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언니들]
정소미 더모델즈 대표
30여 년간 달려온 한국 패션계의 산 역사
서울패션위크 등 주요 패션쇼 기획·연출
박영선·장윤주 등 톱모델 발굴·교육
대우 마티즈 런칭쇼와 이영희 한복의 만남 등
다양한 패션 행사 기획·총괄
6월 한국패션모델예술협회 회장 맡아
“패션문화예술인 하나로 묶겠다”

정소미 더모델즈 대표·한국패션모델예술협회(KOFMAA) 회장. ⓒ홍수형 기자
정소미 더모델즈 대표·한국패션모델예술협회(KOFMAA) 회장. ⓒ홍수형 기자

정소미 더모델즈 대표는 한국 패션 산업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서울패션위크 등 국내 주요 패션쇼 기획·연출가, 모델 교육자로서 30여 년간 쉼 없이 달려왔다. 박영선, 민윤경, 정재경, 장윤주, 안소라 등 톱 모델들을 키운 장본인이다. 앙드레김, 이상봉, 루비나, 진태옥, 박윤수, 손정완 등 대표 디자이너들의 무대를 책임졌다. 1998년 유럽에서 호응을 얻은 이영희 한복디자이너와 대우 마티즈 자동차 런칭쇼 및 한복 패션쇼도 그의 작품이다.

지난달 발족한 (사)한국패션모델예술협회(KOFMAA) 초대 회장도 맡았다. 정소미 대표는 “패션산업의 발전과 영역 확장을 위해서는 패션 라이프스타일 영역과 문화예술 관계자들이 함께 패션산업 융합과 가치 향상을 추구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며 “현재 150여 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조직을 점차 확대해 국내 대표 문화 예술 단체로 만들어 영향력을 넓혀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소미 더모델즈 대표·한국패션모델예술협회(KOFMAA) 회장. ⓒ홍수형 기자
정소미 더모델즈 대표·한국패션모델예술협회(KOFMAA) 회장. ⓒ홍수형 기자

정소미 대표가 패션업계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1980년대. 한국 사회에서 모델이 전문 직종으로 인정받기 시작했으나, 모델 관리와 패션쇼 기획·연출은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던 시기다. 정소미 대표는 프로모델로 활동하는 한편 직업 모델 지망생들에게 워킹, 메이크업, 의상 연출 등을 교육하고 디자이너들에게 연결하는 일을 했다. 최경자 디자이너가 설립한 국내 최초 모델 양성기관인 국제차밍스쿨에서 워킹을 가르치기도 했다.

1988년 서울 을지로에 쁘렝땅백화점이 들어서면서 패션쇼가 자주 열렸다. 정소미 대표는 이 무대들에 참여한 일을 계기로 본격적인 패션쇼 기획·연출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99년 모델 교육기관·에이전시 ‘더모델즈’를 설립해 현재까지 대표로 활동 중이다. 더모델즈는 한국에서 가장 유서 깊은 모델 교육기관이다. 1970~90년대 인기를 누린 ‘1세대 패션모델’ 이희재씨가 운영하던 학원을 이어받았다.

2000년~2020년까지 서울패션위크 총괄 혹은 파트너사로서 기획·연출을 맡아 한국 패션 산업 발전을 이끌었다. 디자이너가 제공한 의상과 콘셉트를 살펴보면서 의견을 나누고, 모델 캐스팅, 무대 디자인과 음악, 조명, 미술 등을 총괄하면서 모든 요소가 조화를 이룰 수 있게 하는 게 그의 책무다.

패션모델은 돈도 경력도 안 되는 일로 여기던 나라에서 패션모델이 전문직으로 자리 잡고, 패션업계에 당당히 진출하는 여성이 늘어나는 데 그가 기여한 바가 크다. 패션계의 변방이던 서울에 내로라하는 브랜드들이 진출하고, ‘동양인은 패션모델로는 자질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뒤집고 세계적인 슈퍼모델들이 탄생하는 걸 지켜봤다.

“의식주에서 가장 쉽고도 어려운 게 옷이지요. 하나의 의상이 탄생하기까지 얼마나 긴 과정을 거쳐요. 패션쇼는 어떻고요. 무대, 조명, 미술, 영상, 음향, 모델 등 전문 지식과 기술의 총집합이죠. 그런데 사계절이 있는 나라에서 사는 한민족은 태생적으로 패션 감각이 예민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 중심인 서울은 지금 세계가 주목하는 패션 도시고, 아세안 국가의 ‘패션 허브’가 될 겁니다. 그렇게 될 거라는 희망이 있어요.”

‘열정 부자’인 정소미 대표에게도 모든 걸 놓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1993년 교육청의 인가를 받아 모델 학원을 열었는데 IMF 사태로 망했어요. 다 포기하고 싶었는데 주변에서 안 된다, 너는 일해야 한다고....”

재도약의 발판은 1998년 3월 이영희 한복디자이너가 대우자동차와 손잡고 경주 힐튼호텔에서 연 마티즈 론칭쇼 겸 패션쇼였다. 신차 발표를 하면 키 크고 날씬한 여성이 미니스커트나 몸에 딱 붙는 드레스를 입고 소개해야 한다는 당대의 통념을 깨고 단아한 한복을 입은 여성들이 무대에 올랐다.

“제가 이영희 디자이너를 섭외해 쇼를 총연출했어요. 외국인 300명이 기립박수를 보냈죠. 김우중 회장님도 아주 만족스러워하셨고, 밀라노, 런던, 바르샤바 등 서유럽 5개국 순회 론칭쇼로 이어졌어요. 이영희 디자이너가 파리 컬렉션에 선보인 한복들로 하이라이트를 구성했죠. 전 지금도 마티즈를 타요. 하하하.”

이외에도 다양한 국내외 패션쇼와 패션 관련 행사를 기획 총괄했다. ‘모델의 이해’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모델 입문 교과서도 집필했다. 중견배우이자 화가인 정재순씨가 그의 친언니다. 처음엔 ‘왜 공부를 안 하고 모델 일을 하느냐’며 반대했던 언니는 이제는 그의 든든한 지지자다.

은퇴나 유유자적한 삶을 꿈꾼 적 없는지 물었다. “패션이 제 삶이에요. 전 이거 외에는 아무것도 몰라요. 한 길로만 와서 (다른 건) 빵점이야. 하하하. ‘이제 좀 쉬라’는 말도 굉장히 생소해요. 내가 왜 그래야 하죠?”

한국패션모델예술협회(KOFMAA)가 6월 1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섬유센터에서 발대식을 열었다.  ⓒ한국패션모델예술협회 제공
한국패션모델예술협회(KOFMAA)가 6월 1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섬유센터에서 발대식을 열었다. ⓒ한국패션모델예술협회 제공

정소미 대표는 더 큰 그림을 그린다. 그가 초대 회장을 맡은 한국패션모델예술협회(KOFMAA)는 “패션과 예술의 문화적 결합을 통해 패션 산업의 저변 확대를 도모”하는 단체다.

한국모델협회(KMA), 아시아모델협회 등 기존 모델단체들이 프로 모델들을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한다면, KOFMAA는 “패션을 문화로 만드는 활동”을 강조한다. 패션모델, 패션디자이너, 스타일리스트 등 패션업계 전문가들과 영화·미술·음악·무용 등 예술인들이 만나 시너지 효과를 내겠다는 것이다. ‘패션문화예술인’이라는 개념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는 △패션모델 매니지먼트 △패션문화 예술쇼 운영 △글로벌 홍보마케팅 교육 △새로운 패션라이프스타일 학술회 등을 추진해 새로운 산업 트렌드를 창출하고 산업 기반을 다질 예정이다.

한국 패션모델들의 권익 보호에도 앞장설 계획이다. 모델들의 국제 경쟁력 강화, 직업 안정성 확보, 사회봉사, 국제 교류, 후진 양성 및 해외 진출 등을 지원할 방침이다.

“패션은 종합예술입니다. 패션을 공부하려면 다양한 문화예술 지식과 기술도 공부해야 해요. 그것을 구현하는 사람들이 모델들이죠. 우리가 패션쇼에서 보는 젊고 키 크고 마른 프로 모델들이 전부가 아닙니다. 살면서 갈고닦은 재능, 인품이 어우러진 ‘삶 모델’을 얘기하는 거예요. 아름다운 마음과 생각을 지니고 아름다운 행동을 하는 사람이요. 삶 자체에서 이 사람은 시크하다, 세련됐다는 느낌이 우러나는 사람들이요. 무대에 오르는 사람은 최고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잖아요. 테크닉도 중요하지만, 기본은 몸과 마음의 건강을 철저히 관리하는 거예요. 그런데 보여주기에만 치중해서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무대에 서는 모델들이 많아졌어요. 제가 걸어온 길인 만큼 올바른 문화를 전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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