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사 미화·은폐 대신
배제됐던 여성들을 중심으로 불러내
다채로운 캐릭터 꽃피워

*이 글에는 드라마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tvN 드라마 ‘작은 아씨들’ 포스터. ⓒtvN 제공
tvN 드라마 ‘작은 아씨들’ 포스터. ⓒtvN 제공

분명 유쾌한 첫인상은 아니었다. ‘작은 아씨들’은 첫 화부터 자본에 대한 노골적 예찬을 늘어놓고 빈곤 혐오에 저항하지 않는 인물들을 내세운다. “무능한 게 나쁜 거다”, “돈이 없으면 죽는다”, “이 집(옥탑)에서 언니들처럼 사는 것보단 부잣집에서 하녀로 살고 싶다”라는 강렬한 선언. ‘가난은 겨울 코트에서 티 난다’는 말로 시청자들까지 옷매무새를 검열하게 만든 뜻밖의 나비효과. “가난하게 컸어? 하도 잘 참아서.”라는 회심의 일격까지.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처럼 자본주의 패러다임을 비판하는 체하지만 실은 충실히 부역하는 흐름에서 이 작품도 벗어나지 못한 건 아닌지 의심했던 이유다. 작중에선 ‘가장 낮고 어두운 곳에서 가장 높고 밝은 곳으로’라는 레토릭이 질리도록 반복되기도 한다. 더 많이 갖기 위해 남을 밟고 올라서도 된다고,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믿게 만드는 것이 자본주의의 가장 위험한 착시 아니었던가.

그런데도 드라마의 이면에 돈에 대한 강박적 욕망만 도사린 건 아닐 거라 기대를 놓지 않은 것은, 전적으로 창작자 정서경에 대한 믿음 덕분이다. ‘친절한 금자씨’, ‘아가씨’, ‘헤어질 결심’ 등 정서경 작가의 세심한 터치 덕에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숱한 영화들처럼, ‘작은 아씨들’에서도 역시 다채로운 여성 인물의 생명력이 천천히 피어난다.

주인공 세 자매는 결국 ‘가장 높은 곳’이 아닌 각자의 목적지를 바라보게 된다. 누구보다 돈에 진심이었던 첫째 인주가 사실 700억보다 화영 언니와의 재회를 더 간절히 바랐다며 고백하던 표정을 잊기란 어렵다.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칭찬에 눈을 반짝이며 기뻐하는 표정도 마찬가지다. 인주의 진짜 바람은 돈이나 남자가 아니라, 중요한 사람이 되어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을 누리는 삶 쪽에 있었던 것이다.

둘째 인경은 자신이 믿는 정의를 실현하는 여정 중, 유일하게 믿었던 선배가 유사 부녀관계를 형성해 자신을 회유하려 하자마자 “나는 아무 아버지도 필요 없어요.”라고 못 박는다. 항상 이기적으로 굴려고 노력했던 막내 인혜는 위험한 순간마다 자기보다 감정적으로 더 취약한 다른 여성들을 걱정하고 때론 그들을 구해낸다.

결국 세 자매의 가장 큰 무기는 서로를 향하는 선의와 책임감이었던 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도움을 거부하고, 남자의 친절보다 ‘언니’를 더 신뢰하며, 다른 여성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으로 말미암아 성장한다.

드라마 ‘작은 아씨들’ 속 세 자매. 위부터 오인주(김고은 분), 오인경(남지현 분), 오인혜(박지후 분). ⓒtvN 제공
드라마 ‘작은 아씨들’ 속 세 자매. 위부터 오인주(김고은 분), 오인경(남지현 분), 오인혜(박지후 분). ⓒtvN 제공

그런데 못되고 독한 여자들 - 원상아, 고수임, 장마리와 오혜석 -도 자매들만큼이나 눈길을 끈다. 그들은 시시하고 낡은 ‘악녀’에 머물지 않는다. 그림자처럼 숨어서 중심부의 남자들을 장기말로 쓰며 ‘악인’의 지위를 당당히 점한다. 경쟁자 남성을 제거하거나,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행동대장 양아치’ 또는 ‘사연 있는 사이코패스’ 캐릭터의 매력을 독점하기도 한다.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면 진작 죽었을” 여자인 오혜석이 생존형 악인이라면, 먹고 살 만해진 후세대의 여성들은 말초적 재미를 위해 범법도 서슴지 않는 진짜 악당이 될 수 있다.

이 다양한 여성 인물들 안에 정서경 작가가 재해석한 과거, 새롭게 그려낸 미래의 풍경이 모두 있다. 정서경은 마냥 착하고 다정하기만 한 연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꿈은 꾸지 않는 현실주의자다. 그는 한국 근현대사에 드리운 폭력과 유착과 부패의 그늘을 모조리 걷어내는 게 불가능하단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과거를 미화하거나 은폐하는 대신, 그 그늘에서조차 철저하게 배제되었던 여자들을 그늘 한복판에 끼워 넣어 전복의 가능성을 상상하자고 제안한다. 그들이 나쁜 사람이 되어서라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백마 탄 왕자의 도움 없이 제 힘으로 거물이 되도록, 지워지거나 자기 몫을 뺏기지 않도록 말이다.

이혼 후 자포자기했던 인주에게 새 꿈을 준 건 새 남자 최도일이 아닌 진화영이었다. 그런 화영에게 부자들의 매너와 취향을 가르친 건 신 이사가 아닌 원상아였다. 인경이 물정 모르고 정의로울 수 있도록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준 건 종호나 완규가 아닌 고모할머니 오혜석이었다. 위 계급의 여자로부터 아래 계급의 여자에게로, 나이 든 여자로부터 어린 여자에게로 부의 사다리가 이어진다. 이 긴밀하고 단단한 공모는 남성 중심의 폭력으로 얼룩진 역사를 보정할 장치가 된다.

미국에서 이혼한 간호사이자 1세대 투기꾼인 오혜석, 장군의 딸 원상아라는 두 상징적 존재가 먼저 과거사의 틈을 벌린다. 현세대 여자들인 인주, 인경, 화영은 각자의 방식대로 투쟁하는 게임 체인저로서 그 틈에 쐐기를 박는다. 그렇게 당도한 미래는 미성년인 인혜와 효린의 우정을 빌어 묘사된다. “세상에 너랑 나 둘만 있는 것처럼” 서로를 믿자던 그 애들의 상상 속 외국 생활은 돈 없고 자유로운 예술가들의 ‘보스턴 결혼’(19세기 보스턴에서 태동한, 비혼 여성들의 성애적 요소를 배제한 동거 관계) 형태에 가깝다. 남자도 혈연가족도 없는 세상. 언니들이 마련해준 그 새로운 세상을 맛보러 도망친 아이들이 끝까지 붙잡히지 않기를 바란다. 그곳에선 잠시나마 영원처럼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유해 작가는

회사원. 영화 읽고 책 보고 글 쓰는 비건 페미니스트. 브런치: https://brunch.co.kr/@yooh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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