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디지털 사회’로의 전환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2016년 ‘4차 산업혁명’이 처음 거론된 이후 사회·경제·문화 등 전 영역에 걸친 ‘디지털 전환’을 사회구조의 총체적 변혁으로 인지하게 된 상황에서, 코로나19로 인해 한층 더 가속도가 붙은 상태이다. 이제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정보는 디지털로 저장되어 소통되고 있으며, ‘뉴노멀’이라는 새로운 미래 사회의 윤곽이 드러나면서 우리의 관심은 ‘디지털’에 더욱 집중되고 있다. ‘디지털 기반의 새로운 세상’이 대중화 될수록 사람들의 생활과 삶의 형태는 변화하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를 경험한 사람들의 사고방식, 더 나아가 공동체의 사회·문화 또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이런 새로운 변화는 기존 사회의 사고방식·문화와 갈등 및 충돌을 낳게 되는데, 이러한 갈등과 충돌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과정에 기반한 새로운 질서 체계를 필요로 하게 된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디지털 사회’는 새로운 질서 체계 안에서 어떠한 역량들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가? 디지털 기술을 잘 쓰고 잘 다루는 기본역량 외에도 디지털 정보를 이해하고 분석·관리하여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능동적 활용 역량, 즉 ‘디지털 리터러시’를 요구한다. 이는 앞으로 디지털 사회에서 살아 남기 위해 필요로 하는 최소한의 역량이다.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얻은 필요한 정보를 유용하게 소비하는 현명한 소비자로서의 마인드 뿐만 아니라, 새로운 디지털 기술 정보 콘텐츠를 생산해 내는 생산자로서의 능력도 함께 갖추어야 한다. 수많은 정보가 쏟아지는 디지털 환경에서 옳고 그름을 가려낼 수 있는 분별력과 개인의 가치-사회적 가치를 공유하면서 사회적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윤리와 철학을 갖추는 것. 이것이 바로 ‘디지털 시민성’의 핵심이다. 아울러 이러한 역량의 축적은 곧 우리 미래 사회의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동력이자 국가경쟁력이 된다.

한편 우리는 매일 다양한 디지털 기기 플랫폼에 둘러싸여 살고 있으며 이를 이용하는 형태와 수준도 제각기 다르다. 사실 디지털 사회로 전환될수록 우리는 진짜 정보와 가짜 정보가 혼재된 상황에 더 많이 노출될 것이며, 이를 가려내어 올바른 정보를 취득하기 위한 미디어 리터러시 및 비판적 사고력이 더욱 요구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허위정보를 생산해 내는 것을 막고 과도한 신상털기 및 무분별한 타인의 권리침해 등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사회에서의 공동체 의식 함양, 관계능력 함양, 갈등관리능력 함양 등을 위한 최소한의 윤리와 철학이 전제된 ‘건전한 시민의식’ 또한 요구된다. 우리는 흔히 ‘미디어 리터러시’와 ‘디지털 리터러시’를 혼용하여 쓰고 있으나 양자 간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디지털 리터러시는 표현과 의사소통 수단인 미디어보다 더 광범위한 개념으로서 개개인의 사회적 생활방식과 관계를 구조적으로 변화시킨다. 따라서 미래 사회를 올바르게 살아가기 위한 필수요건인 ‘디지털 리터러시+디지털 시민성’ 함양을 위해 별도의 교육과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디지털 리터러시, 더 나아가 디지털 시민성을 함양하기 위한 현행 교육과정 속에는 과연 ‘젠더’가 올바르게 자리잡고 있는가? 최근 우리 사회에는 남성혐오, 여성혐오 등의 메시지를 여과없이 드러내는 콘텐츠가 범람하고 있으며, 심지어 어느 경우에는 콘텐츠 제작 의도와 상관없이 성별·세대 갈등 및 혐오 유발의 콘텐츠라는 굴레가 덧씌워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매일 생산되는 수많은 미디어와 콘텐츠를 올바르게 평가하고 소비하기 위해서는 그 속에 숨어 있는 성별고정관념이나 성차별적 메시지를 읽어내는 능력 또한 갖추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디지털 리터러시나 디지털 시민성 함양 교육과정에는 젠더에 대한 고려가 매우 미흡하다. 겨우 사이버불링이나 디지털 성폭력 문제 등을 형식적·기계적으로 다루는 데 그치고 있을 뿐이다. 최근 발표된 여성폭력 실태조사(2021) 결과에 따르면, 낯선 성인과 1:1 대화를 나눈 청소년 347명 중 96명은 성적인 대화를 나누었고 이중 54명은 오프라인에서 상대방을 실제로 만났으며 이 중 13명이 성적인 대화·행위 등을 요구받은 것으로 나타나 많은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 사회의 미래인 청소년들이 올바르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청소년들은 하루에도 수많은 종류의 유해 콘텐츠들을 접하고 있으며 이를 막을 방법 또한 없다. 그렇다면 이들이 건전하고 올바른 디지털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디지털 시민성’ 교육에 젠더를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디지털 사회로 급격하게 재구조화 되어 가는 지금, 젠더 관점을 고려한 디지털 리터러시/디지털 시민성 함양 교육을 어떻게 구성해 나갈지 우리 사회가 총체적으로 나서서 고민해야 할 때다. 

장명선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
장명선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