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꽃, 죽음....공예 거장 유리지 작가를 만나다
바람, 꽃, 죽음....공예 거장 유리지 작가를 만나다
  • 이세아 기자
  • 승인 2022.09.26 17:52
  • 수정 2022-09-27 11: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공예박물관, 27일부터 11월27일까지
‘사유하는 공예가 유리지’ 전
유족 기증품 327점 모아
개관 후 첫 기증특별전
‘서울시 공예상’ 제정도 추진
유리지 작가, 바람에 기대어, 1987, 은(92.5), 금부, 백동, 25.3x22.5x16.5cm ⓒ서울공예박물관 제공
유리지 작가, 바람에 기대어, 1987, 은(92.5), 금부, 백동, 25.3x22.5x16.5cm ⓒ서울공예박물관 제공
유리지 작가, 골호-삼족오, 2002, 은(92.5), 27x18x16cm ⓒ서울공예박물관 제공
유리지 작가, 골호-삼족오, 2002, 은(92.5), 27x18x16cm ⓒ서울공예박물관 제공

바람 부는 언덕에 풀들이 나부낀다. 그 사이로 꽃 한 송이가 고고하게 피었다. 유리지 작가는 이 모습을 은과 백동, 금부로 형상화했다. 자연과 인간, 인간의 삶과 죽음을 본질적이고도 서정적인 형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태양 속에 살면서 신들과 인간세계를 잇는 전설의 새 삼족오(三足烏), 십이지의 열두 동물로 장식한 골호(유골함)에 그러한 고민이 깃들어 있다.

한국 현대 금속공예 거장 유리지(1945~2013) 작가의 대표작이 서울공예박물관에 모였다. 오는 27일부터 11월 27일까지 열리는 ‘사유思惟하는 공예가 유리지’ 전이다.

삶의 모든 순간을 아름답고 품격있게 만들고자 한 작가, 자신의 작업이 ‘타인을 위한 예술’이길 바란 작가다. 은접시 가장자리엔 나팔꽃이 활짝 피었다. 보석함과 약통은 라일락과 나비로 수놓였다. 담배함과 재떨이 뚜껑을 장식한 대나무숲은 고아하다. 유리지 작가는 “나의 작품이 현대의 생활공간에서 존재할 수 있는 의식을 위한 소도구가 되길 원한다”는 말을 남겼다.

유리지 작가, 향로와 잔, 1978–79, 은(97), 향로-26x18x16, 잔-6x13.5x10cm ⓒ서울공예박물관 제공
유리지 작가, 향로와 잔, 1978–79, 은(97), 향로-26x18x16, 잔-6x13.5x10cm ⓒ서울공예박물관 제공
유리지 작가, 튤립 다기세트, 1988, 은(99), 칠보 ⓒ서울공예박물관 제공
유리지 작가, 튤립 다기세트, 1988, 은(99), 칠보 ⓒ서울공예박물관 제공
유리지 작가, 무인도(호텔신라 제주 로비 조형물), 1995, 스테인리스 스틸, 오석, 화강암, 분수, 185x1000x650cm ⓒ서울공예박물관 제공
유리지 작가, 무인도(호텔신라 제주 로비 조형물), 1995, 스테인리스 스틸, 오석, 화강암, 분수, 185x1000x650cm ⓒ서울공예박물관 제공
서울공예박물관이 9월 27일부터 11월 27일까지 여는 ‘사유思惟하는 공예가 유리지’ 전시장에 걸린 유리지 작가의 사진. ⓒ이세아 기자
서울공예박물관이 9월 27일부터 11월 27일까지 여는 ‘사유思惟하는 공예가 유리지’ 전시장에 걸린 유리지 작가의 사진. ⓒ이세아 기자

그는 1970년대 미국 유학 이후 국내 현대 금속공예의 성립과 발전 과정에 크게 기여했다. 금속공예, 장신구, 환경조형물, 장례용구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작품세계를 선보여 주목받았다. 한국 추상미술 1세대인 고 유영국 화백의 장녀이기도 하다.

1981년부터는 서울대 미술대학 공예전공 교수로 재직하며 교육자, 미술관인으로 활약했다. 2004년 공예 전문 미술관인 ‘치우금속공예관’을 설립, 2010년부터 관장을 역임하며 한국 현대금속공예를 연구·전시하고 차세대 공예가 지원에 힘썼다. 2013년 2월 백혈병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유족은 미술관의 명칭을 ‘유리지공예관’(서울 서초구 우면동)으로 바꿔 운영하고 있다. 지난 여름 서울공예박물관에 고인의 주요 작품 126건 327점(37억 2800만원 상당)을 기증했다.

전시는 총 4부로 구성됐다. 유리지 작가의 우면동 작업실을 중심으로 가족과 초기 활동을 설명한다. 서정적 풍경을 담은 작품과 환경조형물, 생명의 순환에 대한 철학적 사유에 기초한 장례용구 등을 소개한다. 여동생인 유자야 유리지공예관장이 운영했던 금속공예공방 겸 상점의 제작품도 있다. 유리지 작가의 자문을 받아 만든 귀금속 장신구, 칠보은기, 황금찻잔 등 고급 공예품들이다.

유자야 관장은 전시 기념 박물관 측과의 인터뷰에서 “기증을 통해서 언니의 작품들을 더 많은 분들이 보실 수 있으면 좋겠다. 고은보석의 작업이 예술로서의 공예가 아닌, 생활을 위한 공예의 한 사례로서 연구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서울공예박물관이 9월 27일부터 11월 27일까지 여는 ‘사유思惟하는 공예가 유리지’ 전시장 전경. ⓒ서울공예박물관 제공
서울공예박물관이 9월 27일부터 11월 27일까지 여는 ‘사유思惟하는 공예가 유리지’ 전시장 전경. ⓒ서울공예박물관 제공
‘사유思惟하는 공예가 유리지’ 전에서는 금속공예가 9인(김승희, 김여옥, 서도식, 신혜림, 이봉주, 정영관, 정용진, 조성혜, 최현칠)의 기증 작품도 소개한다. ⓒ서울공예박물관 제공
‘사유思惟하는 공예가 유리지’ 전에서는 금속공예가 9인(김승희, 김여옥, 서도식, 신혜림, 이봉주, 정영관, 정용진, 조성혜, 최현칠)의 기증 작품도 소개한다. ⓒ서울공예박물관 제공

이번 전시에 이어 ‘서울시 공예상’ 제정도 추진한다. 유족들은 한국 공예 발전에 힘쓴 작가의 뜻을 이어 향후 20년간 우수한 한국 공예가를 매년 선정·시상하는 ‘공예분야 작가상’을 제정하기로 뜻을 모았다고 한다. 유족들이 총 6억원 규모의 상금을 기부하고, 서울공예박물관이 수상 작가를 선정해 시상식과 기념 전시를 여는 식이다.

이번 전시는 서울공예박물관 개관 후 첫 번째 기증특별전시다. 김수정 서울공예박물관장은 26일 기자간담회에서 “개관 준비 단계부터 유리지 선생님의 작품들이 흩어지지 않고 관람객들과 만날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준비해왔다.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나라 금속공예 기초를 높이기 위해 애쓰고 후학들을 양성하고 대중과 공예의 접점을 만들려 노력했던 유리지 작가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박물관의 현대금속공예 컬렉션을 국내외에 적극 홍보해 우리 공예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교류의 기회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밝혔다. 전시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기사가 마음에 드셨나요?

여성신문은 1988년 창간 이후 여성 인권 신장과 성평등 실현을 위해 노력해 온 국내 최초, 세계 유일의 여성 이슈 주간 정론지 입니다.
여성신문은 여성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여성의 '안전, 사회적 지위, 현명한 소비, 건강한 가족'의 영역에서 희망 콘텐츠를 발굴, 전파하고 있습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를 해주세요.
여러분의 후원은 여성신문이 앞으로도 이 땅의 여성을 위해 활동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여성신문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