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유창선 시사평론가
『나를 찾는 시간』 출간

유창선 시사평론가  ©여성신문
유창선 시사평론가 ©여성신문

가장 치열한 정치 한복판에서 인생의 절반을 시사평론가로 살았다. 1990년대에 시사평론을 시작해 올해로 30년 가량 시사 이슈를 비평하는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몇 년 전부터 정치와 거리두기 중”이라고 했다. ‘노무현 바람’이 불었던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국민경선 당시 언론사 인터넷 생중계 해설위원으로 활약하며 ‘스타’로 종횡무진 활약했던 그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는 마이크를 뺏기는 설움을 겪었다. 하지만 범람하는 시사평론가들 사이에서도 그의 존재감은 여전하다. 진영논리에 갇히지 않는 균형 잡힌 시각은 그가 가진 강력한 무기였다. 정치 이슈 중심에서 살아온 그가 정치와 거리두기 중이라니 의아했다.

“제 삶은 수술 이전과 이후로 갈리는 것 같아요. 생사의 고비를 넘어선 뒤 세상을 보는 눈, 인간을 보는 눈, 제 자신을 보는 눈이 크게 달라졌다고 느끼곤 해요. 50대까지만 해도 정념이 넘치는 뜨거운 삶을 살았지만 지금은 많은 것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의 평온함, 고즈넉함이 가능해졌어요. 세상일에 대해서도 그전처럼 흥분하거나 놀라지도 않고요.”

그는 2019년 초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종양은 소뇌와 숨골(연수) 사이에 있었다. 중추신경 12개가 지나는 곳이어서 잘못 건드리면 사망할 수도 있는 위험한 수술이었다. 다행히 서울대병원에서 받은 수술이 잘 끝났으나 꼬박 8개월을 병상에서 지내야 했다. 식도가 열리지 않아 음식물을 삼킬 수 없었고 신경 손상으로 혀 근육이 마비돼 발음이 어눌해졌다. 기립성 저혈압까지 생겨 실신까지 했다. 누워서 지낼 수 밖는 나날을 보내면서도 그는 “마음은 평온을 잃지 않았다”고 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홍수형 기자
유창선 시사평론가 ⓒ홍수형 기자

“수술 전에도, 수술을 받고 폐허가 된 몸으로 재활을 할 때도, 불안하지 않았어요. 물론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평온했어요. 희한했어요. 무엇보다 저를 살리려고 애를 쓴 아내와 딸들의 사랑이 가장 큰 힘이 됐죠.”

뇌종양이라는 반갑지 않은 손님은 치열하게 살아온 그의 인생을 ‘고즈넉함’으로 바꿔놓았다. 지금도 몸의 상태에 따라 혈압이 떨어질 때가 있어 조심해야 하고, 말을 많이 하면 숨을 고르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는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 평온하고 고즈넉하다고 표현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최근 『나를 찾는 시간』이라는 에세이집에 펴냈다. 죽음의 문턱을 넘어 두 번째 삶을 살게 되면서 얻은 인생에 대한 사유를 기록한 책이다. 진영의 시대 속에서도 경계인의 삶을 살기 위해 기울였던 눈물겨운 노력들, 투병의 시간을 거치면서 달라진 세상과 인간에 대한 시선, 세상에서 한발 물러서고 나니 고즈넉하고 평온한 삶이 열리더라는 경험, 그러니 동네 아저씨가 되어 나이 들어가는 것이 생각만큼 나쁘지 않더라는 얘기들이 240쪽 분량에 담겼다. 

『나를 찾는 시간』 유창선 지음, 새빛 펴냄
『나를 찾는 시간』 유창선 지음, 새빛 펴냄

책을 통해 극한의 상황을 이겨낸 사람이 갖게 된 긍정적이고 평온한 마음의 행복을 읽게 된다. 아직도 여러 후유증들로 몸의 불편함을 겪고 있지만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잔잔한 감동을 준다.

그는 “나를 찾는데 있어서 큰 터닝 포인트는 정치로부터 거리 두기”라며 “나이를 든다는 것이 생각만큼 슬프지 않다”고 했다.

“나이 육십이 넘으면 인생 끝났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데 요즘 사는 게 새록새록 새로운 느낌이 들어요. 몸은 여기저기 불편하죠. 거기에만 집착하면 우울해질 수도 있고요. 저는 제게 주어진 두 번째 삶을 통해 건강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기쁨을 느낍니다.  몇 달전에 새로 가입한 트레일런 모임에서가장 ‘올드’한 멤버지만 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만해져요. 동네 아저씨의 삶도 참 행복합니다. 다시 살고 있는 느낌이에요.”

최근 가장 큰 관심사는 런닝복이다. 정치 뉴스보다 3부 쇼츠 쇼핑이 더 즐겁다고도 했다. 두 달 전 시작한 달리기 이야기를 꺼내며 두 눈을 반짝이는 그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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