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여성이 있는 곳에 늘 ‘서울여노’가 함께 합니다
일하는 여성이 있는 곳에 늘 ‘서울여노’가 함께 합니다
  • 이하나 기자
  • 승인 2022.09.22 10:00
  • 수정 2022-09-22 17: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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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여성노동자회 30+3 성평등 걸음』 출간
여성노동운동 33년 활동사 담아
왕인순 서울여성노동자회 이사 ⓒ홍수형 기자
왕인순 서울여성노동자회 이사 ⓒ홍수형 기자

서울여성노동자회(이하 서울여노)의 33년(1987~2020)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기록물 『서울여성노동자회 30+3 성평등걸음』 이 세상에 나왔다. 1987년 3월 21일 창립한 서울여노는 여성노동자가 겪는 다양한 문제를 드러내고 여성친화적인 노동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35년간 “한 순간도 깃발을 내리지 않았다”.

창립 때부터 15년간 상근활동했던 왕인순 서울여노 이사를 주축으로 여성노동전문가인 김경희, 김둘순, 김양지영, 이세민씨가 자원봉사로 집필에 참여했다. 이들 모두 생업에 종사하면서 짜투리 시간을 쪼개 방대한 자료를 검토하고 정리하고 기술하는 고단한 작업에 헌신했다. 대표 집필을 맡은 왕인순 이사는 “집필자들의 정열과 헌신 덕분에 33년간의 활동사를 펴낼 수 있었다”고 했다.

서울여노는 1987년 3월 21일, “일하는 여성의 손과 지혜가 미치는 곳에 무한한 생명력이, 일하는 여성의 힘찬 함성이 있는 곳에 눈부신 사회의 발전이 이루어진다”는 기치 아래 일하는 여성들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지위향상을 위해 설립된 여성노동단체다. 창립 당시 ‘한국여성노동자회’라는 이름으로 출범했으나 1992년 전국 조직인 한국여성노동자협의회(현 한국여성노동자회)가 창립하면서 서울여노로 개칭했다. 이후 서울지역사업에 집중하며 여성노동자회의 전국조직을 탄탄하게 받치고 있다.

서울여노 창립 주역은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을 펼친 여성지도자와 학생운동에서 성장한 여성운동가들이었다. 이들은 당시 ‘여성노동자들이 왜 모두 가정으로 돌아가야 하는가’라는 아픈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지속적인 여성노동자운동을 위해 독자 조직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이후 서울여노는 35년간 여성노동자 곁에서 여성노동자와 함께 달려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공장에 취업해 일했던 왕 이사는 여성평우회 활동을 거쳐 서울여노 출범 때부터 총무, 대표를 거친 여성노동운동의 ‘왕언니’다. 서울여노 35년의 역사를 함께 한 왕 이사는 “서울여노의 역사는 여성노동운동의 역사”라고 했다. 『서울여성노동자회 30+3 성평등 걸음』은 서울여노와 여성노동운동의 역사를 고스란히 기록한 자료집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서울여성노동자회 선전물. ⓒ여성신문
과거 서울여성노동자회 선전물. ⓒ여성신문

서울여노 활동가들은 창립 초기부터 독자적인 여성노동자운동단체로서 여성문제 해결을 위한 사업을 펼치고 대중조직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방침 아래 고용안전을 위한 투쟁에 나섰다. 특히 여성이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어린이집을 운영하며 보육을 지원했다. 서울여노의 이러한 활동은 탁아 관련 법제도 개선운동과 직장탁아소 설치운동으로 이어졌다.

1990년대는 ‘평등의전화’를 개설해 본격적인 여성노동상담에 나섰고 남녀고용평등법 개정 활동에 나섰다. 당시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채용 성차별 문제를 법으로 막고 직장 내 성희롱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여성 노동자 수난시대였다. 1998년 IMF 외환위기 당시 여성노동자는 해고 1순위에 올랐다. 여성실업과 비정규직이 급격이 늘고 고용불안과 빈곤에 허덕이는 여성노동자를 돕기 위해 여성인력개발센터, 지역자활센터 등을 통해 대중접촉면을 늘리고, 여성실업과 여성가장 문제 이수화와 지원제도 마련을 위한 활동에 집중했다. ‘전국여성노동조합’ ‘실업극복상조회’ 등 당사자 이해와 욕구에 기반한 대중조직을 만드는 활동에도 나섰다. 

사회양극화가 심화된 2000년대 중반에는 근로빈곤 문제가 한국 사회 주요 과제로 제기되기 시작됐다. 서울여노는 실업과 빈곤, 비공식부문 여성 조직화에 앞장섰다. ‘전국가정관리사협회’ ‘빈곤추방여성노동권확보 희망본부’ 등 당사자 조직화에 나섰다. 최저임금 인상 활동, 가사서비스노동 공식화와 근로자성 인정 요구에도 적극 나섰다.

신자유주의가 전면화된 2010년대는 노동시장 양극화로 여성노동의 불안정성과 차별도 더욱 심화됐다. 서울여노는 최저임금 현실화와 성별임금격차 해소 활동을 비롯해 시간제 일자리 반대 활동에 나섰다. 미투 운동이 활발히 전개된 2018년 이후부터는 채용 성차별 해소를 위한 활동부터 모부성권 확보 및 일·생활 균형 활동, 돌봄노동의 공공성 강화 등의 활동에 집중했다.

왕 이사는 “서울여노는 독자적인 여성노동 영역을 구축하고 전문화했으며 시대 상황에 부응해서 요구되는 연대활동을 책임있게 수행했다”고 자평했다. 

민주노총여성위원회 등 여성단체 회원들이 11월 10일 한샘·현대카드 성폭력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용감한 여성이 고장난 시스템을 바꾼다’는 메세지를 담은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서울여성노동자회 등 여성노동단체 활동가들이 2017년 11월 10일 ‘용감한 여성이 고장난 시스템을 바꾼다’는 메세지를 담은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여성신문

 

여성노동자 대중사업의 기반이 되는 안정적인 공간은 서울여노가 지금까지 활발히 활동하는 디딤돌이 됐다.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지하 1층, 지상 3층의 ‘여성복지회관’은 활동비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헌신한 선배들의 땀과 애환이 고스란히 담긴 공간이자 여성노동운동의 역사 공간이다.

서울 영등포시장 인근 보증금 100만원의 작은 사무실에서 출발한 서울여노는 창립 이듬해인 1988년부터 여성노동자 대중사업의 기반과 안정적인 공간 마련을 위해 ‘여성노동자복지회관’ 설립을 위한 모금활동에 나서기도 했다. 활동가들이 주축이 돼 모금을 위한 연극, 노래극, 그림전, 바자회 등 행사를 열었고 가수 양희은씨가 데뷔 20주년을 기념해 자선모금 디너쇼 수익금 전액을 기부하기도 했다. 마침내 1992년 5월 여성복지회관이 완공됐다.

여성노동자는 한국의 경제성장의 중요한 밑거름이 됐지만 여전히 저임금, 채용성차별, 성폭력, 경력단절 등 각종 차별 대우와 불합리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서울여노도 가정, 직장, 사회에서 성평등 노동 실현을 위해 계속 ‘깃발’을 휘날릴 것이라고 했다.

왕 이사는 “서울여노는 2017년 성평등 노동 실현을 위해 평등과 존중, 공존, 정의를 단체의 핵심 가치로 정해 이 가치에 따라 주요 실천과제를 결정하고 점검할 것”이라며 “서울여노는 일하는 여성이 있는 곳에 늘 함께하며 전지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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