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뮤지컬 ‘안나, 차이코프스키’ 첫 선
대학로 최초 9인조 오케스트라 편성
노래 잘하기로 소문난 배우들 만나
음악이 주는 여운에 비해 서사는 두루뭉술
여성 캐릭터는 조연에 머물러

9월 27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유니플렉스1관에서 열린 뮤지컬 ‘안나, 차이코프스키’ 프레스콜 현장. 김소향(안나), 박규원(차이코프스키) 배우가 넘버 ‘인생산책’을 부르며 연기하고 있다. ⓒ과수원뮤지컬컴퍼니 제공
9월 27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유니플렉스1관에서 열린 뮤지컬 ‘안나, 차이코프스키’ 프레스콜 현장. 김소향(안나), 박규원(차이코프스키) 배우가 넘버 ‘인생산책’을 부르며 연기하고 있다. ⓒ과수원뮤지컬컴퍼니 제공

세계가 사랑하는 음악가, 차이코프스키는 동성애자였다. 거장이 남긴 연서(戀書)들은 아름답고 비통하다. 사랑을 찬미하면서도 세상으로부터 숨겨야 한다는 고뇌와 좌절이 묻어난다. 19세기 러시아에서 동성애는 중죄였다. ‘러시아의 보물’이 동성애자였다는 사실은 오늘날에도 러시아의 금기다.

뮤지컬 ‘안나, 차이코프스키’는 이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19세기 러시아를 배경으로 차이코프스키와 그의 음악적 동료이자 비서 알료샤, 각자의 신념과 의지를 가진 예술가 안나와 세자르가 나누는 사랑과 연대를 조명한다.

음악이 주는 감동과 여운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다. 대학로에 처음으로 등장한 9인조 오케스트라와, 노래 잘하기로 소문난 배우들이 만나 위용을 떨친다. 차이코프스키 역에 에녹, 김경수, 박규원이, 알료샤 역에는 김지온, 정재환, 김리현이 출연한다. 문학잡지 편집장이자 시인 안나 역으로 김소향, 최수진, 최서연이, 러시아 5인조의 일원이자 민족 음악의 대변자 세자르 역으로 임병근, 테이, 안재영이 무대에 선다. 

클래식 명곡의 멜로디를 차용한 넘버가 인상적이다. 차이코프스키의 대표작인 ‘잠자는 숲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 ‘오네긴’의 서사와 멜로디를 차용해 웅장하면서도 환상적이고 서정적인 무대를 만든다. 9월 20일 공연에서 에녹(차이코프스키), 김소향(안나) 배우가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며 섬세하게 화음을 쌓다가 격정적으로 노래하는 클라이맥스에서는 객석 곳곳이 눈물바다로 변했다.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재관람 행렬이 이어지는 중이다.

베토벤의 삶과 음악을 담은 팩션 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의 제작사 과수원뮤지컬컴퍼니의 작곡가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다. 2021년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후보’로 처음 공개됐고 올해 초연이다. ‘리틀잭’, ‘달과 6펜스’ 등을 연출한 황두수 국제예술대학교 뮤지컬과 학과장이 각색·연출을 맡았다. 뮤지컬 ‘살리에르’, ‘라흐마니노프’의 이진욱 작곡가가 작곡과 음악 감독을 맡고, 뮤지컬 ‘제이미’, ‘비틀쥬스’, ‘킹키부츠’의 이현정 안무 감독도 함께한다. 

다만 작품의 메시지는 좀 두루뭉술하다. 동성애 코드를 활용할 뿐, 성소수자들이 겪는 문제를 깊이 다루지는 않는다. 민족주의와 결부된 전쟁 속 예술가들이 겪는 갈등, 시대가 남긴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연대에 초점을 둔다.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이 세계를 뒤흔드는 때에 이런 극이라니 다소 갸우뚱해지는 면도 있다. 황두수 연출가는 지난 9월 27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에서 열린 프레스콜에서 “극 중 차이콥스키가 가진 결핍에 대한 창구는 예술”이라며 “모두가 자신만의 결핍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점에서 이 작품과 맞닿은 지점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주요 등장인물 둘의 이름을 나란히 쓴 제목(‘안나, 차이코프스키’)과는 달리 남성 주인공 중심의 서사도 아쉽다. ‘안나’는 진취적이고 독창적인 예술가로 그려지지만, 차이코프스키의 복잡한 감정을 이해하고 그가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음악가로서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에 머문다. 안나라는 매력적인 인물의 이야기는 많은 부분이 빈칸으로 남았다. 30일까지 유니플렉스 1관.

9월 27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유니플렉스1관에서 열린 뮤지컬 ‘안나, 차이코프스키’ 프레스콜 현장. 박규원(차이코프스키), 최서연(안나), 테이(세자르), 정재환(알료샤) 배우가 넘버 ‘푸쉬킨 동상 앞에서’를 부르며 연기하고 있다. ⓒ과수원뮤지컬컴퍼니 제공
9월 27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유니플렉스1관에서 열린 뮤지컬 ‘안나, 차이코프스키’ 프레스콜 현장. 박규원(차이코프스키), 최서연(안나), 테이(세자르), 정재환(알료샤) 배우가 넘버 ‘푸쉬킨 동상 앞에서’를 부르며 연기하고 있다. ⓒ과수원뮤지컬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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