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우리말 쓰기] ⑫ ‘역대급 폭우’ ‘필사의 탈출’… 재난보도와 보도재난
[쉬운 우리말 쓰기] ⑫ ‘역대급 폭우’ ‘필사의 탈출’… 재난보도와 보도재난
  • 곽민정 방송사 보도본부 어문위원
  • 승인 2022.08.19 09:00
  • 수정 2022-08-19 1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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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우리말 쓰기] ⑫ 재난과 보도
서울과 경기 북부 등 수도권에 폭우가 내린 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일대 도로가 침수돼 차량이 잠겨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서울과 경기 북부 등 수도권에 폭우가 내린 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일대 도로가 침수돼 차량이 잠겨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요즘처럼 주변에 ‘안녕’을 수시로 물었던 때가 없었습니다. 누구를 만나든, 얼마 만에 만나든 서로가 안녕을 묻는 일이 일상이 되었지요. ‘코로나가 다시 유행인데, 별일 없으시죠?’ ‘폭염에 건강은 어떠세요?’ ‘폭우 피해는 없으세요?’라고 묻고 또 묻게 됩니다. 코로나만 극복하면 될 줄 알았던 우리 삶 속 재난은 극복은커녕 재난이 재난을 몰고 온 모습입니다. 6월에 때아닌 폭염이 찾아오더니 8월 들어서는 폭우가 시작되었습니다. 물기를 한껏 머금은 구름이 동서로 길게 뻗은 형태로 한반도를 오르내리며 비를 퍼부었지요. 순식간에 내린 엄청난 비로 곳곳이 강이 되고 계곡이 되었습니다. 어떤 이는 물살을 가르며 펠프스처럼 즐겼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걱정해야만 했고, 가족과 보금자리를 잃은 이들은 그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지요.

재난보도 시 언어 사용 지침

재난의 상황에서 국민은 어쩌면 각자의 삶을 스스로 지켜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국가가 여러 제도로 안전망을 제공하지만 순간순간 선택은 각자의 몫이니까요. 물이 차오르는 집에서 나가야 할지, 물을 퍼내야 할지 선택하는 건 오롯이 본인이 해야 합니다. 그런 생사를 가를 수 있는 선택의 상황에서 국민이 전적으로 의지하는 게 있다면 바로 언론 보도입니다. 뉴스를 챙겨 보며 재난 상황을 점검하고, 나와 내 가족에게 영향을 줄 만한 사안이 있는지, 그리고 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 확인해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지요. 그렇기에 재난 때 언론의 역할은 더욱 막중해집니다. 재난과 관련된 정보를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국민에게 정확하고 신속하게 전해야 하지요. 아무리 신속히 정보를 전달한다 해도 국민이 이해할 수 없다면 무용지물이 되므로 재난보도에서의 ‘언어’는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감정 배제한 쉬운 언어로

국립국어원 공공언어과는 2015년 재난 보도와 관련해 언어 사용 지침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감염병 보도준칙처럼 이해하기 쉬운 언어 사용을 권고하면서도, 과장되고 자극적인 표현과 뉴스 전달자의 개인적인 감정이 드러나는 것을 금지했지요. 과장된 표현은 뉴스를 접하는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어 재난 상황에 이성적으로 대응하기 어렵게 만들고, 개인적인 감정 표현에 쉽게 동요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재난의 상황은 같아도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에 따라 사회에 혼란과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정부와 언론은 재난 때 더더욱 정제된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뜻이겠지요.

이번에 폭우 피해를 전한 언론 보도를 살펴보면 지침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102년 만의 역대급 폭우’라든지 ‘폭우 피해 눈덩이’ ‘이재민들 망연자실’ ‘피해 복구 막막’ ‘필사의 탈출’ ‘비 안 와서 다행’ ‘더딘 복구작업’처럼 과장된 표현이나 전달자의 감정이 들어간 내용이 다수였지요. ‘102년 만의 최대 강수량, 강수량 ~mm, 폭우 피해액 ~원, 피해 복구율 ~%, 이웃 도움으로 탈출, 비 그쳐’ 등 과장된 표현을 삼가고 감정을 배제한 언어로 써야 했습니다.

싱크홀과 포트홀

쉬운 우리말 대신 낯선 영어를 사용한 것도 여전히 문제였지요. 대표적인 게 싱크홀과 포트홀이었는데요, 각각 땅꺼짐(싱크홀)과 도로파임(포트홀)이라는 쉬운 우리말이 있는데도 영어를 그대로 썼습니다. 언론에 따라 괄호 안에 우리말을 함께 쓴 경우도 있지만, 포트홀을 쓰곤 땅꺼짐이라고 잘못 설명하는 실수도 보이더군요. 그나마 싱크홀은 최근 언론에서 자주 언급되어 상대적으로 덜 낯선데요, 포트홀은 그렇지 않지요. 언론들은 포트홀을 ‘도로 위 지뢰’로 표현하며 그 위험성을 알렸지만, 정작 국민의 몇 퍼센트가 이해했을지 모르겠습니다. 뉴스를 살펴보면 포트홀로 인해 차량 파손이나 사고가 곳곳에서 발생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포트홀 대신 우리말인 도로파임을 사용해 위험을 알렸다면 국민 안전에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공공언어에 관한 글에서 ‘언어는 인권이며, 생명과 안전’이라는 글귀를 보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감염병과 경제난, 폭염과 폭우 등 어려움이 중첩된 때에 정부와 언론이 사용한 어려운 언어 때문에 국민이 정보에서 소외되고 재난을 피하지 못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곽민정 방송사 보도본부 어문위원<br>
곽민정 방송사 보도본부 어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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