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혁의 북유럽 이야기] 도어스테핑을 초월하는 장치
[최연혁의 북유럽 이야기] 도어스테핑을 초월하는 장치
  •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과 교수
  • 승인 2022.08.14 09:00
  • 수정 2022-08-16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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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2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2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스웨덴 외교부가 주최한 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다. 외교부 청사는 왕궁과 왕립오페라 건물과 마주보고 있고, 모퉁이를 돌아 국회 쪽으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총리공관과 붙어 있다. 저녁 6시쯤 되어 끝난 행사 뒤 무심코 공관을 지나 국회 쪽으로 걸어 걸어가고 있는데, 반대편에서 두 명의 경호원만 대동하고 공관으로 퇴근하는 총리를 바로 옆으로 지나치게 되었다.

순간 경호원이 한 번 힐끗 쳐다보며 지나갔지만 특별한 제재를 가하지 않아 총리와 옷깃을 스치며 목례로 인사를 건네니 웃음으로 답한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저녁 스톡홀름 도로에서 총격을 당해 사망한 팔메 총리가 생각났다. 그리고 스톡홀름 도심 백화점에서 친구와 쇼핑하다가 피격당해 사망한 외교장관 안나 린드가 함께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이렇게 누구든 가깝게 접근할 수 있어 위험에 노출될 수 있을 텐데, 왜 이렇게 국민과의 거리를 좁히려고 하는 것일까? 전철을 타고 집으로 향하면서 내내 이 생각이 머리에 자리 잡고 있었다.

총리는 사실 매일 아침과 저녁 출퇴근 길에서 국민과 만난다. 총리 공관을 나와 천천히 걸어서 2분 정도 거리에 있는 총리 집무실 앞에는 종종 기자들이 입구에서 기다리고 서 있다가 질문을 하는 경우가 있다. 간단한 TV 인터뷰도 진행하기도 한다. 도어스테핑(약식 회견)을 출근하면서 한번, 퇴근하면서 한번 이렇게 하루에 두 번이나 하는 셈이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집무실에서 국회까지 대정부 질문 등의 국회토론을 위해 참석할 때는 총리 집무실에서 2분 거리에 있는 국회 건물까지 걸어서 간다. 이 때도 일반 국민들과 목례와 눈인사를 쉽게 주고 받을 수 있다. 총리만 걸어서 국회에 참석하는 것이 아니다. 정부의 전 부처가 100~500m 반경 내에 위치하고 있어 모든 장관들이 국회까지 관통하는 드로트닝로를 걸어서  국회로 들어간다. 도로는 자연스럽게 국민과 소통의 장이 된다.

매년 추경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할 때는 전통적으로 재무장관이 예산안을 들고 장관집무실에서 국회까지 400m 거리를 활보를 한다. 매년 재무장관은 몇천 쪽에 달하는 예산안을 파란색 끈으로 묶어 들고 가기 때문에 예산제출산책(budgetpromenad)이라는 대명사가 붙어 있다. 재무장관 주위에는 기자들이 따라 가면서 인터뷰를 하거나 사진을 찍고, 일반 국민들도 주위에서 서서 광경을 눈에 담기 위해 모여들기 때문에 장관실부터 국회건물까지 이어지는 드로트닝로는 엄청난 인파로 붐빈다. 새 해의 예산안이 국민적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순간이다. 이렇듯 정부정책을 알리기 위한 노력이 돗보인다.

스웨덴의 정치는 이렇듯 총리 및 장관 집무실, 의사당에서 뿐 아니라 도로까지 연장되어 있는듯 하다. 도로가 정치인들이 국민들과 만나고 소통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 셈이다. 노상에서 장관과 토론을 맘껏 할 수 있는 또 다른 곳이 알메달렌 정치박람회다. 매년 7월 초에 치러지는 정치토론 행사장소인 알메달렌에서는 거리에서 총리, 장관, 당대표, 국회의원 들을 반경500-600미터의 도로에서 모두 만날 수 있다. 알메달렌의 카페와 식당 정원, 골목 한 구석, 공원, 주차장을 개조한 열린 공간에서 모두 국민과 정치인들이 스치고 지나가며 인사하거나 접근해 질문을 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중요한 정치적 사안이 발생하면 그 날 저녁 황금 시간대에 방영되는 뉴스시간에는 여지없이 해당 장관과 야당정책대변인 들이 나와 열띤 논쟁을 벌인다. 모든 야당들이 정부의 각 정책부처를 담당하는 정책대변인을 임명해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토론은 선거 때의 토론만큼이나 진지하고 열기를 띤다. 영국이 가지고 있는 쉐도우 케비닛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는 않지만 정책대변인제도를 통해 국민들이 정치인들의 설득의 논리를 해부하고 파헤치면서 정치적 식견을 넓혀갈 수 있도록 질적인 토론을 제공한다. 여기서는 정치인의 정책설명 능력이 핵심적 관건이다.

여름휴가 후 정치의 휴지기를 끝내는 8월 첫 주에는 모든 정당대표들이 매년 여름연설(sommartal)을 발표한다. 가을 회기로 시작되는 한 해의 정치출정식에서 국민들에게 각 당이 앞으로 1년 동안 중요하게 다룰 정책의 방향성을 제시하기 위해 일반시민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공원이나 광장, 혹은 페리선착장 등을 택해서 진행한다. 지지자 뿐 아니라 생각을 달리하는 유권자까지 마음을 얻으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

대통령이 처음 시도하는 도어스테핑은 그동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이라 국민적 관심과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그동안 멀고도 먼 국민과 대통령과의 거리가 조금 더 가까워진 듯 해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물리적 거리는 좁혔지만 진정한 공정과 상식을 원하던 민심과의 거리는 더 멀어진 듯 하다. 왜 그럴까? 전 정권을 거론하며 비교우위를 이야기 하기 보다 이전 정치의 모습과 완전한 절연하고 결별하는 결연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찍지 않았던 국민까지 5년 후에 이렇게 달라져 있을 것이라는 비전을 보여주는 정책의 제시와 제도의 개혁, 그리고 설득의 노력이 간절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 정치학과 교수 ⓒ여성신문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 정치학과 교수 ⓒ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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