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한글맏뜻 캠페인 이미지. ⓒ네이버
네이버 한글맏뜻 캠페인 이미지. ⓒ네이버

계절의 시계는 멈추지 않고 돌아갑니다. 폭우가 할퀴고 간 상처가 여전하지만 30도를 웃도는 더위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자취를 감추었지요. 도둑처럼 찾아온 선선한 날씨에 자꾸만 몇 장 남지 않은 달력을 만지작거리며 들춰보게 됩니다.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조급한 마음이 들지만, 한편으론 연말까지 법정 공휴일이 2일뿐이라는 걸 확인하며 쉼 없이 달려야겠구나 마음도 다잡아보게 됩니다. 

한글날 앞두고 행사 풍성

10월 9일은 한글날입니다. 올해 남은 휴일 중 하나이지요. 한글날을 앞두고 9월 중순 이후부터 크고 작은 행사들이 시작되었습니다.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한글·나·들이’ 백일장과 세종사이버대 한국어학과가 마련한 ‘예쁜 손글씨 공모전’, 경상국립대 국어문화원의 ‘아름다운 우리말 가게 이름 뽑기’처럼 참여형 행사가 주를 이루고 있지요. 식품기업 농심에선 자사 제품명을 딴 ‘안성탕면체’라는 글씨체를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게 하고, 네이버도 예년처럼 서체를 배포하고 있습니다. 네이버는 특히 올해 ‘한글맏뜻 캠페인’도 진행하는데요, “세종이 한글을 만들었던 맏뜻이 영원할 수 있도록 한글을 지키겠다”고 합니다. 네이버 측은 캠페인 전체를 대변할 수 있는 단어 ‘맏뜻’에 대해 ‘처음 먹은 마음’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라고 간단히 설명합니다.

공공언어에는 맞지 않는 ‘맏뜻’

‘맏뜻’은 매우 생소한 단어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없는 말이지요. 네이버가 그 뜻을 알려주었지만 맏뜻이 사용된 유의미한 예와 유래는 다른 곳에선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위키백과 등 포털이 제공하는 7개 비공식 사전에서도 찾을 수 없었지요. 다만 유일하게 네이버 오픈사전에서만 뜻풀이를 볼 수 있었는데요, 2003년 한 개인이 등록한 것으로 보이더군요.

국립국어원은 “맏뜻의 의미를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다만 맏이를 뜻하는 접두사 ‘맏-’과 ‘뜻’의 합성어로 본다면 “순우리말로 볼 수도 있을 것”이란 열린 답변을 주더군요. 그러면서 이 단어는 순우리말이냐 아니냐보다는 표준어냐 표준어가 아니냐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을 주었습니다. 물론 정확한 뜻풀이는 제시하지 않았지요.

결론은, ‘맏뜻’은 표준어가 아닙니다. 그래서 공식적인 뜻풀이도 존재하지 않지요. 순우리말을 이용해 만든 신조어라고 해야 더 알맞을 듯합니다. 언어유희를 즐기고 새로운 말을 만들어내며 우리말을 풍성하게 확장하는 측면에선 ‘맏뜻’의 사용이 무척이나 반갑지만 공공언어와 언론에서는 비표준어 사용은 삼가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꼭 써야 한다면 순우리말로 만든 신조어라는 설명이 필요하겠지요.

오류투성이 언어로 언어문화 개선?

한글날을 앞두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캠페인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교육부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17개 시·도교육청과 함께하는 ‘학생 언어문화개선 교육주간’이지요. 한글날을 기념하는 동시에 학교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사업인데요, 언론에 공개된 포스터와 관련 자료를 제공하는 누리집을 둘러보고선 무척 당황스러웠습니다. 분명 학생을 위한 언어문화 개선 프로그램인데, 관련 자료와 누리집에 우리말 오류가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포스터만 보아도 예쁜말(예쁜 말), 고운말(고운 말), 행복해 질(행복해질)과 같이 띄어쓰기 오류, 캘리그라피(캘리그래피)처럼 외래어 표기 오류가 보입니다. 특히 캘리그라피는 표기도 잘못됐을 뿐 아니라 ‘멋글씨’라는 우리말 대체어가 있는데도 전혀 반영되지 않았더군요. 누리집도 비문과 영어식 표현을 포함한다면 문장마다 오류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일상의 언어생활에 베어있는(배어 있는)”처럼 아예 잘못된 단어를 쓰기도 했더군요. 누리집 화면에는 ‘MORE(모어)’와 같은 영어를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국가 부처와 자치단체 누리집에선 영어 ‘모어’가 아닌 우리말 ‘더 보기’ 또는 수학기호 플러스(+)를 써 누리집을 이용하기 편하도록 한 것과 대비되었습니다.

공공언어에서 보이는 오류는 우리 말글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우리 말글을 옳게 써야 한다는 언어감수성 부족에서 비롯되지 않나 생각하게 됩니다. 전문적인 교정교열을 거치진 못하더라도 간단하게 문법 검사기만 돌려봐도 거를 수 있는 오류가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학교 현장에서 부디 “청소년기의 건전하고 올바른 언어 사용 습관을 통해 학교폭력 예방 및 인성교육을 실천하여 모두가 행복한 학교 문화를 조성하고자 하는 캠페인”이라는 설명이 무색하지 않게 오류 없는 언어로 캠페인이 진행되었으면 합니다.

곽민정 방송사 보도본부 어문위원<br>
곽민정 방송사 보도본부 어문위원<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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