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차별·섹슈얼리티 억압
가부장제의 폭력 계급주의 등
‘칼 같은 글쓰기’로 해부
자전적·사회학적 글쓰기로 호평
‘레벤느망’ 등 영화로도 재탄생
여성으로는 17번째 수상자
“나는 단지 글을 쓰는 여자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아니 에르노 작가. ⓒ문학동네 제공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아니 에르노 작가. ⓒ문학동네 제공

프랑스의 ’페미니스트 아이콘‘, 자전적이면서도 사회학적인 글쓰기로 명성을 떨친 작가 아니 에르노(Annie Ernaux, 82)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스웨덴 한림원은 6일(현지시간) 에르노를 수상자로 호명하면서 “개인적 기억의 근원과 소외, 집단적 통제를 드러낸 용기와 꾸밈없는 예리함을 보여주는 작가”라고 소개했다.

에르노는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선언으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규정한다. 사회에서 금기시된 주제들을 드러내는 ‘칼 같은 글쓰기’로 이름을 알렸다. 젠더 차별, 가부장제의 폭력, 노동자와 가진 자들 간 계급 격차 등 자신이 겪은 일들을 문학으로 빚어냈다. 

아니 에르노의 등단작 『빈 장롱』 (아니 에르노 씀, 신유진 옮김. 1984 BOOKS) ⓒ1984 BOOKS
아니 에르노의 등단작 『빈 장롱』 (아니 에르노 씀, 신유진 옮김. 1984 BOOKS) ⓒ1984 BOOKS
아니 에르노의 소설 『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씀, 신유진 옮김. 1984 BOOKS) ⓒ1984 BOOKS
아니 에르노의 소설 『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씀, 신유진 옮김. 1984 BOOKS) ⓒ1984 BOOKS

1974년 자전적 소설 『빈 장롱』으로 등단, 1984년 자전적 요소가 강한 『남자의 자리』로 프랑스 언론인들이 최고의 문학에 수여하는 르노도상을 수상했다. 2008년 전후부터의 현대사를 다룬 『세월들』로 마르그리트 뒤라스상, 프랑수아 모리아크상, 프랑스어상, 텔레그람 독자상을 수상했다. 2003년에는 ‘아니 에르노 문학상’이 탄생했다.

에르노는 1940년 프랑스 릴본에서 카페 겸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소상인의 딸로 태어나, 노르망디 이브토에서 자랐다. 루앙대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중등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1971년 현대문학교수 자격시험에 합격해 2000년까지 문학 교수로 강단에 섰다.

데뷔 시절부터 역사적 경험과 개인적 체험을 혼합한 작품을 선보였다. 부모의 신분 상승(『남자의 자리』, 『부끄러움』), 자신의 결혼(『얼어붙은 여자』), 어머니의 치매와 죽음(『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한 여자』), 유방암 투병 경험(『사진의 사용』, 마르크 마리 공저) 등을 소재로 자신을 철저하게 해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내면적인 것은 여전히, 그리고 항상 사회적이다. 왜냐하면 하나의 순수한 자아에 타인들, 법,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니 에르노의 소설 『단순한 열정』 (아니 에르노 씀, 최정수 옮김. 문학동네) ⓒ문학동네
아니 에르노의 소설 『단순한 열정』 (아니 에르노 씀, 최정수 옮김. 문학동네) ⓒ문학동네
아니 에르노의 소설 『사건』 (아니 에르노 씀, 윤석헌 옮김. 민음사) ⓒ민음사
아니 에르노의 소설 『사건』 (아니 에르노 씀, 윤석헌 옮김. 민음사) ⓒ민음사
아니 에르노의 소설 『사건』을 원작으로 한 영화 ‘레벤느망’(오드리 디완 감독). 2021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영화특별시SMC 제공
아니 에르노의 소설 『사건』을 원작으로 한 영화 ‘레벤느망’(오드리 디완 감독). 2021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영화특별시SMC 제공

연하의 외국인 유부남과의 불륜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다룬 『단순한 열정』은 문단 안팎에 충격을 줬다. 국내에서도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라는 소설의 첫 문장이 널리 회자됐다. 이 소설의 모티프가 된 일기를 모은 『탐닉』도 화제에 올랐다.

프랑스에서 임신중지가 불법이던 시절 자신의 임신 중지 경험을 쓴 작품 『사건』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레벤느망’(오드리 디완 감독)은 2021년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에르노의 생생한 목소리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지난 5일 개막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날 수 있다. 아들 다비드와 함께 만든 자전적 다큐멘터리 ‘슈퍼 에이트 시절(The Super 8 Years)’이 상영 중이다. 1972년~1981년 사이에 전남편 필립 에르노가 슈퍼 8카메라로 촬영하고 에르노가 내레이션을 입힌 영화다.

여성으로선 17번째, 프랑스인으로는 16번째 노벨 문학상 수상이다. 에르노는 수상 발표 직후 스웨덴 공영 방송 인터뷰에서 “대단한 영광이자 큰 책임”이라고 밝혔다. ‘슈퍼 에이트 시절’ 관련 지난 5월 칸국제영화제를 찾았을 때 AFP통신과 한 인터뷰에서는 “나는 단지 글을 쓰는 여자다. 그게 전부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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