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뜨개 전문기업 ‘바늘이야기’ 이끄는 모녀 송영예 대표·김대리
31살에 창업, 손뜨개 시장 개척한 엄마
23살에 유튜브로 20대 고객 잡은 딸
제작 도안 판매·교육영상 제작 등
실 판매 넘어 콘텐츠 기업으로 진화

바늘이야기 송영예 대표와 마케팅 담당 김대리 ⓒ홍수형 기자
바늘이야기 송영예 대표와 마케팅 담당 김대리 ⓒ홍수형 기자

“원래 채널이름이 ‘송영예의 바늘이야기’였는데 지금은 ‘바늘이야기 김대리’로 바꿨습니다. 엄마가 잘 키워서 물려준 유튜브 채널을 더 크게 키워나갈 예정입니다.”

2018년 10월 ‘김대리(유튜버 명)’는 유튜브 채널 ‘바늘이야기 김대리’에 자기 소개 영상을 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당시 구독자 5000명이던 채널은 4년 만에 구독자 26만이 넘는 인기 채널로 성장했다. 김대리는 뜨개질 전문기업 ‘바늘이야기’ 송영예 대표의 둘째 딸이자 이 회사에서 마케팅 담당 ‘대리’로 일하는 직원 김보겸씨다. 이화여대 경영학과를 다니던 그에게 송 대표가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관리를 해보라고 권했고, 김대리는 덥썩 일을 맡았다. 5년째 영상 기획부터 촬영, 편집, 모델까지 1인 다역을 해내고 있다. 그 덕에 회사 매출은 매년 두 자리씩 쑥쑥 올랐다.

“어릴적부터 일하는 엄마가 너무 멋있었어요. 학교에서 롤 모델을 적으라고 하면 저는 늘 엄마를 적었을 정도로요. 그래도 엄마 회사에 들어갈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내 이름을 걸고 창업을 하고 키워보겠다고 했죠. 학교 앞에서 주먹밥도 팔아봤어요. 스타트업에 들어가 일도 해봤죠. 맨땅에 헤딩을 해보니 알겠더라고요. 시작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래서 SNS 운영을 해보라는 권유를 냉큼 받았죠. 이미 잘 차려진 밥상에서 뛰어노니까 금방 성과가 나왔어요. 저희가 하는 만큼 성과가 나오니 몸은 힘들어도 그만큼 보람도 컸죠.” 

유튜브 채널 ‘바늘이야기 김대리’
유튜브 채널 ‘바늘이야기 김대리’ 캡쳐.

MZ 눈높이 맞춘 도안·영상 인기

엄마가 20년 동안 닦아놓은 길을 뒤따라 걷는 딸은 엄마를 선배 경영인으로서 더욱 존경하게 됐다고 했다. 곁에서 김대리를 지켜보는 송 대표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김대리가 손재주가 좋은 편이었지만 가업을 잇게 할 생각은 없었어요. 회사를 크게 키울 생각 없이 소소하게 좋아하는 사람과 손뜨개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었어요.

송 대표는 ‘손뜨개의 여왕’으로 불린다. 1992년 첫 아이를 임신하고 태교를 위해 취미로 시작한 손뜨개는 6년 만에 책 출간과 창업으로 이어졌다. 유럽에서 직수입한 실 등 부자재를 중간 유통과정 없이 직접 공급해 품질과 가격경쟁력을 확보했다. 완성품이 아닌 DIY(Do It Yourself·직접제작) 방식으로 실과 도안을 묶어 패키지로 온라인 판매했다. 사업은 승승장구했다. 24년 전 화장실 옆 창고에서 창업자금 100만원으로 시작한 회사가 지금은 파주 본사와 5층 규모의 서울 연희동 뜨개 전문 복합공간을 운영하는 업계 1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30년 가까이 바늘이야기를 이끌며 손뜨개 한우물을 판 송 대표는 회사를 국내 뜨개질 시장의 대표 업체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세월은 흐르고 시장은 빠르게 변화했다. 송 대표도 온라인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PC통신 시대에 손뜨개 커뮤니티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온라인 쇼핑몰을 열었다. 하지만 빠른 변화를 따라가기란 쉽지 않았다.

“PC통신 1세대라 온라인에 익숙하지만 불과 몇 년 사이에 경쟁사들이 많아졌어요.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으로 마케팅을 하는게 대세였지만 제가 따라가기에는 한계가 느껴졌어요. 김대리에게 딱맞는 일이라고 느껴졌어요. 그래서 믿고 맡겼죠.”

과거 손뜨개가 중년 여성들의 취미로만 여겨지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은 아니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위치한 뜨개 전문 복합문화공간은 20대 여성들로 붐볐다. 실제로 최근 5년새 바늘이야기를 찾는 20대 고객은 크게 늘었다. 뜨개는 코로나19를 지나며 젊은 층의 여가로 자리잡고 있다. 20대 여성을 손뜨개로 이끈 이들 중 맨 앞줄에 김대리가 있다. 김대리는 심플한 디자인, 초보자도 따라 하기 쉬운 도안과 영상 강의로 젊은 층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2020년 1월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한 ‘패션아란 한볼로 스웨터 뜨기’ 영상은 조회수 264만을 넘겼다. 전문가만 할 수 있는 화려한 프릴 대신 심플한 스웨터, 평소에 들고 다닐 수 있는 세련된 네트백, 요즘 패션 트렌드인 뷔스티에와 바라클라라까지. 김대리가

“기존 손뜨개 시장은 점점 어려워지고 복잡해지는 것이 주류였어요. 실력이 필요한 뜨개 영상을 초보자가 클릭하진 않잖아요. 초보자 진입 장벽이 높았죠. 그래서 저는 쉬운 것을 하자고 디자이너들을 설득했어요. 정말 영상만 보고도 따라할 수 있는 쉬운 것 위주로 하다보니 뜨개를 시작하려는 20대들이 좋아했어요. 운도 좋았죠. 처음에 2년만 인턴처럼 해보면서 경험을 쌓고 취업준비를 하려고 했는데 막상 들어와서 일을 해보니 못나가겠는 거에요. 반응이 바로 오니까 너무 재밌었어요.” 

가업 잇는 20대 여성의 새로운 도전

바늘이야기 송영예 대표, 김대리 ⓒ홍수형 기자
바늘이야기 송영예 대표, 김대리 ⓒ홍수형 기자

김대리는 입사 이후 3년간 앞만 보고 달렸다. 유튜브 조회수가 수십 만을 넘고 매출도 눈에 띄게 늘어나자 신이 났다고 했다. 뜨개 영상뿐 아니라 출장 영상과 Q&A 영상을 통해 구독자들과 친밀감도 쌓았다. 구독자 20만을 넘기고 회사가 성장하면서 수순처럼 ‘말’들이 뒤따르기 시작했다. 실수를 트집 잡아 비난하는 이들이 있었고 악성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김대리는 다른 직원들과는 달리 자신의 일상을 영상으로 그대로 노출하다보니 친밀함을 느끼며 응원하는 구독자도 늘었지만 원하는 만큼의 피드백이 없을 경우 실망감을 드러내며 구독을 취소하는 이도 있었다.

“한두 번 비슷한 일을 겪어보니 지치고 힘이 들었어요. 저도 사람이다 보니 사람들의 반응에 신경쓰게 되고 힘겨울 때가 있더라고요. 저는 이제 막 시작했는데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엄마는 이런 일을 어떻게 20년 넘게 끌고 왔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심리상담을 받기도 했어요. 그때 엄마가 큰 지지가 됐어요. 엄마에게는 힘든 얘기를 잘 안하려고 해요. 고통은 나누면 더 커지는 것 같아서. 그래도 용기 내 엄마에게 얘기를 꺼내니 엄마도 사업을 하면서 비슷한 일을 겪으셨더라고요. 제가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에 힘이 됐어요. 저도 이런 일을 겪으며 단단해지고 있는 과정인 것 같아요.”

내년 창업 25년을 맞는 바늘이야기는 또 한번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뜨개 전문기업을 넘어 “재고 없는 컨텐츠 기업을 만드는게 꿈”이라고 김대리는 말했다. 자체 제작 도안, 뜨개 교육 영상이라는 컨텐츠로 승부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이미 그 첫 단계로 직접 코딩을 배워 온라인 쇼핑몰에서 도안 파일 판매를 시작했다. 처음에 딸의 계획을 믿지 못했던 송 대표도 “그동안 실을 팔기 위해 도안을 서비스로 줬는데 도안만 사려는 고객들이 많다는 것을 확인하고 놀랐다”고 했다.

“실 제품은 비슷한 게 많고 대체품도 넘쳐요. 그럼 저희는 경쟁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어요. 우리만 할 수 있는 것을 해나갈 생각이에요. 올해 목표는 강연 동영상 판매입니다. 수년간 해온 학원 수업을 온라인화 해서 컨텐츠로 판매할 계획입니다.”

성장하는 김대리를 지켜보는 송 대표는 이제는 철부지 어린 딸이 아닌 동료이자 후배로서 바라보게 됐다고 했다. “바늘이야기에 없어서는 안 되는 직원이에요.” 이 한마디에 가업을 잇는 김대리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함께 신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20대 여성으로 ‘북적’ 뜨개 복합문화공간
- 바늘이야기 연희점 

바늘이야기 연희점 ⓒ바늘이야기
바늘이야기 연희점 ⓒ바늘이야기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주택가 안쪽에 자리잡은 바늘이야기 연희점은 5층 규모의 뜨개 전문 복합문화공간이다. 1층은 손뜨개에 필요한 다양한 털실과 바늘 등 재료를 판매한다. 손뜨개는 더이상 엄마의 취미나 어린시절 향수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1층은 재료를 구매하려는 20대 여성들로 북적였다. 유럽에서 직수입한 다양한 부자재가 진열돼 있어 직접 색과 질감을 살펴보고 구입할 수 있다. 한켠에는 유튜브 채널 ‘바늘이야기 김대리’를 보고 온 소비자들을 위한 코너도 마련돼 있다. 조회수 264만을 자랑하는 ‘대왕털실 한볼로 스웨터 뜨기 도전’ 영상 속 그 스웨터를 전시하고 도안과 실을 패키지로 판매하고 있다.

연희점 2층은 차와 커피를 마시며 뜨개질할 수 있는 카페이고, 3층은 손뜨개 수업이 열리는 손뜨개 전문 아카데미다. 4~5층은 영상을 촬영하는 스튜디오와 사무실이 자리하고 있다. 한 건물에서 손뜨개 재료를 구매하고 뜨개를 배우며 뜨개 방법을 나누는 손뜨개 사랑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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