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폐인 “‘우영우’ 좋다면서 장애인 시위 비난, 이기적”
일본 자폐인 “‘우영우’ 좋다면서 장애인 시위 비난, 이기적”
  • 이세아 기자
  • 승인 2022.08.07 09:58
  • 수정 2022-08-07 10:4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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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우영우’ 리뷰 투고자
일본 여성 자폐인 스즈키 나츠코씨 인터뷰
“왜 남을 불편하게 하며 시위하냐”
약자의 권리 행사 비난하는 사람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화롭게’ 살려면
부당한 차별 감내하며 살라는 건가요

일본도 장애인 이동권·권리예산 보장 갈 길 멀어
소수자가 겪는 불편, 나와 무관하다 믿기도
약자 권리 보장은 사회 전체를 위한 일

일본에 사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 여성 스즈키 나츠코 씨의 기고에 대한 (여성신문 7월 23일자 일본 여성 자폐인 “‘우영우’, 살아도 된다는 용기 준 작품”) 독자 반응이 뜨거웠습니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310/0000098727?sid=103). 이후 기자가 나츠코 씨와 주고받은 이메일 내용을 인터뷰 형식으로 편집해 소개합니다. 장애인의 설 자리가 좁은 것은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장애 차별과 배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스즈키 나츠코 씨. ⓒ본인 제공
스즈키 나츠코 씨. ⓒ본인 제공

- 나츠코 님의 지난 글을 읽고 ‘잘 몰랐던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하고 관심을 갖게 됐다’, ‘국적은 다르지만 생생한 여성 자폐인의 삶과 생각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뜻깊다’ 등 한국 독자들의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나츠코님도 못다 한 이야기가 많을 듯합니다. 자폐인이 겪는 일상의 차별과 어려움에 대해 더 들려주세요.

“먼저 제 이야기는 모든 자폐인의 공통적인 특징이 아닌 한 사람의 예라고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직장인 시절, 저는 남들이 듣기에 엉뚱한 소리를 무의식적으로 자주 했습니다. 마음에 없는 말을 하지 않는 게 힘들었습니다. 저는 가장 늦게 입사한 가장 어린 직원이었는데, 입사한 지 얼마 안 돼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냐’는 동료들의 질문에 “딱히 없다”고 답해 분위기가 싸해진 적 있습니다. 그저 자신이 없어서 한 말이었습니다. 또 일본에는 윗사람이나 고객을 접대할 때 방 입구에서 가장 먼 자리에 앉히는 관습이 있습니다. 상사가 이를 지키지 못한 동료에게 주의를 줬습니다. 저는 알면서도 그저 궁금한 마음에 “왜 그래야 하냐”고 상사에게 물었습니다. 역시 반응은 좋지 않았죠. 

누군가가 성희롱, 인종차별 등 차별적 언행을 하면 분노와 괴로움을 참지 못해 상사에게조차 반발한 적이 많았습니다. 처음엔 “이상한 놈”이라며 놀림을 받았지만 점점 소외돼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보수적 직장 분위기에 순응하지도, ‘가벼운 농담’에도 웃지 못하는 ‘어린 여자’는 그저 비뚤어지고 사회성 없는 사람으로 보였을 겁니다. 어느 날 갑자기 자폐 스펙트럼 장애 진단을 받았으나 회사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장애를 이유로 제가 겪은 부당한 일들이 가려질까 두려웠습니다. 적응하려 노력했지만 사람들의 표정을 잘못 읽거나 언외의 의미를 잘 파악하지 못해 지칠 뿐이었습니다. 퇴사하던 날, 제가 겪은 일들에 대한 호소글을 회사 사람들 메일로 보내려 했지만 가족이 “나중에 어떤 공격을 받을지 모르니 가만히 있는 게 좋겠다”고 했습니다. 억울했지만 결국 조용히 퇴사했습니다.

지금도 불편한 일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은 제게 어려운 일입니다. 얼마 전 구청에 장애인 연금 관련 문의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니 그 나이에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어요?” 직원의 말에 아무 반박도 못 하고 통화가 끝난 뒤 펑펑 울었습니다. 곧바로 항의해봤자 장애인이 이상한 소리를 한다고 생각할 것이 뻔했으니까요.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한국에 “불편러” 같은 말이 있는 것처럼 일본에도 약한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을 싫어하고 외면하는 분위기가 존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살기에 바빠서 남의 불편한 이야기를 들을 여유도 없고, 소수자들이 겪는 불편을 개선해도 자신은 얻는 게 없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무엇보다도 자신과는 다른 사람들을 막연히 무서워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사회에서 외면받는 사람들이 짊어져 온 고통을 눈앞에 들이대는 것 같아서 무서워하는 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자신과 타인의 권리를 지키는 것은 사회 전체에 좋다고 믿습니다. 장애 여부를 떠나, 모든 사람은 환경이나 시대에 따라 소외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엔 저도 이기적인 사람일 겁니다. 그래서 늘 타인의 불편함에 민감하고 귀 기울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사회가 바로 바뀌지 않더라도 작은 목소리를 무시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7월 6일 방영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3회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 피고인의 진술을 듣기 위해 노래까지 부르며 애쓰는 변호사들의 노력을 그린다.  ⓒENA
7월 6일 방영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3회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 피고인의 진술을 듣기 위해 노래까지 부르며 애쓰는 변호사들의 노력을 그린다. ⓒENA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상임대표가 지난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5호선 광화문역에서 지하철 승하차 시위를 하고 있다. 전장연은 내년도 본예산에 장애인 권리 예산 반영, 장애인 권리 4대 법률 제개정, 서울시의 장애인 탈시설 지원 조례 재정 등을 요구하며 2021년 12월부터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을 이어가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상임대표가 지난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5호선 광화문역에서 지하철 승하차 시위를 하고 있다. 전장연은 내년도 본예산에 장애인 권리 예산 반영, 장애인 권리 4대 법률 제개정, 서울시의 장애인 탈시설 지원 조례 재정 등을 요구하며 2021년 12월부터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을 이어가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 한국 장애인 단체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권리, 장애인 권리예산 확대 요구 시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하철 지연 등이 일어났고 장애인 혐오 여론도 커졌습니다. 단체들은 “사람들은 ‘우영우’ 드라마를 보고 ‘장애인도 함께 살아야지’라고 하지만, 현실의 장애인 시위대에게는 욕을 한다”고 꼬집었습니다.

“일본에서도 1977년 ‘가와사키 버스투쟁’이라는 대규모 장애인 이동권 시위가 있었습니다. 휠체어 탑승자가 버스 탑승을 거부당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에 항의하고자 뇌성마비 장애인 단체 푸른잔디회(全国青い芝生の会) 회원들과 지지자들이 가와사키역 버스터미널에 모여 장시간 버스를 점거했습니다. 유리창이 깨지고 핸들이 부서지기도 해 사람들이 시위대를 향해 욕하거나 버스에서 끌어 내리기도 했습니다.

제가 알기론 요즘 일본에서는 그런 큰 시위가 없지만, 장애인 이동권이 보장된 것은 아닙니다. 저상버스는 아직 충분하지 않고 전철을 타려면 직원이 승강장과 전철 사이에 발판을 깔아야 하는 경우가 많답니다. 사전 연락 없이 가면 준비가 완료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답니다. 승강장에 스크린도어가 없는 역도 많아서 너무 위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장애인이 떨어져서 사망한 적도 있습니다.

얼마 전 장애인 할인이 적용되는 택시를 탔습니다. 내릴 때 장애인 등록증을 제시했는데 갑자기 택시 기사가 귀찮은 표정으로 화를 내더라고요. “아니 왜 이제야 보여주는 거야! 할인받으려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니 탈 때 당당하게 보여줘야지.” 무서웠습니다. 아마도 “내가 장애인 따위를 위해 왜 귀찮은 일을 해야 하냐”고 하고 싶었던 걸까요. 자신이 편견을 갖고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은 약자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그 사람의 권리 행사는 비난합니다. “왜 주위에 불편을 끼치면서까지 시위하냐”는 논리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화롭게’ 살려면 조용히, 눈에 띄지 않게, 불편을 안 끼치면서, 부당한 일도 감당해야 하니까요. 그런 점에서 ‘우영우’를 좋아하면서도 전장연 시위를 비난하는 건 이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 일본에서 자폐인이 이용할 수 있는 복지 제도나 사회적 지원은?

“장애 등급에 따라 다르지만 저는 1년에 연금 약 77만엔(약 744만원)을 받습니다. 두 달에 한 번, 약 13만엔(약 126만원)씩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족 등의 도움 없이 사는 사람에겐 넉넉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 밖에는 의료비 보조, 택시 이용권(이용금액 제한 있음) 등 복지제도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장애인들에게는 이마저도 어렵습니다. 특히 연금 수급은 시간과 정신적·경제적 여유가 없으면 너무 어려워서 포기하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제출해야 하는 자료가 워낙 많고 진단서뿐 아니라 자신이 장애로 어떤 고통을 받고 있는지 자세히 작성해야 합니다. 혹은 돈을 내고 전문가에게 대리 신청을 부탁해야 합니다. ‘여성 자폐인을 위한 복지제도’는 딱히 없는 것 같습니다. 봉사단체 등에서 마련하는 당사자들 모임이 있지만 가보지 못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만 18세 이상 중증장애인 중 소득 하위 70% 수준 이하에게 장애인연금을 월 최대 30만7500원 지급하고 있다. 이 중 기초수급자 등에는 부가급여(2만~8만원)도 지급한다. 올해 장애인 거주시설 예산은 6224억원, 탈시설 예산은 24억원이다. 그러나 장애인 단체들은 장애인의 사람답게 살 권리를 보장하기엔 역부족이며, 코로나19 속 장애 인권 피해가 심각한 현실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이동권, 교육, 활동지원서비스 등을 충분히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 편집자주) 

지난 7월 말 종영한 일본 도카이 TV·후지 TV 계열 드라마 ‘나의 사랑하는 아내!’(僕の大好きな妻!) 스틸컷.  발달장애인 아내와 비장애인 남편이 함께 사는 모습을 따뜻하게 그린 드라마. ⓒ도카이 TV 웹사이트 캡처
지난 7월 말 종영한 일본 도카이 TV·후지 TV 계열 드라마 ‘나의 사랑하는 아내!’(僕の大好きな妻!) 스틸컷. 발달장애인 아내와 비장애인 남편이 함께 사는 모습을 따뜻하게 그린 드라마. ⓒ도카이 TV 웹사이트 캡처
2018년 방영된 일본 NHK 드라마 ‘투명한 요람’(透明なゆりかご)은 장애 여성이 산부인과에서 일하며 보고 겪은 일들을 생생하게 다뤄 화제에 올랐다.  ⓒNHK 웹사이트 캡처
2018년 방영된 일본 NHK 드라마 ‘투명한 요람’(透明なゆりかご)은 장애 여성이 산부인과에서 일하며 보고 겪은 일들을 생생하게 다뤄 화제에 올랐다. ⓒNHK 웹사이트 캡처

- 일본에서도 발달장애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TV 드라마가 최근 방영된 적 있나요?

최근 ‘나의 사랑하는 아내!’(僕の大好きな妻!, 발달장애인 아내와 비장애인 남편이 함께 사는 모습을 따뜻하게 그린 도카이 TV·후지 TV 계열 드라마로 지난 7월 말 종영 - 편집자주)라는 드라마가 공중파 방영됐습니다. 당사자의 이야기에 기초한 만화가 원작이지만 비혼인 저는 거리감을 느껴서 못 봤습니다.

2018년 드라마 ‘투명한 요람’(透明なゆりかご)이 NHK에서 방영됐습니다. 학습장애(LD), ADHD, 아스퍼거증후군 진단을 받은 오키타 밧가(沖田×華) 작가가 산부인과 아르바이트 경험을 토대로 그린 만화가 원작입니다. ASD 진단을 받기 전이었지만, 주변인들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아이들과 여성들의 삶, 자기 자신, 가족에 대해 고민하며 열심히 사는 여고생의 모습에 몰입해서 본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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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구 2022-08-08 12:37:52
우영우 신드롬을 보며 문득 디워 사태가 떠올랐다. 물론 두 사안의 성질은 다소 다르다. 디워 사태의 본질은 순도 100% 국뽕이었다. 우영우 신드롬은 어떤 뽕이라기 보다 '장애를 가진 캐릭터를 귀여움으로 소비하는 나 자신에 대한 철저한 방어기제'에 가깝다. 우영우에 대한 비판 중 하나가 장애의 모에화(우영우 인사법이나 말투를 따라하는 사람들이 그 증거다.)에 대한 비판이다. 장애를 가진 주인공의 '귀여움'이 불필요하게 부각될 수록 실제 현실의 '귀엽지 않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심화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애의 대상화에 대한 비판인 셈이다. 디워 사태와 달리 우영우 신드롬은 적극적인 공격성보다 자기 방어적인 예민성을 보인다. 드라마는 드라마로 좀 보라고? 비판은 비판으로 좀 듣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