직접 피해와 관련해 집회·시위와 관련 규정에 있어 다른 기준이 적용될 필요도 있다. 주택가 소음 규정이 집회에 맞는지 등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는지 검토하겠다.”

-조속한 용산공원 조성을 공약했다. 토양오염에 대한 우려도 있는데.

“용산공원은 국토교통부 관할이기 때문에 용산구청에서 개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지금 용산공원 시범개방과 관련해서도 용산구청은 환경정비 및 행정적 업무협조를 하고 있을 뿐이다. 토양오염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SOFA 규정으로 인해 출입이나 굴착이 불가능하고 구청의 정보접근 권한도 제한적이어서 주도적인 역할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산구민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용산구의 역할은 반드시 필요하다. 용산공원을 가장 많이 이용할 사람은 용산구민이고 관내에 있는 시설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대통령경호실이나 국토교통부와 협조체계를 구축하고 오염정화작업을 포함해 안전하고 쾌적한 공원 조성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

-지난해 12월 용산구가 여성친화도시로 지정됐다. 구체적인 사업은.

“여성친화도시로 명명되지만 ‘여성’에 국한된다기보다 아동, 청소년, 노인,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대변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 여성의 사회참여, 안심환경 조성, 공동육아 커뮤니티 등 분야별 사업이 추진 중인 것으로 아는데, 용산의 특성과 현실이 잘 반영되고 있는지 검토해볼 생각이다. 예컨대 용산의 경우 인구수가 적어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필요하다. 보육시설에 비해 유아의 수가 부족한 경우라든가, 보육원과 유치원의 통합운영 방안 등 실제 수요를 감안한 운용정책이 있어야 한다. 일단 현황을 파악한 뒤 실현가능한 정책을 모색하겠다.”

-첫 여성 용산구청장으로서 ‘유리천장을 깼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성 정치인들이 늘어나려면 어떤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가.

“우리나라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지만 우리 여성을 대표할 수 있는 정치인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실제 여성 유권자들을 대변할 수 있는 대표체제는 반드시 구축돼야 한다. 여성 정치인을 육성하기 위한 제도나 우대정책, 여성의 정치참여를 제고할 수 있는 교육은 물론 다양한 유인책을 정당 차원에서 마련해야 한다. 물론 여성이라는 이유로 과도한 혜택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한시적이나마 지금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보완하기 위한 제도가 유지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 점에서 저 역시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선출직에 당선된 여성 정치인들이 잘해서 롤모델이 되는 것 이상의 유인책은 없기 때문이다. 구청장이든, 국회의원이든, 광역의원이든, 기초의원이든 이번에 당선된 분들이 정말 잘해서 ‘여성들이 잘하더라’라는 인식을 만들어야 한다.”

-앞으로의 포부는.

“우리 용산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미래도시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용산의 가치와 위상이 달라지고, 그런 용산에서 사는 주민들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 목표다. 임기 4년 동안 용산구민과 함께 하는 구청장이 되겠다. 사무실에 앉아 지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구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것을 필요로 하는지 직접 소통해서 확인하고 실천하는 그런 구청장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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