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진단 거부감으로 진단 받지 않은 트랜스젠더 인구
인권위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2020)’
응답자의 절반가량이 정신과 진단을 받지 않아
장혜영 의원 “성별 불일치보다 다양한 성별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 구조가 더 큰 고통일 것…
2025년엔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 개정해야”

장혜원 정의당 의원. ⓒ뉴시스·여성신문
장혜원 정의당 의원. ⓒ뉴시스·여성신문

정신장애 목록에 포함된 현행 질병분류에도 불구하고 최근 5년간 약 1만명이 트랜지션(트렌스젠더가 자신의 성별정체성에 맞게 사회적 성별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위해 병원을 찾은 것으로 나타났다.

‘성별 불일치’를 겪으면서도 정신과 진단에 대한 거부감 등으로 진단을 받지 않은 트랜스젠더들이 있다. 국내 의료기관에서는 성별위화감을 느낀다는 정신과 진단이 있는 경우에 한해 호르몬 치료, 성전환 수술 등 의료적 트랜지션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17년부터 2022년 8월까지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 상 ‘성 주체성 장애(코드 F64)’로 병원을 찾은 인구는 9,828명으로 나타났다.

‘성 주체성 장애’ 진단은 호르몬 요법 등의 의료적 조치와 법적 성별정정, 병역판정 등에 있어 필수로 요구되는 진단이다. 자신의 성별 정체성에 맞는 성별로 살아가기 위한 ‘트랜지션’의 첫 과정으로 볼 수 있다.

2022년 한해에만 8월까지 1,936명이 병원을 찾았다. 2017년(1,160명)과 비교하면 약 2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장 의원은 “정신장애 목록에 포함된 현행 질병분류에도 불구하고 약 1만명이 ‘트랜지션’ 위해 병원을 찾았는데 실제 트랜스젠더 인구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며 “지난 3월 국가인권위원회의 트랜스젠더 인권상황 개선 위한 정책권고에 맞게 트랜스젠더 시민을 위한 각종 통계정책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20대(6,290명), 30대(2,022명), 10대(1,136명), 40대(560명)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특히 부모 동의를 받지 못 하거나 경제적 부담을 우려해 호르몬 요법 시도조차 하기 어려운 연령대인 10대 이하 수진자도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자가 호르몬 치료를 하거나 또는 ‘성별 불일치’를 겪으면서도 정신과 진단에 대한 거부감 등으로 진단을 받지 않은 트랜스젠더 인구가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국가인권위원회의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2020)’를 보면 응답자의 절반가량이 정신과 진단을 받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 이유 중 하나로 ‘경제적 이유’와 ‘제대로 진단해주는 정신과를 찾을 수 없어서’를 꼽았다.

트랜스젠더의 ‘정신장애’ 범주 포함은 ‘비정상’ 또는 ‘치료’가 필요한 존재라는 낙인을 가져오기도 했다. 이에 세계보건기구는 2019년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을 통해 ‘성별 불일치’를 정신장애 항목에서 삭제하고 ‘성건강 관련 상태’로 신설했으며, 각국에 2022년 개정을 권고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 3월 정책 권고를 통해 ‘성별 불일치’를 정신장애로 분류한 현행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의 개정을 권고했다. 그러나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 개정 및 시행은 2031년에나 이뤄질 전망이다. 통계청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사항은 2026년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의 9차 개정이 아닌 2031년 10차 개정에 반영될 예정이다.

장 의원은 “정신과 진단에 대한 경제적·심리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트랜지션’을 위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정신과 문을 두드리고 있다”며 “트랜스젠더가 겪는 차별과 고통의 원인은 성별 불일치가 아니라 다양한 성별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구조와 관점이며, 병리적 관점에 머물러 있는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가 사회적 낙인에 기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가통계가 소수자에 대한 낙인과 차별을 강화해서는 안 된다”며 “통계청은 세계보건기구와 국가인권위원회 정책권고를 반영해 2026년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 9차 개정에 트랜스젠더 비병리화를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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