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인근에 시민들은 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국화 꽃, 편지 등을 놓고 있다. ⓒ홍수형 기자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국화꽃과 편지 등이 놓여 있다. ⓒ홍수형 기자

2014년 4월 16일, 그날은 봄을 맞아 날씨는 화창하고 바람도 제법 따뜻해져 있었다. 한편 건조한 계절이기도 해서, 전방 지역의 화재 예방 활동을 하고 부대로 복귀하는 길이었다. 나른한 날씨에 라디오를 켰는데, 진도 앞바다에서 수학여행을 떠났던 제주도행 여객선이 침몰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고, 얼마 안 가서는 학생들 전원이 구조되었다는 소식도 전했다. 운전병과 나는 서로 대대손손 자랑할만한 수학여행 썰이 생겼다며 농담을 했다. 그 썰이 대대손손 전해질 수도 없고, 얘기를 전해줄 돌아올 학생도 없고, 바다로부터 기약 없는 기다림이 시작될 것이라는 게 사실로 드러난 건 그로부터 몇 시간 뒤의 일이다.

부대의 모든 행사는 취소됐다. 행사가 없어진 자리를 대신해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잠수기능사를 가지고 있는 모든 대원은 차출됐고, 해군 부대는 비상근무에 돌입했다. 수많은 안전 조치 매트릭스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와 함께 농담을 주고받았던 운전병은 그 뒤로는 라디오를 켜지 않았다. 연일 안전 상황평가 회의를 하고, 연일 구조 현황이 취합됐고, 진도와 목포로부터 좋은 신호는 하나도 올라오지 않았다. 시간은 점점 흐르는데 부대에 할 일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자 여기저기서 볼멘 소리와 함께 ‘놀러 가다 교통사고가 나서 죽은 것인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는 원망 섞인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너도나도 달았던 리본을 하나둘씩 땠고, 나중에는 대놓고 “설마 그거 세월호 리본 아니지?” 하는 이상한 눈치와 추궁까지 줬다.

이번 10월 이태원에서의 끔찍한 참사가 일어난 바로 다음 날, 윤석열 대통령은 국가 애도기간을 선포했다. 밤새 겨우 현장 사상자를 추스르고, 채 행방이 확인되지 않은 실종자 신고를 받는 상황에서 급작스럽게 ‘애도할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브리핑에서 사전에 통제 인력을 배치해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고, 마치 같은 날 있었던 광화문에서의 대규모 집회로 인해 경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라며 책임소재를 집회로 몰아가려는 듯한 늬앙스를 비췄다. 한편 뉴욕타임즈를 비롯한 외신은 한국에서 수십년 간 대규모의 군중 집회가 발생한 경험이 풍부한 국가임에도 대비되지 못했고, 최근 정치적 시위 현장에서 민간인보다 경찰이 많았던 것과는 분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며 시스템의 맹점을 사고 원인 중 하나로 꼽았다.

심리학자 퀴블로 로스(Kübler-Ross)의 ‘죽음의 5단계’는 임종을 맞이한 말기환자들의 반응을 연구해 만들어진 것으로, 부정-분노-거래-좌절-수용 5단계의 반응을 일컫는다. 이 5단계는 반드시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불상사나 혹은 거대한 사고 앞에서의 대중 반응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에도 단계적 반응이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 수용에도 시간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어떤 상실에 도달하는 길은 충분한 설명과, 충분한 분노와, 충분한 좌절과, 충분한 슬픔이 필요하고, 그 과정을 오롯이 제대로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 시간을 전부 지내는 것, 그것을 우리는 애도의 시간이라 부르고, 또 그렇게 불러야만 한다. 그렇기에 애도는 3일, 7일, 5일, 10년, 15년, 기한을 정해서 무 자르듯 잘리는 시간이 될 수 없다.

갑작스러운 죽음과 강제되는 애도, 그리고 이어지는 사후 조치와 그 결과에 대한 요구는 이 상황을 겪게 만드는 누군가에 대한 원망과 분노만을 남기기 쉽다. 강제된 시간을 지난 애도는 곧잘 ‘이제그만 적당히 하라’는 요구로 돌아오기 쉽고, 숱한 사후조치와 결과보고, 지리한 보상과 관련한 논의는 ‘이만하면 됐지 않느냐?’라는 원망을 낳는다. 그만하라는 요구와 원망 속에서 애도 되지 않은 영혼과 애도하지 못한 생존자들은 갈 곳을 잃고 헤맨다. 그 어느 것도 답이 내려진 게 없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실도 주어지지 못한 상태에서, 남은 유족마저도 서로를 탓하며 갈라지는 것은 어느 사건 사고 현장에서든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의 생존자인 이선민 씨는 책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와 관련한 인터뷰에서 “세상은 생존자가 침묵하는 딱 그만큼 불행해진다”는 말을 남겼다. 인터넷에서는 벌써 이태원 사고와 관련해 ‘누가 밀어라고 했다’며 토끼 머리띠를 한 5~6명의 남성 무리를 찾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분노로 뒤끓기 시작했다. 시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는 정부 책임자들은 이런 분위기 뒤에 숨어 서둘러 애도기간을 갖자며 사람들을 부추기고 있다. 그 시간이 끝나고, 5~6명의 무리가 확인되면, 우리는 2014년 이후 몇 년간 그때처럼 이제는 지겨우니 그만하라고 할까?

군대와 관련한 칼럼이라는 조금의 책임감이 조금 있어, 글의 말미는 군대와 관련한 통계로 마무리 할까 한다. 경향신문은 얼마 전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 건 중 2000년 이후 발생한 157건의 결과에 대한 분석기사를 냈다(‘군에서 죽으면 두 번 묻힌다? 감춰졌던 죽음의 진실’, 10월 27일 보도). 157건의 군 수사 결과 72.6%가 신변비관 등 ‘개인적 사유’만에 의한 사망이라고 결론을 내렸지만, 재조사를 통해 단 세 건을 제외한 154건(98.1%)의 사건이 병영 부조리, 군 구조적 문제로 인한 사망사건임이 밝혀졌다. 간 사람은 갔고 부대는 정상화돼야 하니 서둘러 애도를 끝내자고 유족을 회유하고, 죽음으로 가는 사실관계 자체를 왜곡해 거짓말로 덮으려고 했었던 과거를, 남은 사람들이 끝까지 침묵하지 않은 덕이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더 이상 연장계획이 없어 내년 종결이 결정된 군사망규명위는 아직 밝히지 못한 순직 미인정 군 사망자가 약 3만 3천명에 달한다고 추산한다. 부대의 눈치를 보며 달고 다녀야 했던 리본은 아직도 가방 끄트머리에 달려있다. 7일의 애도 기간이 지난 뒤에도, 우리 사회가 애도할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음을 바란다. 나아가 모든 죽음에 충분한 애도의 시간이 부여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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