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폭력에 맞선 공분의 현장]
강남역 사건 이후 여성혐오 분노 들끓어
혜화역 시위로 터져나오기도 했지만
젠더폭력 범죄 재현된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왼쪽부터 강남역 혜화역 신당역 ⓒ홍수형 기자
강남역 여성 혐오 살인사건과 혜화역 시위 등 2번의 분기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발생까지 국가가 구조적 성차별과 여성혐오를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은 것에 대해 많은 시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왼쪽부터) 강남역, 혜화역, 신당역. ⓒ홍수형 기자

‘#강남역_이후_무엇이_바뀌었나’ 

신당역 전주환 스토킹 살인사건(이하 전주환 사건) 직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이 같은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이 쏟아졌다. 많은 여성들은 불법촬영과 스토킹이 살인으로 이어진 전주환 사건을 접하면서 6년 전 강남역에서 발생한 여성혐오 살인 사건을 떠올렸다. 평범한 여성들은 온라인을 넘어 강남역 10번 출구에 모여 피해자를 추모하는 한편, 여성 혐오와 구조적 성차별 문제를 공론화했다. 이어 수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나온 2018년 혜화역 시위는 젠더 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내고 법제도의 변화를 촉구했다. 두 차례의 분기점이 있었지만 국가는 몇몇 방범책 강화만 내세웠을 뿐이다. 젠더폭력의 본질적 원인은 여성 혐오와 구조적 성차별 문제는 되려 외면했다.  

2016년 강남역 사건
한국 사회에 경종을 울리다


2016년 5월 20일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추모공간에 ‘강남역 살인사건’을 추모하는 이들이 남긴 포스트잇과 꽃다발이 가득 쌓였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016년 5월 20일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추모공간에 ‘강남역 살인사건’을 추모하는 이들이 남긴 포스트잇과 꽃다발이 가득 쌓였다. ⓒ여성신문 

2016년 5월 17일 강남역 인근에서 한 여성이 조현병을 앓고 있는 한 남성에 의해 살해당했다. 살해 동기는 ‘평소 여자들이 자신을 무시해서’. 당시 경찰은 해당 사건을 ‘조현병 환자가 저지른 살인 묻지마 사건’으로 명명했지만 여성들은 사건을 ‘여성혐오 살인 사건’으로 규정하고 강남역 10번 출구에 추모공간을 마련하고 추모 포스트잇과 흰 국화꽃을 놓으며 분개했다

이 시기에 많은 시민들, 특히 많은 여성들이 여성 혐오에 대한 인식을 정립하고 여성 혐오 범죄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 평범한 지하철역에서 벌어졌던 사건은 평범한 일상에서도 여성 혐오 범죄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2018년 혜화역 시위
‘동일범죄 동일처벌’


불법촬영 피해자의 성별에 따른 편파수사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여성들이 2018년 10월 6일 서울 종로구 혜화역 일대에서 ‘제5차 편파판결 불법촬영 규탄시위‘를 열고 있다.
불법촬영 피해자의 성별에 따른 편파수사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여성들이 2018년 10월 6일 서울 종로구 혜화역 일대에서 ‘제5차 편파판결 불법촬영 규탄시위‘를 열고 있다. ⓒ여성신문 

여성들의 말하기는 끝이 없었지만 사회의 변화는 더뎠다. 강남역 사건이 발생하고 2년 뒤인 2018년 5월 19일 서울 종로구 혜화역에서는 여성 연대체인 ‘불편한 용기’가 주최한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1차 시위가 열렸다. 이른바 ‘혜화역 시위’다.  ‘동일범죄 동일처벌’을 구호로 그해 12월 6차 시위까지 이어졌다. 연인원 12만명이 시위에 참여했다. 2018년 5월 1일 남성 불법촬영 사건이 발생하고, 사건 수사와 언론 보도가 매우 신속하게 전개되는 모습을 보이자 여성들은 자신들이 지금까지 겪어온 불법촬영에 대한 두려움과 남성 불법촬영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지 못했던 현실에 대해 토로하기 시작했다. 여성들의 의견은 점차 조직화됐고, ‘동일범죄 동일처벌’을 구호로 한 혜화역 시위가 열렸다.

그러나 강남역 사건과 혜화역 시위 이후에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오히려 페미니즘 백래시(반발)는 노골화됐고, 페미니즘에 대한 20·30대 청년 남성의 인식은 악화됐다.  

2022년 신당역 전주환 스토킹 살인 사건
‘강남역 이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서울 중구 신당역 여자화장실 입구 모습 ⓒ홍수형 기자
서울 중구 신당역 여자화장실 입구 모습 ⓒ홍수형 기자

2022년 9월 14일 신당역에서는 또 다른 여성혐오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여성 역무원 A씨가 전 직장동료 전 모 씨로부터 스토킹을 당하다 여자 화장실에서 살해당한 것. 전 모 씨는 A씨를 불법촬영하고 이에 대한 협박까지 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국가는 A씨를 보호하지 못했다. 특히 전 모 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신청됐지만 기각된 것이 알려져 공분을 사고 있다.

시민들은 신당역 사건을 보며 강남역 사건을 떠올리고 있다. 신당역 여자 화장실에 조성된 추모 공간에 붙은 포스트잇 중에는 ‘강남역 이후로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가 눈에 띄었다.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등 SNS상에는 ‘#강남역_이후_무엇이_바뀌었나’ 등의 해시태그를 단 게시글이 올라왔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강남역 사건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일상의 두려움이었다. 이번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도 일상에서 여성이 겪는 두려움과 연결돼 있다”며 “낯선 사람이건 아는 사람이건 어떤 공간, 시간에서도 여성들은 여전히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여성들은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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