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최예훈 색다른의원 원장
“의료 전문성 높이기 위해 고민”
성별·성적지향 묻는 항목만 6개 이상
트랜지션 문진표·성중립 화장실 마련

최예훈 색다른의원 원장과 함께 일하고 있는 (왼쪽부터)이혜림·문보라 간호사. ⓒ홍수형 기자
최예훈 색다른의원 원장과 함께 일하고 있는 (왼쪽부터)이혜림·문보라 간호사. ⓒ홍수형 기자
서울 동작구 장승배기로에 개원한 색다른의원. ⓒ홍수형 기자
서울 동작구 장승배기로에 개원한 색다른의원. ⓒ홍수형 기자

임신과 분만의 인식이 강한 기존의 산부인과와 차별화된 조금은 색다른 의원이 문을 열었다. 말 그대로 ‘색다른의원’에선 임신 9주 이내 초기 임신중지와 트랜지션(성별을 바꾸는 과정)·호르몬치료, 성매개 감염 치료 등을 진료하고 있다.

지난 9월 22일 서울 동작구 장승배기로에 개원한 색다른의원은 간판만 봐선 산부인과인지 잘 알 수 없다. 심지어 간판 시공업소에서도 “‘산부인과’라고 명시하지 않았는데 사람이 어떻게 찾아 오냐”며 우려했다.

최예훈(47·산부인과 전문의) 색다른의원 원장은 일부러 ‘산부인과’라고 밝히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최 원장은 “의도적으로 ‘산부인과’라는 명칭을 뺐다”며 “인터넷에 ‘산부인과’를 검색하면 나오지만, 외부 간판이나 이름에 ‘산부인과’가 적혀 있는 경우 접근이 어려운 분들이 있기 때문”고 말했다.

복도와 진료실은 휠체어가 드나들 수 있도록 공간을 넓혔고 경사로를 만들었다. ⓒ홍수형 기자
복도와 진료실은 휠체어가 드나들 수 있도록 공간을 넓혔고 경사로를 만들었다. ⓒ홍수형 기자
(왼쪽부터)트랜지션·호르몬치료를 위한 문진표와 질염·임신중지·성매개 감염 등을 체크할 수 있는 문진표. ⓒ홍수형 기자
(왼쪽부터)트랜지션·호르몬치료를 위한 문진표와 질염·임신중지·성매개 감염 등을 체크할 수 있는 문진표. ⓒ홍수형 기자

‘색다른’은 중의적 표현이다. 최 원장은 “‘성’이나 ‘재생산’ 같은 용어가 병원 이름으로 쓰이기는 어려워서 직관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한글을 사용하고 싶었다”며 “‘색다른’은 의미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데, 다른 색, 무지개색과 같은 다양성을 염두에 뒀다”고 설명했다. 이어 “영어론 ‘SDR CLINIC’(Supporting Diversity And Reproductive Health Clinic)으로 표기하는데 다양성을 지지하는 재생산 건강 클리닉이라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이곳은 초진문진표도 색다르다. 질염·임신중지·성매개 감염 등을 체크할 수 있는 문진표와 트랜지션·호르몬치료를 위한 문진표가 각각 있기 때문. 질경과 초음파 등의 사용을 위한 문진에는 ‘질 내 탐폰, 생리컵, 손가락. 성기 등 삽입의 경험이 있습니까?’라고 상세히 물어본다. 트랜지션과 호르몬치료 문진표에서 성별을 물을 땐 여성/남성/논바이너리/트랜스여성/트랜스남성/기타 정체화하는 성별을 고를 수 있다. 성적 지향도 이성애/게이·레즈비언/양성애/퀴어/정체화 하지 않음/기타 정체화하는 성적 지향을 선택할 수 있다. 또 ‘유방’을 ‘가슴’으로, ‘유방절제술’을 ‘탑 수술’로, ‘자궁절제술’을 ‘바텀 수술’로 병원에서 다르게 불리기 원하는 특정한 신체 부위의 단어가 있다면 자유롭게 적을 수 있다.

병원 내엔 성별을 구별하지 않는 성중립 화장실을 마련했다. ⓒ홍수형 기자
병원 내엔 성별을 구별하지 않는 성중립 화장실을 마련했다. ⓒ홍수형 기자
성중립 화장실 칸 안에는 생리컵을 씻을 수 있는 작은 개수대도 마련했다. ⓒ홍수형 기자
성중립 화장실 칸 안에는 생리컵을 씻을 수 있는 작은 개수대도 마련했다. ⓒ홍수형 기자
최예훈 색다른의원 원장 ⓒ홍수형 기자
최예훈 색다른의원 원장 ⓒ홍수형 기자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이하 셰어)의 연계 병원인 ‘색다른의원’은 다양한 성을 존중하고 장애 여부에 제약 받지 않는 병원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셰어는 국내 최초로 연령·장애·질병·인종·국적·직업·소득·성적지향·성별정체성 등에 관계없이 모든 이들이 자신의 성적 권리와 재생산 권리, 성과 재생산 건강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성 건강 전문 상담과 의료지원·포괄적 성교육·정책연구를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센터다. 최 원장은 셰어의 기획운영위원으로 함께 활동하고 있다.

지역에선 트랜지션과 호르몬 치료를 제대로 받을 수 있는 곳이 한정적이다. 최 원장은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아 올 수 있는 점을 고려해 서울 동작구 장승배기역 근처로 자리를 잡았다. 서울 내 이동 시간을 최대한 단축하기 위해서다. 병원 내엔 성별을 구별하지 않는 성중립 화장실을 마련했다. 성중립 화장실 칸 안에는 생리컵을 씻을 수 있는 작은 개수대도 마련했다. ‘굴욕의자’로 불리는 산부인과 의자는 분홍색이나 붉은 색이 아닌 푸른색을 썼다. 복도와 진료실은 휠체어가 드나들 수 있도록 공간을 넓혔고 경사로를 만들었다.

최 원장은 무엇보다 의료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고민했다. 그는 “대부분은 한정된 진료시간에 많은 환자를 보기 위해 상담시간은 짧고 검사에 대한 설명은 생략한다”며 “환자에게 충분하고 질 좋은 상담을 제공하면서 병원을 운영하기 위해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 간호사의 역량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얘기했다. 그는 “단지 친절함을 넘어서 전문성을 가진 병원이 되려면 의료적인 지식뿐 아니라 태도, 포용적인 언어 사용과 같은 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원장과 함께 일하고 있는 문보라·이혜림 간호사는 개원 전부터 인연이 있었다. 문 간호사는 서울시립십대여성건강센터 나는봄에서, 이 간호사는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에서 일하며 최 원장과 이미 호흡을 맞췄다. 이들은 개원 전부터 입지 선정, 병원 인테리어, 문진표, 진료 시스템 등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세미나를 통해 서로의 의견을 조율해 왔다.

최예훈 색다른의원 원장 ⓒ홍수형 기자
최예훈 색다른의원 원장 ⓒ홍수형 기자

다음은 최 원장과 나눈 일문일답.

-‘의사’는 돈을 많이 버는 직업으로 비춰지기도 하는데 왜 색다른 선택을 하셨습니까?

“평범한 산부인과 의사로 일하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앞으로 의사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게 됐습니다. 활동가로서는 나이나 경력 면에서 떨어졌지만 산부인과 의사인 점을 살려 셰어에서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활동을 하면서 제가 말할 수 있는 힘은 진료 현장에서 나온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법이나 정책이 실제로 환자에게도 영향이 있어야 하는데 단체 활동만으론 어려웠습니다. 셰어 활동을 하면서 해보고 싶었던 것을 체계·조직적으로 꾸려나가고자 색다른의원을 열었습니다.”

-출산을 ‘강요’하는 시대에 임신중지를 이야기하는 의사입니다.

“임신을 원하는 사람이 출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의사들이 하는 일인 것처럼 임신중지 역시 출산을 원치 않는 사람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의료 서비스입니다. 그런 의식들이 아직 많이 퍼져 있지 않지만, 더 많은 의사들이 임신중지를 필수 의료 서비스로 생각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임신중지 현주소를 평가하신다면 몇 점을 주시겠습니까?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안전하지 않은 임신중지(unsafe abortion)’에 대해서 정의하기를, 첫째가 ‘필요한 기술을 습득하지 않은 사람에 의해서’, 둘째가 ‘최소한의 의료적 기준을 따르지 않는 환경에서’ 임신중지가 이루어진 경우입니다. 우리는 이 국제 기준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정부가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임신중지에 사용할 수 있는 유산유도제를 공식도입하지 않아서 병원에 갈 수 있는 상황에서도 수술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많은 불법사이트들이 알 수 없는 경로로 유통하는 약을 먹기도 합니다. ‘낙태죄’는 없어졌지만, 병원에서는 관행대로 파트너의 동의를 받기도 하고 비용도 제각각입니다.”

-최근 국정감사에선 ‘대체 입법을 핑계로 유산유도제 도입을 지연한다’는 총리실 컨닝페이퍼 내용이 논란됐습니다.

“정부와 보건복지부가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죠. 유산유도제 도입 시 세부 규정들에 대해서 의견이 엇갈리는 부분이 있었지만, 어쨌든 정부의 의지가 확고하지 않기 때문에 대체 입법과 같은 핑계거리를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계속 이야기하지만 입법과는 별개로 식약처 승인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거든요.”

-의료진으로서 정부와 국회에 가장 촉구하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만 꼽자면, 임신중지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입니다. 그 이유는 이것이 비용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의료체계 내로 임신중지가 들어와야 의료서비스라는 인식을 환자도 의사도 할 수 있고, 임신중지가 권리로서 자리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그동안 제대로 잡히지도 않았던 임신중지 관련 통계들을 공식적으로 낼 수 있고, 부작용 같은 사후 관리를 더 안전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예훈 산부인과 전문의는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기획운영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중앙의료원 전문의 수료 후 서울시립십대여성건강센터 나는봄 촉탁의로 일했고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의원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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