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퀴어문화축제 16일 서울광장서 열려
주최 측 추산 연인원 약 13만 참여
올해 슬로건 ‘살자, 함께하자, 나아가자’
인권위·구글·이케아 등 부스 행사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 등
12개국 대사·대사관 관계자 지지 연설
여야 정치인·정부 관계자는 연설 불참

서울퀴어문화축제가 16일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참가자들이 대형 무지개 깃발을 펼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서울퀴어문화축제가 16일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참가자들이 대형 무지개 깃발을 펼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성소수자들의 축제, 서울퀴어문화축제·서울퀴어퍼레이드가 16일 3년 만에 서울광장에서 개최됐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지난 2년간 온라인 위주의 행사만 진행하다가 다시 거리로 나왔다. 궂은 날씨에도 다채로운 부스 행사, 축하 공연 등이 열렸다. 주최 측 추산 연인원 13만 5000명(경찰 추산 오후 3시 기준 1만3000여 명)이 참여해 성황을 이뤘다.

올해 축제의 슬로건은 ‘살자, 함께하자, 나아가자’다. “혐오와 차별, 팬데믹, 자연재해와 전쟁 속에서 성소수자가 꿋꿋이 각자의 삶을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변화시키는 동력이 될 것”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현주 서울퀴어퍼레이드 집행위원장은 “성소수자 또한 한국 사회의 떳떳한 구성원이라는 것은 아주 당연하다. 우리의 자유롭고 행복한 모습을 오늘 보여주자”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주한미국대사관 등 15개국 대사관, 진보당·녹색당 등 정당, 구글·이케아코리아 등 기업을 포함해 71개 기관·단체가 부스를 열고 성소수자들과 연대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날 12개국 주한대사 또는 대사관 관계자가 성소수자 인권 지지 발언을 했다. 지난 10일 부임한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는 “저는 이번 주에 한국에 도착했지만 이 행사에 참석하고 싶었다. 차별을 반대하고, 모든 사람이 존중받는 사회를 위한 미국의 헌신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며 “우리는 그 누구도 두고 갈 수 없다. 인권을 위해 계속 싸우겠다”고 말했다. 골드버그 대사의 퀴어문화축제 연설은 부임 후 첫 대외 행보라는 점에서 관심이 집중됐다.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가 16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석해 지지 연설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가 16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석해 지지 연설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커밍아웃한 게이인 필립 터너 주한 뉴질랜드 대사는 동성 배우자와 함께 연단에 올랐다. “모두가 자유롭게 자긍심을 갖고 살 수 있어야 한다”며 한국어로 “여러분, 파이팅! 힘내세요!”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줄리안 클레어 주한 아일랜드대사는 서울광장 바깥에서 벌어지는 동성애 반대 시위를 두고 “우리가 저들보다 더 큰 소리를 낼 수 있다. 우리(아일랜드)는 저 밖에서 머물다가 다시 이 공간으로 돌아오기까지 긴 여정을 떠났다”며 “절대 포기하지 마라. 변화는 꼭 일어나며 그 속도가 여러분을 놀라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29년 전만 해도 동성애를 처벌했던 아일랜드는 2015년 세계 최초로 국민투표로 동성혼을 합법화했다.

콜린 크룩스 주한 영국대사는 유창한 한국어로 “성 정체성으로 인한 차별은 21세기에 존재해선 안 된다”며 법적 보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혐오는 실패해야 한다. 언제나 사랑이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주한 네덜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유럽연합(EU), 스웨덴, 캐나다, 핀란드, 호주 대사나 대사관 관계자가 연단에 서서 성소수자 인권 지지 발언을 했다. 대한민국의 여야 정치인이나 정부 관계자는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축제를 앞두고 서울시가 행사 장소로 낙점된 서울광장 사용허가를 내주지 않아 성소수자·인권단체가 “차별행정”이라며 반발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달 여러 기독교계 언론 인터뷰에서 “정치인 오세훈의 개인적인 입장은 동성애 반대”, “신체 과다 노출이나 음란물 전시 등을 할 경우 제재하겠다”고 밝혔다. 

 

서울퀴어문화축제가 16일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참가자들이 을지로 일대에서 퀴어퍼레이드 행진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서울퀴어문화축제가 16일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참가자들이 을지로 일대에서 퀴어퍼레이드 행진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이날 오전 11시 사전행사, 오후 2시 본행사에 이어 오후 4시부터 행사의 대미인 서울퀴어퍼레이드가 개최됐다. 서울광장을 출발해 을지로입구, 종로, 명동을 거쳐 서울광장에 돌아오는 행진(총 거리 3.8㎞)이다. 행진이 시작되자마자 폭우가 쏟아졌지만 참가자들은 즐겁게 노래하고 춤추며 행진했다. 이후 오후 7시까지 서울광장에서 축하공연이 열릴 예정이었으나 우천으로 취소됐다.

이어 오는 31일까지 제22회 한국퀴어영화제가 열린다. 온라인·오프라인으로 동시 개최되며, 오프라인 상영은 22일부터 24일까지 서울 서대문구 라이카시네마와 종로구 에무시네마에서, 온라인 상영은 31일까지 OTT 스트리밍 플랫폼 퍼플레이에서 진행된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