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와 애정』, 『이등 시민』
-모성의 이름으로 희생 강요 안 통해

 

분노와 애정 모이라 데이비 지음, 시대의창 펴냄
『분노와 애정』 모이라 데이비 지음, 시대의창 펴냄

46세 된 발달장애 딸을 숨지게 한 72세 엄마가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판결문은 이렇게 쓰고 있다. “피고인은 범행 이전에 아무런 범죄 전력이 없고, 스스로 피해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을 자책하고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으며, 앞으로 자기 자녀를 살해하였다는 죄책감과 회한을 안고서 남은 생애를 살아가야 한다. 피고인은 현재 만 72세의 노인으로서 고도의 우울증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질병으로 신체적인 건강 또한 징역형의 집행을 오롯이 감내하기에는 벅차 보인다.”

스물넷에 낳아 홀로 키운 딸이었다. 한 인터넷 언론은 “엄마가 딸의 두뇌, 안내자, 눈 역할을 했다”며 둘이 샴쌍둥이처럼 늘 함께 다녔다고 보도했다. 딸이 스무 살이 넘어 직업훈련을 받고 일을 하러다니는 20년 동안도 언제나 함께였다. 화장실도 함께 갔다고 한다.

발달장애 자녀를 죽이고 자기도 죽으려다 살아남은 엄마들 사건은 이 뿐 아니다. 여덟 살 아들을 살해한 30대 엄마, 20대 딸을 살해한 50대 엄마… 공통점은 이들이 홀로 아이를 돌봤다는 것이다. 경제적 어려움과 막막한 고립 상태에서 이들은 짧게는 8년, 길게는 46년을 ‘엄마’로 버텼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모성’을 요구받은 셈이다.

46세 딸을 살해한 72세 엄마 사건을 보도한 인터넷 뉴스에서 눈에 띈 문장이 있었다. 2017년 엄마의 우울증이 깊어지자 OOO(딸)을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엄마 없는 일상이 어색했을까. 돌발행동이 터졌고, 결국 정신병원에서 일주일 만에 퇴원 조치 당했다. ” 병원에서도 돌보기 어려운 사람을, 그 딸보다 20kg이 덜 나가는 67세 여성이, ‘엄마’라는 이유로 고스란히 다시 떠맡게 된 것이다.

발달장애 자녀와 엄마들의 비극적 범죄 사건을 접하다 책꽂이에서 『분노와 애정』을 다시 꺼내 읽었다. 이 책은 신간이 아니다. 이미 오래 전(!) 2001년 미국에서 출간됐고 한국에서는 2018년 번역돼 나왔다. 원제는 『Mother Reader: Essential Writings on Motherhood』이다. 우리말로 하면 『어머니 독본: 엄마됨(모성)에 대한 필독서』 쯤 될까? 사진작가 모이라 데이비가 서른여덟에 첫 아이를 낳고 “고립감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아가면서 더 잘해낼 수 있도록 자극받고자” 읽어온 글들을 묶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도리스 레싱,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 『컬러 퍼플』 작가 앨리스 워커, 어스시 시리즈로 이름난 SF작가 어슐러 르귄, 시인 실비아 플라스 등 이름난 여성작가 16인의 글이 실려 있다. 이처럼 이름난 작가들이 ‘엄마’들이었다니! 게다기 엄마로서의 삶이 빚어낸 분노와 애정을 이렇게나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다니!

앨리스 워커는 “여성예술가가가 아이를 낳아야한다고 생각하는지” 질문 받고 즉시 “예”라고 대답했던 일을 기억한다. (남성예술가는 그런 질문을 받지 않는가하는 문제는 넘어선 상태였다고 한다.) 워커는 바로 덧붙였다. “하지만 한 명만 낳아야 해요.” 왜 한 명이냐는 질문에 워커는 답했다. “아이가 한명이면 움직일 수 있거든요. 하지만 둘 이상이면 (내가) 먹잇감이 되어버리지요.” 워커가 이 말을 한 것은 1979년이다. 43년이 지난 지금, 아이 한 명도 낳기를 거부하는 세상이 됐다. 모성, 엄마됨을 감당하기가 더 어려워진 것일까.

제인 라자르는 뉴욕 뉴스쿨 문학부 교수다. 그는 “전부 똑같이 생긴 아파트가 중앙 마당을 빙 둘러싸고 있다. 이 아파트를 디자인했다는 유명 건축가는 아이와 살아본 경험이 없는 게 분명하다. 아이들이 기어오르고 싶어 안달을 내는데 위험할 정도로 가파르다. 유모차를 길 위로 끌어다 놓으려면 힘들게 용을 써야한다”고 젊은 엄마였던 시간을 기억한다. “놀이터를 지날 때면 그 지루함과 고립감을 떠올린다.”

『이등 시민』 모이라 데이비 엮음, 시대의창 펴냄
『이등 시민』 모이라 데이비 엮음, 시대의창 펴냄

에코페미니즘에 영감을 준 『여성과 자연』의 작가 수전 그리핀은 ‘페미니즘과 엄마됨(모성)’이라는 주제를 제안한다. 이혼한 지 6년, 여덟 살짜리 딸을 키우던 그는 “아이가 귀찮고 방해가 된다”며 분노를 드러낸다. 그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훼손 뉴스를 듣고 “그 평화롭고 주름 없는, 젊은 마돈나의 얼굴이 영영 사라지기를, 아니면 적어도 금이라도 가기를 어느 정도 바랐다. 그녀가 쉽지 않은 삶을 살았다는 흔적이 드러나기를 바랐다”고 말한다. ‘엄마’의 삶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슐라 르귄은 글 쓰는 여성(엄마)에 주목한다. 『작은 아씨들』의 조 마치는 『조의 아이들』로 인해 다시 보게 되었고 『톰아저씨의 오두막』 작가 해리엇 비처 스토우는 14년 동안 여러 아이를 낳아 키우며 부엌 식탁에서 ‘19세기 가장 감동적인 미국 소설’을 썼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묻는다. 그 자신은 아이 셋을 낳고 스무권의 책을 썼다. “스무명의 아이와 책 세권이 아니라 얼마나 다행인지!” 그는 자신이 속한 인종과 계급(말할 것도 없이 미국 사회의 최상위 티어에 든다!), 돈과 건강, 특히 남편의 지원으로 그러한 결과를 얻었다고 말한다.

엄마됨은 축복인 동시에 굴레다. 아기가 없었다면 다른 일에 쓸 수 있는 재능과 건강과 시간을 난폭하게 빼앗아간다. 한국사회는 엄마, 엄마됨, 모성에 대해 여전히 경계와 시한이 없는 희생을 요구한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의 원인조차 여성들의 이기심, 자기중심적 사고로 몰아가는 무지막지함을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 모성과 희생을 동일시하는 사회에 대한 저항의 본질에 주목해야 한다. 엄마가 되면서 여성들이 겪는 ‘분노’는 무시하고 ‘애정’만 강조해서는 가망이 없다.

이 책의 원전인 『Mother Reader』에 실린 다른 글들은 『이등 시민』이라는 제목으로 2019년 출간됐다. 『분노와 애정』이 여성 작가들의 생생한 자기 체험기인데 비해, 『이등 시민』은 이들의 문제의식이 살아있는 소설집이다. 『시녀이야기』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의 ‘출산’ 등 9편이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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