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스토킹 보고서] ⑥ 젠더폭력 전문가에게 듣다
장미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젠더폭력연구본부 선임연구위원
“분절적 실태조사론 여성폭력 현황 파악 못 해
여성들이 살면서 겪은 다양한 폭력 포착해야”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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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젠더폭력 통계는 여성의 경험과 고통을 제대로 반영할까. 전문가들은 아니라고 말한다. 

“비교적 가벼운 폭언부터 신체적 폭력, 성적 폭력.... 여성들은 살면서 오랜 기간에 걸쳐 다양한 양상의 젠더폭력을 경험합니다. 유형별로만 조사하면 전체 현황을 파악하기가 어렵죠. 그런데 우리나라 주요 젠더폭력 통계들은 그런 식으로 작성됐어요.” 장미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젠더폭력연구본부 선임연구위원의 지적이다.

우리나라 형사사법기관은 형법이나 특례법(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 위주로 통계를 집계한다. 범죄 유형별 발생·검거·송치 현황 등을 확인할 수 있지만, 제시된 유형에 포함되지 않는 피해 내용까지 다루지는 못한다. 경찰과 검찰의 분류체계가 달라서 연계나 비교 분석도 어렵다.

사람이 일일이 집계하다 보니 정확하지 못할 때도 있다. 기자가 여러 의원실을 통해 같은 내용의 스토킹 범죄 관련 경찰 통계를 입수해 비교해 보니, 같은 통계인데 월별 수치가 수십 건씩 차이가 났다.

한 사건에서 다양한 범죄가 벌어져도 가장 중한 죄만을 기록하는 것도 문제다. “예컨대 가정폭력 가해자가 가정폭력 범죄를 수차례 저질렀는데, 방화나 건조물을 파괴한 적이 있다면 수사관 입장에서는 후자가 더 중죄라고 판단해 그 죄만 기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건일지를 기초로 작성한 통계는 여성폭력 피해의 다양한 양상도, 피해자의 생애주기 전반에 걸쳐 일어나는 폭력의 전모도 보여주지 못합니다. 피해자 관점의 통계가 아닙니다. 가해자, 수사관의 관점에서 작성됐다고 봐야죠.”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숨은 범죄도 많다. 스토킹 신고 관련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2021년 10월 21일부터 지난 9월까지 112 신고 건수는 총 2만9156건. 법 시행 직전 3년 4개월간(총 1만9711건) 건수의 1.5배에 달한다. 그런데 2021년 9월 22일부터 11월 30일까지 전국 성인 여성 7000명에게 물어보니, 스토킹 피해를 신고했다는 응답자는 33명(18.6%)뿐이었다.

“분절적 실태조사론 여성폭력 현황 파악 못 해
여성들이 살면서 겪은 다양한 폭력 포착해야”

이런 식으로 작성된 통계가 젠더폭력 대응 정책의 기초 자료로 쓰인다. 첫 단추부터 제대로 채워야 하는데, 전문가들은 고민이 많다.

‘2021년 여성폭력 실태조사’를 맡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진은 “국제 표준에 걸맞은” 젠더폭력 통계를 작성하고자 했다. 여성폭력의 세부 유형을 ‘신체적 폭력, 성적 폭력, 정서적 폭력, 통제, 경제적 폭력, 스토킹’으로 구분해 측정했다. 또 가해자 유형을 세분화해 연인, 배우자 등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여성폭력 현황 파악을 최초로 시도했다.

장미혜 연구위원은 “피해자가 겪은 모든 유형의 폭력을 포괄할 수 있는 방식의 조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개인 차원에서는 여성들의 삶에 누적된 폭력의 경험을 포착할 수 있어야 하고, 국가 차원에서는 시계열적인 변화를 파악하고 비교할 수 있어야 해요. 장기적으로 통계를 축적하고, 축적된 자료는 공개해서 다양한 연구자들이 분석할 수 있도록 제공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나라 여성폭력 피해가 줄어드는지 커지는지, 타국에 비하면 어떤지,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는지 판단할 근거 자료가 됩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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