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우리말 쓰기] ⑬ 심심한 사과와 디지털 문해력
[쉬운 우리말 쓰기] ⑬ 심심한 사과와 디지털 문해력
  • 곽민정 방송사 보도본부 어문위원
  • 승인 2022.08.25 09:11
  • 수정 2022-08-26 12: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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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동상. @Pixability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Pixability

최근 온라인과 언론에서 ‘심심한 사과’로 떠들썩했지요? 지난 20일 유명 웹툰 작가의 사인회를 열기로 한 카페에서 예약에 오류가 있었다며 “심심한 사과”라는 표현으로 사과문을 올렸는데요, 이 글을 본 일부 누리꾼이 심심한을 ‘지루한’으로 이해하곤 ‘심심해서 사과한다는 뜻임?’ ‘난 하나도 안 심심해’와 같은 댓글을 달면서 논란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사과문에 쓰인 심심하다는 ‘정도가 지나치다(甚)’와 ‘깊다(深)’로 이뤄진 말로 해당 카페는 마음 깊이 죄송하다는 뜻을 전한 것이었습니다. 이 일로 온라인과 언론에서는 갑론을박이 이어졌고, 문해율(문해력)이 또다시 제기되었습니다.

읽어도 뜻 이해 못 하는 ‘실질 문맹’

우리 국민의 낮은 문해력은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 글을 읽어도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실질 문맹률이 75%에 달한다고 하지요. 3일이라는 뜻의 ‘사흘’을 4일로, 오늘이라는 뜻의 ‘금일’을 금요일로, 이기고 지는 운수라는 뜻인 ‘무운’을 운이 없다는 뜻으로 잘못 이해해 벌어진 일화들은 낮은 문해력의 예로 자주 거론됩니다. 이번에도 언론은 ‘심심한 사과’를 보도하며 문해력과 문해율을 지적하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관련 발언을 해 더욱 눈길을 끌었는데요, 저는 한 부분에서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언론과 대통령이 해결 방안으로 ‘디지털 문해력(Digital Literacy)’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느닷없이 언급된 디지털 문해력이란 말에 갑자기 머릿속이 뒤죽박죽 복잡해졌습니다. ‘디지털 문해력’과 문장을 이해하는 능력인 ‘문해력’이 같은 것일까요?

‘디지털 기기와 정보 사용능력’ 그리고 ‘문장 이해력’

지난해 연합뉴스는 ‘문해력 리포트’를 연재했는데요, 한 기사에서 디지털 문해력의 정의 2가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디지털 기술을 언제 어떻게 사용할지 아는 능력”과 “디지털 정보에 대한 탐색·평가·창조·소통 능력”인데요, 두 의견을 종합해 “디지털 기술과 도구 사용 능력, 뉴스 등 미디어 콘텐츠에 대한 이해력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더군요. 설명이 어려운데요, 간단히 말하면 ‘디지털 기기와 정보 사용능력’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몇몇 지자체와 기관이 운영하는 디지털 문해교육을 보면 이해하기 쉬운데요, 서울 관악구에서는 ‘어르신 디지털 문해교육’이라는 교육명 아래 무인 안내기(키오스크) 사용법 익히기, 메신저 앱 사용법 등 스마트폰 활용법 익히기를 교육했더군요. 디지털 ‘문해’라는 것이 문장을 이해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디지털 문해력(Digital Literacy)이란 용어는 상당 기간 사용돼 왔음에도 아직 다듬은 말이 없습니다. 리터러시를 문해력으로 해석해 쓰는 정도에 머물러 있지요. 다만 국립국어원에서 미디어 리터러시와 콘텐츠 리터러시를 각각 ‘매체 이해력’ ‘콘텐츠 이해력’으로 다듬은 데 착안해 디지털 리터러시를 ‘디지털 이해력’으로 써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다소 추상적이고 ‘사용’한다는 의미가 없어 아쉬운 감이 있지요. 따라서 ’디지털 기기와 정보 사용능력’ 정도로 풀어 쓰면 어떨까 싶습니다. 덧붙여 일반 문해력도 ‘문장 이해력’으로 쓴다면 더는 디지털 문해력과 헷갈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심심한 사과’가 공공언어에 주는 시사점

‘심심한 사과’가 또다시 촉발한 문해력 논란은 공공언어에 작지 않은 시사점을 줍니다. 알권리뿐만 아니라 건강‧재산‧교육 등 국민 생활 전반에 영향을 주는 정보가 언어로 전달된다는 점 때문이지요. 문해력의 높고 낮음이 공공언어를 이해하는 데 절대적인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문해력을 높이기 위한 방책을 한쪽에선 찾아야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정보를 이해하지 못해 피해를 보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다른 한쪽에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기에 쉬운 공공언어는 더 강조될 수밖에 없습니다. 국민에게 필요한 정보를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쉬운 공공언어가 자리잡기를 바랍니다.

또 여담입니다만, 4차 산업혁명과 메타버스 시대가 도래한 만큼 ‘디지털 문해력’ 향상이 무엇보다 중요하겠지만 ‘심심한 사과’를 이해하기 위해선 문장 이해력(문해력)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디지털 문해력과 함께 문장 이해력을 높일 방안을 함께 고민해주시기 바랍니다.

곽민정 방송사 보도본부 어문위원<br>
곽민정 방송사 보도본부 어문위원<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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