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에 대하여』 박상영 지음, 문학동네 펴냄

『믿음에 대하여』 박상영 지음, 문학동네 펴냄
『믿음에 대하여』 박상영 지음, 문학동네 펴냄

2020년 1월 19일, 인천국제공항에서 한 중국 여성이 고열로 인천의료원에 이송됐다.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이었다.

그로부터 2년 반. 2022년 8월. 여전히 우리는 코로나19 팬데믹 세상에 살고 있다. 4차 백신 접종이 이뤄지고 있지만, 변종 역시 계속 나타나고 있다. 올 가을 또다시 대 유행이 올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2020년 1월 이전의 세상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의 삶을 실감하는 중이다.

모든 것이 달라졌다. 확진과 격리, 재택과 비대면이 뉴노멀- 즉 새로운 일상이 되었다. 노부모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고, 가족의 장례식도 치르지 못했다. 공연은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영화관에 못가는 사람들은 넷플릭스에 열광했다. 카페는 테이크아웃 음료만 팔았다. 테이블과 의자를 포개어 쌓아둔 스타벅스 매장은 핵전쟁으로 파괴된 지구를 보여주는 디스토피아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동네 카페와 영세한 식당들은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 정책에 버티지 못했다. 단풍잎 같이 앙증맞은 마스크를 쓴 아기들은 답답하다고 보채지도 않았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이 코로나19 시대를 관통했다. 사회적 아픔에 대해 유난히 촉수가 예민한 작가들은 이 시대를 어떻게 기록할까.

박상영의 연작 소설 『믿음에 대하여』를 여성신문사 책상에서 집어 들었다. 최근에 발간된 책들로 쌓은 탑을 한 권 한 권 해체하다 만났다. 기독교 서적인가? 오해할만한 ‘촌스러운’ 제목은 아마도 작가나 편집자의 고도의 계획적 산물이겠지. 작가의 전작들에 이은 ‘사랑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광고 문구도 그런대로 역할을 했다.

<요즘 애들> <보름 이후의 사랑> <우리가 되는 순간> <믿음에 대하여> 등 4편의 연작으로 이뤄진 소설은 매 편마다 김남준-고찬호-유한영/황은채-임철우, 라고 이름을 부르고 있다. 이들이 매 편의 주인공이자 1인칭 화자(話者)다. 이들은 우연이 아닌 인연으로 엮여있다. 소설의 도입부라고 할 수 있는 <요즘 애들>은 김남준을 화자로, 김남준과 황은채가 잡지사 인턴으로 착취당한 이야기를 주로 들려준다. 온갖 모욕과 어려움을 견디어내는 이유는 3개월 수습기간을 마치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바로 윗 선배의 모욕(선배입장에서는 가르침이다!) 때문에 고통 받고 결국은 잡지사를 나온다. 이제 서른한 살이 된 김남준과 황은채는 일자리를 찾는 요즘 애들의 전형성을 담아낸다.

<보름 이후의 사랑>부터 이 소설이 하려는 이야기가 풀려나온다. 화자인 고찬호는 ‘이 쪽’이다. 동성애 남성인 그는 유한영과 회사 동료로, 어느 날 “한영님이 이쪽인 거 예전부터 알고 있었어. 나도 마찬가지고”라며 자신을 드러낸다. 보름달을 보고 “주택청약에 당첨되게 해달라”고 비는 현실적 인물인 그가 김남준과 사귀고 함께 살게 된다. 김남준이 대출해서 집을 사고 고찬호가 전세금으로 대출 부분을 갚는, 부동산을 매개로 한 현실적 방안들이 동성 커플의 사랑이야기보다 더 실감난다. 코로나19 확산과 격리를 둘러싸고 이들의 사랑은 균열을 보인다.

<우리가 되는 순간>과 <믿음에 대하여>에서 작가는 김남준-고찬호, 유한영-임철우 커플의 비밀스러운 과거 얽힘을 드러낸다. 동성 연인들이 겪는 불안과 상실, 일상의 균열은 사실 코로나19 때문만은 아니다. 사진작가였던 철우가 이태원에서 운영하던 일본식 선술집이 이태원 발 코로나19 집단 확산 때문에 치명적 타격을 입지만, 만약 다른 시절이었더라면 또 다른 이유가 작용했을 것이다. 사회적 입지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동성애 정체성을 ‘쉬, 쉬’ 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 또 불안하게 이어지는(얽혀드는) 연인 관계의 본질적 모순이 소설의 진짜 기둥이다.

남성들의 사랑과 삶을 이야기하는 이 소설에서 이들 주변의 여성들이 조연으로 등장한다. 이들의 삶도 신산하고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아니,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더욱 배가 된다.) 남준의 잡지사 인턴 시절 동기인 은채, 남준과 은채를 들들 볶고 모욕하던 선배 배서정, 대학에서 제적당해 ‘고졸’ 학력이라는 이유로 회사에서 ‘잘린’ 나나가 요즘 청년 세대의 불안을 드러낸다면, 은채와 한영이 일하는 대기업 부장 진연희, 한영의 이모 리나는 이들보다 조금 앞선 세대 여성들이 모성 vs 자기실현이라는 상반된(실은 충돌해서는 안 될!) 목표 앞에서 겪는 아픔을 담아낸다. 업무실적이 우세함에도 남성 동료에게 임원 승진을 빼앗기는 진연희는 한 때 성차별에 앞장서 싸웠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살아남기 위한 배제 전략에 몰두한다. 작가는, 아마도, 이런 진연희에게서 “지 년이 그래봐야 별 수 있겠어”라는 생각을 뽑아내려 했던 것은 아닐까? 아쉽게도, 이 소설에서 남성 인물들이 가진 고유성과 생생함에 비해 여성들은 납작하고 상투적이다. 이들은 모두 ‘명문여대’ 출신이고, 열심히 살고, 자기 분야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터에서나 가정에서 이들의 삶은 좌절된다. 배서정이나 진연희의 표독스러움이 유독 은채와 나나에게 향할 때, ‘여적여’라는 남성지배 사회의 비아냥이 그대로 재연된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이런 불안과 불만이 이 소설의 본질적 목표일 수도 있겠다, 생각해본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