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실에 맞춘 ESG 경영을 위한 ‘K-ESG 가이드라인’이 나왔다. 여성구성원 비율, 여성급여 비율 등의 항목이 성평등 기업 문화 확산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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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80년대 여성들에게는 좋은 직장이라 생각되었던 ‘은행’에서 자행된 여성에 대한 차별, 그리고 이에 대항해 온몸으로 맞서 싸웠던 여성 현장운동사를 기록한 출판기념회(“평등으로 가는 여정”)를 며칠 전에 다녀왔다. ‘은행원’이라는 사무직에 종사하며 성별 편견 및 성차별적 제도·관행 등을 종식시키기 위해 투쟁하고 연대하며 맹렬하게 활동해 온 레전드 여성분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소중한 자리였다. 지금은 거의 70대가 넘으신 분들이 ‘동지’라는 이름으로 하나 되어 그 때 그 역사적인 순간들을 회상하면서, 그 자리에 참석한 20∼30대와도 함께 호흡하는 뜻깊고 가슴 벅찬 자리이기도 했다. 출판회에 다녀온 소회를 나누다 소위 MZ세대에게 ‘여행원제’, ‘결혼퇴직각서’를 들어본 적 있는 지 물었다. 이에 “여행(travel)을 지원해 주는 제도인가요?”라는 MZ세대의 되물음에 한바탕 웃고 난 후, 이 제도를 없애기 위해 선배여성들이 어떻게 투쟁해 왔는가를 아주 간단히 설명하며 그 책을 필독할 것을 권유했다.

『평등으로 가는 여정-성차별 벽을 깬 여행원 인권운동사』/장도송, 이한순 구술/민경자 저술/이정자 기획/나녹
『평등으로 가는 여정-성차별 벽을 깬 여행원 인권운동사』/장도송, 이한순 구술/민경자 저술/이정자 기획/나녹

사실 이 용어를 모르는 오늘날이 참 다행이라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지금도 노동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성차별 문제, 그리고 최근 대학가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 등 우리 사회의 성평등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22년 성격차지수(GGI)는 전체 146개국 중 99위로 지난해보다는 3계단 올라갔으나 여전히 하위권이다. 경제참여 부문은 115위, 교육성취 부문은 97위, 정치권력 부문은 72위이고 보건 부문은 52위이다. WEF는 현재의 성격차를 고려할 때 남성과 여성이 성평등하게 되기까지는 132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성평등 수준이 낮은 한국 등을 포함한 동아시아는 이보다 더 긴 168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그렇다면 국제기구와 세계적인 많은 오피니언들은 왜 ‘성평등’을 강조하는가? 이는 단순한 도덕적 의무나 형평성의 차원을 넘어 성장과 혁신을 주도할 새로운 동력원으로서 주목하기 때문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전 IMF총재가 주장한 것처럼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확대하는 것은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경제의 다면화, 소득 불평등을 줄이고 인구감소를 완화하므로 국제사회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직면한 사회문제들을 풀 수 있는 열쇠이다. 유엔의 지속가능개발목표(SDGs) 중 하나가 성평등(gender equality)이고 그 하위 목표로 ‘의사결정에서의 여성의 참여’를 꼽는 것은, 성별균형과 다양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그 자체로 비민주적이고 부정의한 결과가 나타나기 쉽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이 투자 프로세스에 지속가능성 요소와 ESG 요소들을 확대 반영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일 것이다. 이처럼 ESG 및 '이사회 다양성' 이슈가 주목받고 있는 세계적 흐름에 발맞춰, 최근 유럽의회와 유럽이사회도 유럽연합집행위원회가 제안한 상장사의 비상임이사 성균형 개선지침안(2012)에 합의하였다(2022.6.7.) 이 지침의 주요 내용은 “과소 대표되는 성별은 상장사의 비상임 이사회에서 최소 40%, 전체 이사 중 최소 33%가 대표되어야 하며, 회원국들은 기업들이 해당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도록 보장해야 한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기업들은 이사 선임 시 투명하고 성 중립적인 기준을 적용하고, 성별이 다른 후보자들이 같은 수준의 자격을 갖췄을 때 대표성이 낮은 성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도 8월 5일부터 적용되는 자본시장법 제165조의20에서 “자산총액이 2조원 이상인 주권상장법인은 이사회의 이사 전원을 특정 성으로만 구성하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사회 구성 중 1명의 여성 사외이사가 있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거수기 노릇만 하는 것이지 않는가’ 하는 회의론도 있으나, 적어도 유리천장에 균열을 내는 ‘시작점’이라는 데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 조항을 뒷받침 할 별도 벌칙조항은 없다 하더라도 국내 의결권 자문기관 및 기관투자자는 해외에서 적용되는 이사회 다양성 판단기준을 적용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향후 이사회의 다양성을 글로벌 수준으로 높이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전개될 것이다. 어느 조직이나 성평등, 성별균형, 다양성 등이 확보되면 보다 폭넓은 시야는 물론 집단 지성 또한 향상되므로 팬데믹 등과 같은 위기에도 더욱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성평등 사회 실현, 성별균형의 목표는 여성에게 이익을 주고 남성에게 불이익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급변하는 정치·경제·사회 환경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행복하게 서로를 지지하면서 모두에게 이득이 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여성과 남성은 성평등한 사회 실현을 위해 서로 연대·협력하고 기존 조직시스템이 갖고 있는 편견을 없애야 한다. 아울러 능력있는 여성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지지하는 멘토십을 발휘하여 공정하고 성별균형적인 조직시스템을 구축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여성노동현장에서 투쟁하고 연대하며 모두의 행복과 평등으로 가는 여정을 닦아 온 레전드들의 발자취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며 그들의 외침처럼 우리 모두 이제 ‘다시 시작이다’.

장명선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
장명선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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