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제치고 한국 온 프리즈
공동개최로 힘 실린 키아프 서울
홍라희 등 미술계 큰손들 발길 이어져
박서보 등 작가들도 직접 현장 찾아
‘미술관보다 낫다’ 입소문에 관람객 몰려
첫날부터 수백억대 매출....총 1조원 가능성도
해외 관계자들 “젊은 컬렉터들 열기에 놀라...
서울은 ‘다음 세대의 홍콩’”

9월 2일~6일까지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키아프 서울’ 현장. ⓒ키아프 서울 조직위원회 제공
9월 2일~6일까지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키아프 서울’ 현장. ⓒ키아프 서울 조직위원회 제공
프리즈(Frieze) 서울 VIP 오픈일인 지난 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행사장 내 미국 애콰벨라 갤러리 부스에서 관람객들이 파블로 피카소의 1937년작 ‘방울이 달린 빨간 베레모 여인(Femme au beret rouge a pompon)’, 피에트 몬드리안의 1927년작 ‘구성 No. II, 노란색, 빨간색, 파란색 (Composition : No. II, With Red, Blue and Yellow)’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이세아 기자
프리즈(Frieze) 서울 VIP 오픈일인 지난 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행사장 내 미국 애콰벨라 갤러리 부스에서 관람객들이 파블로 피카소의 1937년작 ‘방울이 달린 빨간 베레모 여인(Femme au beret rouge a pompon)’, 피에트 몬드리안의 1927년작 ‘구성 No. II, 노란색, 빨간색, 파란색 (Composition : No. II, With Red, Blue and Yellow)’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이세아 기자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 최대 규모 국제 아트페어가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세계 3대 아트페어로 불리는 ‘프리즈’(Frieze)가 2일~5일, 한국화랑협회가 여는 국내 최대 아트페어 ‘키아프’(KIAF)가 2일~6일까지 강남구 코엑스에서 공동 개최됐다. 두 행사를 합쳐 국내외 갤러리 200여 곳이 참가해 어느 때보다도 풍성한 미술 장터를 열었다.

근현대 미술사 거장들의 작품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드문 기회였다.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 피에트 몬드리안, 호안 미로 등 서양 미술사의 거인들부터 키스 해링, 앤디 워홀, 장 미셸 바스키아, 게르하르트 리히터, 데이비드 호크니, 데미안 허스트, 쿠사마 야요이, 백남준 등 현대미술 거장들, 김환기, 김창열, 박서보, 이우환, 이건용, 이배 등 한국의 추상화 거장들, 이불, 양혜규, 시오타 치하루 등 세계가 주목한 아시아 여성 현대미술가들의 작품도 만날 수 있었다.

행사 전부터 ‘미술관을 도는 것보다 프리즈·키아프 서울에 가는 게 더 낫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한국화랑협회에 따르면 키아프 서울 실제 방문객(누적 방문 제외)은 7만 명을 넘었다. 프리즈 서울도 행사 기간 7만 명 이상이 방문했다고 한다. 하나의 티켓으로 두 행사를 모두 입장할 수 있어 미술 애호가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다만 ‘프리즈 쏠림 현상’은 뚜렷했다. 주말엔 3층 프리즈 서울 행사장 앞 현장 예매·입장 대기줄이 길게 늘어섰다. 관람객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4일과 5일 오후에는 티켓 현장 발매를 일시 중단하기도 했다.

9월 2일~6일까지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키아프 서울’ 현장. 관람객들이 길게 입장 대기줄을 서고 있다. ⓒ키아프 서울 조직위원회 제공
9월 2일~6일까지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키아프 서울’ 현장. 관람객들이 길게 입장 대기줄을 서고 있다. ⓒ키아프 서울 조직위원회 제공

VIP들도 대거 방문했다.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이서현 리움미술관 운영위원장, 신동빈 롯데 회장, 이웅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윤영달 크라운해태 회장, 서정진 셀트리온 명예회장, 최윤정 파라다이스문화재단 이사장 등 재계의 ‘큰손’들이 다녀갔다. BTS 멤버 RM, 뷔, 전지현, 이정재, 정우성, 박해일, 원빈, 이나영, 김태희, 비, 소지섭, 신애라, 전인화, 유아인, 박해수, 태양, 한효주 등 연예인들도 다수 참석했다.

매출도 ‘역대급’이다. 가장 주목받은 프리즈 서울의 경우, 공식 결산은 나오지 않았으나 미술계 관계자들은 프리즈 측이 기대한 이상의 매출을 올렸을 것이라고 본다. 첫날부터 최정상 갤러리들이 잇따라 대작을 판매하면서 도합 1조원대 매출 가능성이 점쳐졌다. 참가 갤러리 13곳이 첫날 공식 발표한 판매가액만 약 200억원이다. 한국 컬렉터들, 사립 미술관뿐만 아니라 일본, 싱가포르, 대만 등 아시아 지역 컬렉터들의 주문이 이어졌다고 한다.

미국 애콰벨라 갤러리는 바스키아의 1986년작 ‘오리’(가운데)와 키스 해링, 앤디 워홀 등 거장의 작품을 다수 선보였다. ⓒ이세아 기자
미국 애콰벨라 갤러리는 바스키아의 1986년작 ‘오리’(가운데)와 키스 해링, 앤디 워홀 등 거장의 작품을 다수 선보였다. ⓒ이세아 기자
스위스 하우저앤워스 갤러리가 출품한 조지 콘도 작가의 신작 ‘붉은 초상화 구성(Red Portrait Composition)’, 2022, Oil on linen, 215.9 x 228.6 cm ⓒGeorge Condo/Photo: Thomas Barratt
스위스 하우저앤워스 갤러리가 출품한 조지 콘도 작가의 신작 ‘붉은 초상화 구성(Red Portrait Composition)’, 2022, Oil on linen, 215.9 x 228.6 cm ⓒGeorge Condo/Photo: Thomas Barratt
가고시안이 출품한 독일 추상화 거장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1984년작 ‘촛불(Kerzenschein)’. ⓒ이세아 기자
가고시안이 출품한 독일 추상화 거장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1984년작 ‘촛불(Kerzenschein)’. ⓒ이세아 기자
‘단색화 거장’ 박서보 작가가 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프리즈 서울 VIP 오프닝에서 화이트큐브 부스를 찾았다. 화이트큐브 창립자인 제이 조플링과 만나기도 했다. ⓒ이세아 기자
‘단색화 거장’ 박서보 작가가 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프리즈 서울 VIP 오프닝에서 화이트큐브 부스를 찾았다. 화이트큐브 창립자인 제이 조플링과 만나기도 했다. ⓒ이세아 기자

미국 뉴욕의 애콰벨라 갤러리즈는 900만달러(약 124억원)에 팔린 바스키아의 1986년작 ‘오리’를 시작으로 거장들의 작품이 다수 판매되거나 예약됐다고 밝혔다. 스위스 하우저앤워스 갤러리는 조지 콘도 작가의 신작 ‘붉은 초상화 구성(Red Portrait Composition)’을 한국 모 사립미술관에 280만달러(약 38억원)에 판매했다. 가고시안은 독일 추상화 거장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1984년작 ‘촛불(Kerzenschein)’을 1500만달러(약 203억원)에 팔았다. 영국 런던 등 세계 각지에 갤러리를 둔 화이트큐브는 전속 작가인 ‘단색화 거장’ 박서보의 신작, 트레이시 에민의 네온사인 작업, 리우 웨이의 회화 등을 첫날 모두 판매했다.

조현화랑은 ‘숯의 작가’ 이배의 대형 신작 ‘불로부터-흰 선(Issu du feu white Line)’ 6점을 각각 8만5000달러(약 1억2000만원), 총 51만 달러(약 7억원)에 판매했다. 리만 머핀 갤러리는 이불 작가 신작 ‘Perdu CXXXIX’(2022)를 유럽 컬렉터에게 19만 달러(약 2억6000만원)에 판매했고, 맥아서 비니언 작가의 ‘DNA:Study/(Visual:Ear)’(2022)는 미국인 컬렉터에게 22만5000달러(약 3억5000만원)에, 샹탈 조페 작가의 작품 3점은 한국 컬렉터에게 총 6만파운드(약 9500만원)에 판매했다. 이 갤러리가 선보인 서도호 작가의 신작 ‘Hub-1’도 큰 주목을 받았다. 독일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는 안토니 곰리의 작품을 50만 파운드(약 8억원)에, 게오르그 바셀리츠 회화를 120만 유로(약 16억3000만원)에, 이불 작가 ‘Perdu CXLIV’을 19만 달러(약 2억6000만원)에 판매했다.

독일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가 선보인 이불 작가의 신작 ‘Perdu CXLIV’. ⓒ이세아 기자
독일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가 선보인 이불 작가의 신작 ‘Perdu CXLIV’. ⓒ이세아 기자
갤러리현대가 올해 키아프 서울에 출품한 한국 단색조 추상화 거장 정상화 작가의 ‘Untitled 2017-6-12’, 2017 ⓒ갤러리현대
갤러리현대가 올해 키아프 서울에 출품한 한국 단색조 추상화 거장 정상화 작가의 ‘Untitled 2017-6-12’, 2017 ⓒ갤러리현대

 

2022 키아프 서울 마지막 날인 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표갤러리 부스를 찾은 관람객이 설치미술가 박선기 작가의 숯으로 만든 달항아리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2022 키아프 서울 마지막 날인 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표갤러리 부스를 찾은 관람객이 설치미술가 박선기 작가의 숯으로 만든 달항아리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김수자, 보따리 트럭(Bottari Truck - Migrateurs), 2007. Duraclear photographic print in light box, 125 x 188.5 x 16 cm ⓒKimsooja Studio and Axel Vervoordt Gallery
김수자, 보따리 트럭(Bottari Truck - Migrateurs), 2007. Duraclear photographic print in light box, 125 x 188.5 x 16 cm ⓒKimsooja Studio and Axel Vervoordt Gallery
황란 작가, ‘The Secret Sublime’(2022), Crystals, Beads, Pins on, Plexiglass ⓒDuru Artspace 제공
황란 작가, ‘The Secret Sublime’(2022), Crystals, Beads, Pins on, Plexiglass ⓒDuru Artspace 제공
황란, ‘Beyond the Freedom’(2022), Buttons, Beads, Pins on Wooden pannel ⓒARTPARK 제공
황란, ‘Beyond the Freedom’(2022), Buttons, Beads, Pins on Wooden pannel ⓒARTPARK 제공

공식 판매 집계를 발표하지 않기로 한 키아프 서울도 매출이 늘었다. 지난해 발표한 ‘역대 최다 매출’ 650억원 기록을 깼다고 한다. 갤러리현대는 출품한 모든 작가의 작품을 2점 이상씩 팔았고, 특히 이반 나바로, 김성윤, 이강승, 김창열, 이건용, 이슬기 작가의 작품은 완판했다. 정상화 작가의 작품 3점이 25억에 팔렸으며 총 매출은 42억원이다. 국제갤러리는 5억원대 하종현 작가의 작품 3점을 비롯해 강서경 작가의 1억원대 작품 2점, 최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 프랑스 장 미셸 오토니엘 작가 작품 등을 판매했다. 학고재 갤러리는 김재용 작가의 도넛 작품을 20점 이상 판매했다.

표갤러리는 하정우의 회화 작품 4점 전부, 1억원 상당의 박선기 작가 작품을 판매했다. 박선기 작가의 숯으로 만든 달항아리 모양의 작품은 이번 키아프에서 가장 주목받은 작품들 중 하나였다. 페레스 프로젝트는 페루 화가 파올로 살바도르 작가의 1점을 익명의 국내 미술관에 판매했다. Mak2는 출품작 8점을 완판했고, 솔로 부스로 참여한 메이크룸의 유귀미 작가 작품도 다 팔렸다. 탕 컨템포러리는 7억원 이상 매출을 올렸다. 한국 설치미술가 김수자 작품으로만 부스를 채운 벨기에 악셀 베르보르트 갤러리도 국내 공공기관 등에 작품을 판매했다.

9월 2일~6일까지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키아프 서울’ 현장. ⓒ키아프 서울 조직위원회 제공
9월 2일~6일까지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키아프 서울’ 현장. ⓒ키아프 서울 조직위원회 제공

참가 갤러리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프리즈 서울 개막 하루 만에 전시 작품을 완판한 협업 아트벤처 LGDR 측은 “서울 미술시장은 젊은 세대가 컬렉터 층으로 새롭게 진입해 에너지가 넘친다”고 했다. 사라 전 하우저앤워스 디렉터는 “프리즈 서울은 한국의 활기찬 예술 현장의 에너지를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리며 서울의 아트페어 판도를 바꾸는 행사”라고 했다. 하우스큐브 관계자도 “생각보다 열기가 뜨겁다. 서울은 ‘다음 세대의 홍콩’(The Next Hong Kong)”이라며 서울에 갤러리를 내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표미선 표갤러리 대표는 “한국 사람들의 작품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 것을 실감했다. 특히 MZ세대 고객들이 증가하며 젊은 콜렉터가 많아진 것 같다. 코로나19로 침체됐던 오프라인 미술시장이 좀 더 활성화됐고, 전세계 관람객들을 만날 수 있어 뜻깊었다”고 밝혔다. 최근 서울 강남에 새 공간을 마련한 중국 갤러리 탕 컨템포러리 아트의 요니 박 디렉터는 “작품 대부분을 한국의 중요한 컬렉터와 기관에 판매했다. VIP 오픈일 이후에도 활발한 판매가 이어졌다. 국제 미술계가 다시 활기를 띠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밝혔다.  

사이먼 폭스 프리즈 최고경영자(CEO)는 “프리즈 서울은 올해 처음 열었는데도 본고장인 영국 런던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프리즈 아트페어가 됐다”며 “수익 규모 면에서 미국 뉴욕과 로스앤젤레스(LA)를 제칠 것으로 내다본다”, “5년간 공동개최하기로 한 키아프와의 협력 관계가 앞으로 오랜 기간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키아프 서울을 개최한 한국화랑협회도 “서로 다른 운영 방식과 행사 시스템을 갖고 20여 년간 운영해온 두 아트 페어가 한 도시에서 공동으로 만나는 경우 다양한 협의점과 조율이 필요하다. 양측은 다음 해 행사 운영 시스템과 프로그램을 새롭게 조정하기 위해 더욱 긴밀한 협의와 노력을 함께 기울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호황에 들뜨기보다 체질 개선 필요” 목소리도

다만 해외 큰손들의 자본에 한국 미술계가 잠식될 수도 있다는 우려, 이례적인 호황에 들뜨기보다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빠지지 않았다. 한 국내 갤러리 관계자는 “소위 검증된 작가들의 검증된 작품을 취급하는, 거래 규모가 수백~수천억원대에 달하는 외국 주요 갤러리들과 우리는 아직 경쟁 자체가 안 된다. 메이저 화랑들을 제외하고는 국내 갤러리들과 해외 컬렉터가 만날 기회도 드물어서 아쉬웠다”고 했다.

또 다른 미술계 관계자는 “지금 한국 미술이 유독 매력이 있다거나 시선을 끄는 힘을 갖고 있지 않다. 단색화, 실험미술 말고 한국 미술이 낳은 차세대 스타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답하기 어렵다. 한류 열풍이 꺼지면 한국 미술 시장 분위기도 어떻게 될 지 모른다. 숨은 보석 같은 작가들, 작품들을 더 열심히 발굴하고, 그들이 작품 활동에 열중할 수 있도록 여러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